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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경찰에 막혀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한 가운데, 7월 31일 새벽 부산 영도구 청학성당 인근 도로에서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경찰에 막혀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한 가운데, 7월 31일 새벽 부산 영도구 청학성당 인근 도로에서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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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무키무키 만만수'와 10시간 넘게 끊임없이 춤을 추던 댄싱머신 영도 주민 할머니, 그리고 김진숙 지도위원과 송경동 시인의 전화연결이 가장 좋았어요."

희망버스 무박 2일의 부산 '휴가'를 즐기고 상경하던 지난달 31일. 밤을 꼴딱 새고 좀비가 된 모습으로 같이 있던 후배가 말했다. 나도 같았다. 좀비 두 마리는 그렇게 지난밤을 회상했다.

새벽 1시 85호 크레인이 흐릿하게 보이는 부산 영도 청학성당 앞에서 있었던 '무키무키 만만수'의 공연은 같은 날 있었던 지산 록페스티벌에 갔다는 절친이 전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소리가 나올 때는 모든 참가자들이 숨을 죽였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절망이 희망을 이길 수 없듯이 돈에 대한 집착만으로 평생을 살아 온 사람은 생에 아무런 집착이 없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ㅠㅠ)

그런데 감동을 받으려는 순간에는 꼭 그걸 깨는 게 있었다. 나와 내 후배는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발언을 너무 길게 했다. 그 바람에 감동이 다 식었다"라고 입을 맞췄다.

그렇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문득 이 녀석이 몇 시간 전 어두운 표정의 그 후배가 맞나 싶었다. 후배는 희망버스 출발부터 부산도착까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희망버스 문화제가 끝날 무렵이 돼서야 후배는 평상시처럼 잘 웃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려움과 피곤을 물리치고 진정한 '빨갱이'로 거듭난 것.

"처음 본 전경은 사람이 아닌 거 같았어요"

 전,의경들이 7월 30일 저녁 부산 영도구 봉래삼거리에서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병력이 이를 막고 있다.
 전,의경들이 7월 30일 저녁 부산 영도구 봉래삼거리에서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병력이 이를 막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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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후배는 학교 시사토론 동아리에서 만났다. 많은 학교가 그렇다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사회과학 동아리는 명맥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후배는 홍보 대자보만 보고 스스로 동아리에 들어 온 몇 안 되는 새내기 가운데 하나였다. 좋은 말로 하면 '개념 대학생'이었고 나쁘게 보면 무한경쟁 사회에 경쟁력 없는 동아리를 선택한,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애였다.

게다가 그 후배는 아랍문화에 심취해 있었는데, 덕분에 동아리방 이곳저곳 꾸란(코란)과 각종 아랍 관련 문헌들이 굴러다녔다. 난 올해 3월 학교를 복학해서야 그 후배를 만났다. 이런 연유로 후배를 '아랍 언니'라 불렸으나, 이 글에서는 쉽게 성을 따서 '백양'이라고 부르겠다.

백양은 2학년이고 나는 3학년이다. 학년은 1년 차이지만 나이는 6살 차이가 난다. 백양은 92년생인 내 막내 동생과 동갑이다. 적지 않은 나이차이지만 함께 있으면 유쾌했다. 백양이 놀려먹기 좋은 성격이라 편하게 대하기도 했고, 동아리에 있던 사람도 나가는 판에 열심히 하려는 백양이 기특했다.

교대에서 선생님이 아닌 다른 직업을 꿈꾸는 소수의 사람이라 이야기도 잘 통했다. 백양은 '알 자지라'의 최초 한국인 기자를 꿈꿨으나, 이미 한국인 기자가 있다는 말에 좌절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에서 함께 희망버스를 탈 때 백양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기분을 풀어주려 대화를 걸어도 맥이 끊겼다. 이야기에 간간히 미소 짓는 게 전부였다. 평소에는 잇몸이 보이도록 웃는 '선홍빛 미소'를 짓던 백양이었다. 이전까지 백양의 무표정하거나 심각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백양은 평소에 근심을 보이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희망버스에 부담을 갖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날 잠을 못 잤다"는 백양은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하던 7시간 동안 무표정으로 창밖만 주시했다.

보름 전 동아리 회식 때 3차 희망버스 이야기가 나왔었다. 말을 꺼낼 때도 반신반의하며 백양에게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집에서 외박 한 번 하기도 어려운 백양이었다. 의외로 백양이 흔쾌히 희망버스 동행을 결정했다. 1박 2일의 일정이 부담됐지만, 한진중공업 사태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다. 후배는 당시의 결정을 이렇게 말했다.

"그땐 잘 몰라서 간다고 했어요. 선배들이 이제까지 같이 하자고 한 것 중에서 저한테 나쁜 걸 시킨 적은 없었잖아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간다고 했는데 찾아보니까 이게 장난이 아닌 거예요. 내가 떡밥을 너무 덥석 물었나?"

 지난  7월 10일 오전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85일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진중공업 입구에서 경찰 여러명이 집회 참가자의 목덜미와 팔을 잡고 꼼짝못하게 한 뒤, 얼굴을 향해 최루액(캡사이신 성분)을 조준 발사하고 있다.
 지난 7월 10일 오전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85일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진중공업 입구에서 경찰 여러명이 집회 참가자의 목덜미와 팔을 잡고 꼼짝못하게 한 뒤, 얼굴을 향해 최루액(캡사이신 성분)을 조준 발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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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를 결정하고 나서 백양은 지난 희망버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았다. 그러던 도중 2차 희망버스 집회 새벽에 경찰이 참가자들을 강경진압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루액과 물대포를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참가자들의 사진은 백양에겐 충격이었다. 사진만 봐도 공포가 엄습했다. 3차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희망버스가 무서워진 건 그때부터"라고 백양은 말했다.

백양이 희망버스 탑승에 부담을 느낀 또 다른 이유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 때문이었다. 이유 없이 희망버스를 폄하하는 글은 스킵 했지만, 평범한 부산 시민이 "이번에도 차가 막히겠네"라고 쓴 글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백양은 "출발 전 날 자려고 누웠는데 손에 식은땀이 났다"고 심란했던 마음을 내비쳤다.

우리가 탑승한 36호 희망버스가 영도 대교를 지나칠 무렵 백양은 다리 위 한 무리의 전경을 발견했다. 개미떼처럼 모여 있는 전경을 보자 백양은 더더욱 긴장하기 시작했다. 버스는 자갈치 시장 근처에서 정차했다. 백양의 얼굴이 아예 납빛으로 변했다.

희망버스 일정이 끝날 무렵 백양에게 '아직도 전경이 무섭냐'고 물었다. 백양은 "시민들에게 최루액 쏜 게 너무 충격이라 처음 전경들 봤을 때 정말 무서웠고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며 "그런데 계속 보니까 전경들도 사람인데 긴 옷 입고 덥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사람 같아 보인다"고 전경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 문제의 무관심이 '쿨'함이 아님을 깨닫다

 경찰이 '3차 희망버스'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 행진을 불허한 가운데, 7월 31일 오전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영도구 봉래언덕길 위에 올라가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응원하고 있다.
 경찰이 '3차 희망버스'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 행진을 불허한 가운데, 7월 31일 오전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영도구 봉래언덕길 위에 올라가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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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풀어주려 저녁식사 때 맥주에 소주를 말아주었다. 희망버스에선 가급적 음주를 자제할 것을 권했지만 적당한 알코올은 긴장을 풀어줬다.

같이 폭탄주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백양은 "이제 좀 긴장이 풀린다"며 선홍빛 미소를 지었다. 웃는 백양을 보고서야 나도 안도했다. 계속 장난을 걸었지만, 후배가 걱정되던 터였다.

폭탄주 한 잔에 전신이 빨개진 백양을 데리고 집결장소인 한진중공업 조선소 인근의 청학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안에 많은 사람들을 보고나서야 백양은 원래 페이스를 완전히 되찾았다.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백양에게 든든한 '빽'이 되는 듯했다. 영도에선 서로가 서로의 빽이 된다. 누군가도 백양을 보며 안도하지 않았을까.

백양이 풍기던 어둠의 포스가 사라지고, 부산에 도착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열혈 집회 참가자로 변모했다. 대오 속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백양은 박수도 치고 구호도 외치며 문화제를 완전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나는 뒤에서 백양을 바라보며 '다 그렇게 시작한단다. 너도 집회 마니아가 되어보자꾸나. 흐흐' 혼자 읊조렸다.

"직접 와서 보니까 집에서 글로 보는 거랑 많이 다르고 느끼는 것도 많았어요. 희망버스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감정적인 면에 거리를 두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는데, 경험 하니까 무조건 중립을 표방하는 것이 항상 옳은 건 아닌 거 같아요. 사회 문제 관심 안 갖고 정치 문제에 무관심한 게 쿨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무관심이 쿨한 건 절대 아니에요."

희망버스, 현실은 아직... 그러나 사람을 바꾸다

 희망버스에서 나눠준 손수건으로 얼굴 가리개를 만든 백양. 도적 같다
 희망버스에서 나눠준 손수건으로 얼굴 가리개를 만든 백양. 도적 같다
ⓒ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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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해가 떠 있었다. 나와 백양의 몸에서 노숙이 남긴 향기가 풍겼다. 백양은 "처음에 노숙 생각하면 쓰레기 더미에서 자는 줄 알았는데 새벽에 돗자리에 누워서 봤던 밤하늘이 정말 예뻤고 이슬 맞은 것도 좋았고 밤새도록 음악소리가 들려서 캠프에 온 느낌이었다"라고 풍기는 냄새를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희망버스 일정대로 영도 인근 '한진중공업 연구개발 센터'에 들러 기자회견을 열고 시청 앞으로 이동했다. 시청 앞에는 "아름다운 연대 희망버스! 부산시민은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모든 부산 시민이 그런 건 아니다.

서울에서 버스가 출발하기 전 "많은 사람이 모이는 문화제에 처음 가봐서 어제 밤새 잠도 설치고, 재능 교육 농성장에 오기 직전까지 희망버스를 타는 게 옳은 선택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라고 말하던 백양은 희망버스가 서울로 돌아갈 무렵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주변에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다 못해 이야기하면 반감 갖는 애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무슨 말만하면 빨갱이라고 구박해서 제 생각을 다른 사람들한테 밝히는 게 꺼려졌었어요. 그러다보니 할 말이 있어도 웬만하면 말을 잘 안하려고 하고, 정치적으로도 다른 애들처럼 중립이라고 하고. 중립이라고 말하면 편하잖아요. 관심 안 가져도 되고, 어디 안 찾아다녀도 되고.

그렇게 변하고 있었는데 부산에 다녀오니까 중립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소신만 있으면 제 생각을 말해도 별 문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희망버스 다녀오고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부산에서 우리는 현장에선 글로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함께 깨닫고 돌아왔다. 서울 집에 도착할 무렵 백양에게 문자가 왔다.

"고생하셨어요. 힘들긴 했지만 재밌고 갈만 했어요. 역시 선배들 말 들어서 나쁠 건 없는 듯."

만여 명의 참가자 모두는 그들의 일생을 희망버스에 싣고 부산에 다녀갔다. 이제 참가자 만 명이라는 숫자는 놀랍지 않다. 만개의 일생이 영도에 모였다는 사실이 어마어마하다. 희망버스로 현실이 완전히 변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백양처럼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증명 됐다.

그래서 희망버스는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 강유진 기자는 오마이 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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