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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루이샴 지역에서 폭도들에 의해 불탄 자동차.
 런던의 루이샴 지역에서 폭도들에 의해 불탄 자동차.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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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토요일) 세계 금융의 중심지 런던 시내에서 발생하여 버밍엄, 맨체스터, 리버풀 등 잉글랜드 전역으로 확대된 청년 폭동이 10일(현지시간) 밤을 계기로 조금씩 진정되고 있는 국면이다.

이번 사태는 런던 북부 토트넘 지역에서 경찰의 총격에 의한 지역 주민의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평화로운 시위로 시작하였으나, 이후 차량과 가게들에 대한 방화, 약탈이 이어지면서 3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전국적 청년 폭동으로 번졌다.

발생 6일째인 10일 밤까지 현장에서 시민 4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현재까지 체포된 사람들이 1400명에 달했고 경찰 측 부상자 수도 백 명이 넘었다.

10일(현지시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물대포와 시위 진압용 고무총탄 사용 등 강경대응 방침을 발표한 후, 런던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의 긴장과 흥분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는 분위기지만, 급속도로 어지러워진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이후의 사태 해결과 전망을 둘러싸고 여전히 복잡한 불씨를 안고 있어 보인다. 

정부와 경찰에 대한 총체적 불신

"경찰과 좋은 모습으로 맞서고 싶지 않아요... 그들은 거짓말쟁이니까요."
"얼마 전 휴대전화 도청사건도 말해주듯이 경찰, 정부, 언론은 항상 우리 시민들을 그들의 목적에 이용하고 곧 들통 날 거짓말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특히 여유롭지 못한 우리들끼리 그러는 건 아주 나쁘다고 봐요."

폭동이 있었던 런던 동남쪽 루이샴(Lewisham) 쇼핑센터 인근에서 만난 사람들에선 아직도 이처럼 폭동에 대한 경계심과 정부에 대한 불만이 교차하고 있었다. 루이샴 경찰서를 바로 마주보고 있는 이곳은 지난 8일(월요일) 오후 경찰차가 불타고 가게 유리창들이 대거 부서지는 등 폭동이 일어나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던 곳이다.

과연 무엇이 젊은 층들을 영국 언론과 정부 당국의 표현인 '개념 없는(mindless) 폭력 집단'으로 만들었나? 비록 약탈과 방화를 행한 일 자체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영국 청년층 전체를 '생각 없는 갱단'으로 만들어버린 사연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영국에서 최근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희들을 바보로 알고 있나 봐요.... 지난 목요일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마크 더건이 경찰과총격전을 벌이다 사망했다고 처음에 루머를 퍼트릴 때, 그리고 심지어 그가 먼저 경찰에 총을 쏘았다고 모든 언론이 보도했을 때 저희들은 모두 거짓말인걸 알고 있었어요....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서 이미 다 거짓말이라고 더 자세한 상황까지도 퍼졌거든요. 사실은, 4명의 자식까지 둔 사람을 경찰이 체포하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총격을 가해 죽였다고..."

루이샴 지역에서 만난 청년들의 증언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곧 진실로 드러났다. 9일 발표된 경찰 독립기구인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의 조사에서도 더건이 경찰에 총을 쏜 정황이 없다고 발표됐다. 일단 시작은 정부, 경찰에 대한 불신임이 분명했다. 그런 점에서 첫날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의 경찰차 방화와 집단행동은 BBC의 표현처럼 지역 주민에 대한 경찰의 과잉 대응을 항의하는 '시위'(Protests)였음이 분명했다.

신자유주의 경제... 다른 장소, 배경들에서 계속되는 길 잃은 청년들

"연간 200만원 정도 하던 대학 등록금이 올해부터 두 세배나 갑자기 올라서 작년부터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 여러 직종의 인원 감축을 부추겨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졸업 후마저도 기약하기 힘들고.... 일단 화가 많이 나죠."

런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한 학생의 말처럼 영국의 많은 젊은 층들은 작년부터 이어진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와 NHS(국가건강서비스) 같은 공공서비스 정책 손질 등으로 이미 정부에 대한 반감이 아주 깊은 상태였다.

이처럼 영국 전역에서 젊은 층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온 것은 최근에 비교적 빈번한 일이 되었다.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5년 10월 27일엔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청년들이 정부와 공권력에 항의하며 그 과정에서 수천대의 차가 불탄 적이 있었다.

어제인 8월 10일(현지시간)에도 칠레에서 교육 개혁에 항의하는 10만 명의 대학생이 수도 산티아고의 중심가로 몰려 나왔다고 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벌써 수년째 청년실업, 등록금 문제 등으로 많은 청년들이 계속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영국 청년들이 몰려간 곳은 다른 때와 달리, 의회도 트라팔가 광장도 아니고, 심지어 BBC 방송국도 아닌 바로 쇼핑센터, 마켓, 쥬얼리숍, 스포츠용품 가게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부와 언론이 이번의 청년층 폭동을 정치적 행동이 아닌 비정치적, 비윤리적, 일시적 일탈 행위로 몰아가고 있기도 하다.

BBC 같은 경우도 사태 초반 '시위대(protesters)'라는 표현에서 이후 '폭도(rioters)'라고 표현을 바꾸어 쓰고 있다. 하지만 10대 초 중반 흑인 문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라는 초기의 보도 역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는데, <가디언>지에 의하면 백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20대와 10대 후반이 주축이며 직업도 학교 교직원, 예비 직업 군인, 학생, 무직자 등 다양하다고 한다.

영국 폭동 소식을 속보로 전하는 <스카이 뉴스> 화면
 영국 폭동 소식을 속보로 전하는 <스카이 뉴스> 화면

지난 8일 캠버웰 지역에서 청년들의 약탈 장면을 직접 목격한 아드리안 사이먼씨는 자신의 블로그(http://motowns.blogspot.com/2011/08/im-no-writer.html)를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다소 다르게 표현했다.

유명 방송국에 근무하는 자신이 퇴근길에 직접 목격한 캠버웰 지역의 폭동 분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비교적 평화로운 가운데 벌어지는 퍼포먼스 같아 보였다고 그는 표현한다. 위험이라고 느껴지는 분위기는 없었고, 마스크와 후드를 두른 청년들은 그들대로, 지나는 사람은 길이 막힌 불편함을 호소하고, 경찰은 어떠한 조치 없이 그냥 길만 막고 있고, 버스 기사는 승객들을 다 내리게 한 뒤 자신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버스 안에서 그대로 앉아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더라는 것이다.

더욱 놀란 것은 약탈한 젊은이들이 랩탑을 들고 나와 "20파운드에 사시라"며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판매를 했고, 19인치 정도 되는 LCD TV는 작다고 판단해서인지 들고 가다 길바닥에 그냥 놓고 가버리더라는 것이다. 물론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여서 그랬는지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기자가 사는 지역인 런던의 뉴크로스 지역에도 대형 슈퍼체인인 세인즈버리와 전자 제품 판매점인 커리스의 유리창이 박살나고 약탈이 있었지만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들은 더욱 역설적이면서 직접적이다.
"거대 글로벌 기업이 돈 버는 방식이나 우리가 약탈해서 거래하는 방식이나 본질적인 면에선 똑 같은 것 같아요. 아니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소니나 삼성 같은 LCD 평면 TV 광고를 전 세계에 대신 해준 셈이죠 뭐... 이번 폭동의 최대 수혜자들인데.... 그 대기업들은 좋아할 걸요. 다들 젤 먼저 들고 나오던데, 뉴스에도 젤 많이 나오고.... 그만큼 젊은 층에 인기 있다는 거니까...."
"우리가 약탈한 거 싸게 팔면 다들 이베이(Ebay.com) 같은데서 좋아라 살 거면서.... 왜 그러지... 결국 같은 생각 아닌가?"

범죄에서... 결국은 다시 정치적인 행위

이처럼 이번 일을 바라보는 젊은 층의 의견은 다양할뿐더러,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전체를 아주 무식하거나 비정치적, 비도덕적이라고 완전히 매도하기에는 주저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사실 이번 폭동을 추동한 결정적 도구로 지목된 여러 곳에서 지목된 블랙베리 핸드폰 메시지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9일 밤에 방송된 BBC 뉴스나잇의 보도에 의하면 '공짜... 쇼핑... 언제... 어디로 오세요' '경찰이 막지 않습니다. 우리도 편하고 자유롭게 쇼핑을 즐깁시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처럼 초기에 경찰이 자신들의 과잉 진압에 의한 사망 사건을 적당히 '꼼수'를 부려 덮으려다 실패하고, 그 후엔 오히려 지나치게 느슨한 자세로 대응하여 사태를 방조한 측면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다 뒤늦게 강경 대응하며 모든 책임을 일부 청년층에 전가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강경 진압으로 유명한 영국 경찰이 폭동이 커질 대로 커진 후인 6일이 지난 후에야 물대포 사용을 검토한다는 지극히 인도주의적(?) 발표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최근 많은 정치적 어려움에 직면했던 정치인들은 극적으로 재기하여 주도권을 쥐는 형국이다.

정확히 10년 전 9월 뉴욕이 테러를 당했을 때 당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사건 수습 후 대국민 담화 마지막에 이렇게 강조했다. "여러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쇼핑을 즐깁시다(go back shopping)".

현대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성지인 도심의 백화점, 쇼핑센터에서, 그렇게 모두가 쉽게 하는 것 같이 정의된 일상을 즐기지 못하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 특히 희망이 없는 시대의 청년층들에겐 이런 악의적인 행동만이 값비싼 자신들만의 유일한 쇼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씁쓸함이 더해진다.


태그:#영국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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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문화연구자. 지역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함. 10여년 전 유학시절 <오마이뉴스>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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