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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공장> 포스터
 영화 <꿈의 공장> 포스터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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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균 감독을 처음 만난 자리는, 지난 5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주최한 '비정규노동자 삶의 기록과 치유를 위한 글쓰기 모임, 쉼표 하나'에서였다. 나는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의 해고 조합원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내 인생에서 좋았던 일을 회상하며 쓴 글에 손수 그림을 입히거나, 내 연대기를 표로 만들다가 문득, '아, 나는 상처받아서 아팠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김성균 감독은 그 모임이 계속된 12주 동안, 병원 노동자, 청년 노동자들이 글을 쓰고 발표하는 모습을 담담하고 묵묵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쉼표 하나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난 뒤, 어느 날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성균 감독의 다큐 <꿈의 공장>이 9월 1일에 개봉한다는 알림이었다.

공장의 해외이전과 위장폐업 그리고 그에 따른 정리해고에 맞서 1500일이 넘게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음악 이야기와 기타 공장 노동자 이야기가 서로 얽혀 녹아 있는 영화 <꿈의 공장>. 그러나 인지도 있는 기타 브랜드 '콜트(Cort)'에 비해, 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다큐 <꿈의 공장>은 확실히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23일 저녁, 서울 성북동 김성균 감독의 작업실에서 김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기타이야기>에 이은 두 번째 다큐멘터리

- 콜트콜텍 문제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시민방송 RTV의 <다른 세상을 꿈꾸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대안'을 소재로 다큐감독들이 시리즈물을 만들어왔어요. 저도 몇 개 했죠. 그런데 주변에서 홍대 라이브 클럽 '빵'이라는 곳을 조명해보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독립영화 상영회 등 다양한 것을 많이 시도하는 곳이거든요.(기자 주 : 클럽 빵은 콜트 노동자를 후원하는 문화제를 매달 개최해왔다.)

그런데 클럽 빵 취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정부가 RTV에 지원을 끊었어요. '좌빨'들 있는 데라고. 그러면서 외주로 다큐감독들한테 주던 프로그램을 다 없애버렸어요. 그 무렵 송경동 시인이 콜트 투쟁 500일 행사 영상을 부탁했어요. 영상을 같은 작업실 식구가 만들었고 제가 클럽 빵으로 갖고 갔어요. 거기서 콜트 투쟁 이야기를 들었는데, '프로그램은 없어졌지만 이왕 배 띄운 거 한번 가보자' 해서 콜트 후원 공연을 찍기 시작했어요."

<꿈의 공장> 김성균 감독
 <꿈의 공장> 김성균 감독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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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님이 음악을, 혹은 기타를 좋아하지 않고는 찍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전 세고비아를 기억해요. 세고비아나 삼익악기. 콜트는 낯설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콜트가 이 친구들에겐 거의 우리 때 세고비아인 거에요. 펜더나 깁슨이란 이름은 들어봤죠.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리치블랙모어의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이런 브랜드들이 다 콜트에 외주를 줬다니까, 콜트도 문제지만 다국적 자본의 문제도 조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션이든 팬이든 기타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데, 콜트에서 있었던 전 노동자의 손가락 절단 사건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상상을 해봤어요. 기타를 샀는데 뭔가 소리가 이상해서 껍질을 벗겨보니까 기타 바디 안에 잘린 손가락이 들어 있는 그런 상상이요. 제가 애니메이션을 할 줄 알았더라면 그런 식으로 만들어봤겠죠. '당신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그 악기의 뒷면에 뭐가 있나 봐라' 하고요."

- 비슷한 얘기를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아요. '당신이 사는 기타가 이렇게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면 살 의향이 있느냐?' 하는 물음에, 록그룹 키스(KISS)의 진 시몬스는 '회사가 싫으면 노동자가 나가라'고 했죠. 충격적이었어요.
"미국에서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고방식 때문에 그런 입장이 당연시되는 것 같기도 해요. 사실은 독일 악기쇼에 원정투쟁 갔을 때 '공장 폐업이 뭐가 문제에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왜냐면 독일은 직장이 폐업해도 국가 연금이나 복지제도가 충분해서 별 걱정이 없거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해고되면 살 길이 막막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게 왜 문제인지 되묻다가, 콜트의 특수한 상황을 듣고 그제야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우리 좀 봐줘' 하는 식으로 보이기는 싫었다"

- 무척 큰 덩어리를 많이 제시하는 영화에요. 영화에 더 담고 싶었는데 못 담으신 건?
"너무 많아요.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노동, 다국적 자본, 소비, 예술가의 표현 문제 등을 잡탕처럼 집어넣었어요. 정면 승부를 못할 바엔 변화구를 던지자는 거였는데 아쉬움이 많아요. 의도하지 않은 2편이다 보니 1편(<기타이야기>)에서 설명된 부분을 최대한 거론하지 않거나 비유적으로 처리했어요. 그리고 콜트 노동자들의 수많은 산재사고들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점도 아쉽죠. 비유적인 방법을 통해 더 드러낼 수 있었던 걸 못한 아쉬움이에요.

누군가 <꿈의 공장>을 보고, 사람들이 절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더 센 다큐를 많이 봤다는 거죠. 도대체 얼마나 더 강하고 힘든 걸 봐야겠다는 걸까요. 다큐를 찾아보는 사람들에게서 간혹, '관객의 탐욕'이 느껴지기도 해요. 분신 시도하신 콜트 노동자분을 인터뷰했지만, 영화 내내 보여주지 않다가 막판에 약 올리듯이 넣었잖아요. '당신들이 찾아봐라' 하는 식으로. 그런데 영화 곧 개봉하는데 감독이 이런 소리나 하고.(웃음)"

영화 <꿈의 공장>의 한 장면
 영화 <꿈의 공장>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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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KBS 계약직지부에서 투쟁하면서 그런 걸 느꼈어요. 노동문제가 워낙 산재해 있다보니, '누구 하나 죽었다고 뉴스에 나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기 어려운가' 싶어 슬펐죠.
"콜트콜텍 조합원분들 인터뷰 때 더 절절한 얘기들을 많이 하셨는데 다 뺐어요. 1편을 만들고 나서 관객에게 동정을 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우리 힘드니까 우리 좀 봐줘' 이런 식은 제가 원하지 않았거든요. 제작 끝나고 술자리에서 노동자들의 더 깊은 얘기들이 쏟아져나왔는데, 영화에 담기 싫은 부분들이에요. 이 분들 정말 아프시구나. 저도 죽는 것 같아요. 계속 이런 아픈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아파요."

- '한 걸음 더 들어왔다고 해서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라는 자막이 있었죠. '이 영화 하나 본다고 콜트에 대해 다 아는 게 아니다'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땐 그 자막이 없었어요. 나중에 추가했죠. 사실은 유명 밴드의 노래 제목인데, '락덕후'들이 알 수 있는 퀴즈 장난을 쳤죠. 팝송 제목과 상황을 의역해서 붙이는 방식인데, 해설은 넣고 싶지 않아서 설명을 대신하기 위해 자막을 넣었어요. 의미도 갖고 잠깐 쉬어준다는 의미로.

한 걸음 더 들어와서 이해한 건 아니지만, 그건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들어온 사람한테 더 철저해지자는 뜻이었어요. 가수 소히씨는 콜트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판화작가 이윤엽씨는 반드시 이 이야기만으로 한정 지을 순 없다고 말하고. 이런 생각들을 토론회처럼 죽죽 내세우는 거죠."

이것은 영화지만, '가짜 고통'이 아니다

- 과거엔 어떤 작업들을 하셨죠?
"학교 졸업 후에 극영화 스태프를 하다가, 여기 저기 많이 옮겨다녔어요. 단체 상근자로 일도 했고, 아예 영화랑 관계없이 취직도 했고. 회사 관두고 나서 친구 꼬드김으로 다큐를 시작한 거죠. 그런데 다큐 하자고 뛰어들었어도 홍보물 제작이나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했어요. 다큐 작업으론 생계가 유지되지 않고, 오히려 마이너스니까요."

- 그럼 김성균 감독에게 다큐멘터리란 어떤 의미일까요?
"콜트가 아니었다면 다큐멘터리를 했을까 싶어요. 제 인간성이 다큐멘터리를 할 만한지 항상 의심하거든요. 나는 좋은 뜻으로 한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잖아요. '아, 이거 쉽지 않다. 똑바로 해야지' 하면서도 한편으론 짜증도 나죠.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하는 갈등이 심했어요.

처음 콜트 후원 공연을 찍었을 때도 '이런 밴드가 노동자를 지지합니다' 하는 시리즈로 제 임무를 다하려 했어요. 그런데 노동자분들이 '우리 얘기를 다큐로 담아보면 어떨까? <추적60분> 같은 데서도 취재했는데 불방되더라' 하는 얘기들을 전해오시면서 시작했죠.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민은 예전부터 복잡했어요. 진실을 재연한다, 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게 과연 진실일까. 진실을 보여주는 방법은 굉장히 많은 고민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 어설프게 몇 장면 흉내 내는 정도밖에 안 돼요."

<꿈의 공장> 김성균 감독과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서정현씨
 <꿈의 공장> 김성균 감독과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서정현씨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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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균 감독은 돈은 안 되지만 의미 있고 생산적인 작업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꿈의 공장>에는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하는 그의 심성이 녹아 있다. 해고 노동자의 고통스러운 일상을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책임감과 죄책감을 갖지 않게 배려해준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감독이기에, 주인공도 관객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투쟁 중엔 상처가 생기지만, 함께하는 누군가와 나누는(동지 혹은 연대) 즐거움이 우리에게 버팀목이 돼준다.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관객에게 희미한 미소를 던져주는 것은 후자이다.

어쨌든 <꿈의 공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자신들이 몰랐던 기타 생산 노동자들의 삶과 음악 속에 한 걸음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기억해달라. 당신이 본 것, 이것이 다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서정현 기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지부 조합원입니다.



태그:#꿈의공장, #김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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