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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결혼 17년차 부부입니다. 신혼초부터 제가 부부관계를 많이 등한시 했습니다. 저는 아침형, 남편은 올빼미형이기도 하고 체력이 안 좋은 제 입장에선 남편의 생리적 욕구보다 내가 힘들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다 2~3년 전 남편이 연고도 없는 인터넷 모임에 나가 어떤 여자를 집요하게 찍고 있는 걸 우연히 1달 반 동안 그 여자와 주고받은 문자를 보고 알게 돼 놀라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여자에게 보낸 원초적인 문자들을 보고 한 달간 부르르 떨었고 그 여자에게도 앙갚음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해 네이트온을 통해 알게 된 여자의 근무지로 두통의 편질 보냈습니다. 하나는 회사를 상대로 또 하나는 그 여자에게… 그리고 그 여자에게 "문자만 주고 받았고, 아무일 없었다, 배우자의 기분까지 생각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고 일단락됐지요. 남편은 이 사실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을 하진 않았으니까요. 한두 번 차 마시는 것 정도를 내가 중간에서 끊어 끝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충격은 깊습니다.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 문자 내용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생각나는 건 지금도 내 남편이 정신을 못차려서일 겁니다. 나도 똑같이 복수해주고 싶었지만 아이들도 청소년기에 있고, 가정을 버리고 싶진 않은 맘이 간절했고, 돌이켜 보니 내 잘못이 더 크단 판단으로 용서하고 덮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엔 미칠 것 같습니다. 몇년이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담배도 못하고 술 한 잔도 못하는 제가 밤마다 술을 마셔야 잠이 올 정도로 슬펐으니까요. 하지만 모두 다 내 탓이라고 돌리고 매일 기도하고 아이들 챙기고 일하고 운동하며 정신없이 3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남편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해 '즐기실 여자분' 식의 글을 쓰고 자주 그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그렇게 맞춰 주려고 애쓰는데 내 남편는 어디가 끝이고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혼란스러웠습니다. 끝인줄 알았던 남편의 입질을 계속됩니다. 거래처 여자에게 집적댑니다. 또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버스 안에서 핸드폰 바꾸려면 자기한테 연락하라는 어떤 여자에게 연락처를 줬는지 웬 모르는 사람에게서 문자가 오고 남편은 스팸이라며 지웁니다. 나이 40대 후반인 사람이 버스에서 만난 여자가 핸드폰 얘길 한다고 자기 연락처를 곧 바로 알려줍니까? 그 제의자가 남자였다면 연락철 알려줬을까요? 미치겠습니다. 이젠 남편의 신뢰는 바닥이고 도덕성 팔아먹은 놈으로 그렇게 맘을 접어가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무시하게 됩니다. 남편은 내가 동창회 나가는 걸 싫어합니다. 남자들과 섞여 술 한 잔하고 (술도 못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있다가 들어오는 게 싫답니다. 여잔 내돌리면 접시가 깨진답니다. 그러면서 자긴 아직도 나에게 거짓말 하고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고 동창, 번개가고 회식한다하고 동창 만나러 갑니다.

제가 이렇게 남편 카드 내역, 버스카드 내역, 인터넷으로 뒤져보고 스마트폰 뒤져보고 거짓인지 사실인지 확인하면서 살아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3년 전부터 이렇게 살지요. 남편은 자기 핸드폰, 메일 뒤져보는 거 알면 난리치면서 정신병자니 그런 소리하며 화를 냅니다. 전 모든 근거를 다 댈 수 있습니다. 남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난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할까요? … 제가 만약 경제적으로 더 많이 벌면 이혼할까 싶어 안 법니다. 아이들에게 깨진 가정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억지로 맞춰 보려고 애씁니다. 취미생활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남편이라면 아내가 여자문제로 이렇게 상철 입고 아파하면 이젠 이런 거리를 만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남편은 그게 아니에요. "내가 뭐 한 거 있니? 뭐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럽니다. "바람이라도 폈니?" 이럽니다.

참고로 남편은 막내이고, 아버님이 대학생 때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어려서부터 사회생활을 하셨고 형들하고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혼자 지내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남편은 회사에서도 인정 못 받고, 아이들한테도 아빠로서 인정을 못 받고 저한테는 물론이지요. 취미생활로 하는 운동 모임에서도 절 더 인정해 주지 남편은 저보다 인정받지 못합니다. 맏딸인 전 어머니가 저 20대 초반에 돌아가셔서 제가 집안 살림이며 가장 노릇도 해야 했습니다. 뭐든 내가 해결해야 하니 제 성격이 자꾸 완벽해지려하고 꼼꼼해져야 했습니다. 전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보단 자길 먼저 더 생각합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아이들을 먼저 주기보단 자기입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남편과도 잘 살 수 있을까요?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여교수 은숙(문소리)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는 김PD(박원상)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여교수 은숙(문소리)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는 김PD(박원상)
ⓒ MK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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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남편의 신용 카드, 버스 카드, 통장 내역, 인터넷, 네이트온, 핸드폰 문자, 메일 등을 수시로 체크하고 뒤지고 엿보고. 남편은, 틈만 나면 일이나 동창회 하물며 버스 안에서 만난 여자랑 어떻게 하면 좀 놀아볼까 궁리만 하고 있고. 님의 글을 읽어보니 두 분이 왜 그러고들 사나 무척이나 답답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엉켰을 때 재정비나 정리를 위해 우리는 포맷을 새로 하죠? 님의 부부관계도 포맷을 새로 해야겠네요.

글을 통해 받은 제 느낌에 님의 남편은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밖에서 부적절한 깊은 관계의 외도를 만들기보다는 아무 여자한테나 쉽게 집적거리고 야한 말이나 농담 등을 던지며 낄낄거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취미인 거죠. 어쩌면 회사나 가정, 또 취미생활 장소 같은 곳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야한 원색적인 농담 한마디에 쉽게 반응을 보이는 여자들이나 한번씩 찔러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인의 경우는 자랄 때부터 아버지 대신 문제해결을 도맡아 해왔던 습관대로, 혹시 남편이 무슨 문제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수시로 체크하며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과 차를 두어 번 마셨다는 그 여자나 버스에서 만난 핸드폰 여자를 혼자 만나 해결하듯이 말입니다.

원래 그런 경우는 당사자인 남편하고 일을 해결해야 맞는 겁니다. 남편은 늘 낚싯대에 미끼를 껴서 물속에 담가놓고 있는데 님 혼자서 몰래 들어가 잡힌 물고기를 빼낸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요. 낚싯대가 물속에 있는 한 물고기는 또 옵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잡힌 물고기의 종류만 다르지 물고기는 계속 매달려 있을 겁니다.

님은 도대체 언제까지 잡힌 물고기를 체크하러, 남편 문자나 메일을 몰래 뒤져보실 겁니까? 남편 핸드폰 문자를 한 달 이상 체크하고 네이트온을 열어보고.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남편이 거짓말로 둘러댈 때 님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본인도 이러면서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셨다면서요? 조금만 더 심해지면 정신과 치료도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이혼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문제가 생기기 전 해결하려 하시는 것 같은데 님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계십니다. 아이들에게는, 남편이 딴 짓을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남편의 문자나 뒤지며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엄마보다는, 이혼하고 깨끗하게 새 출발하여 당당한 자기 삶을 사는 엄마가 더 필요합니다.

혹시나 아이를 핑계로 홀로서기가 겁나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계속하는 거라면 오히려 아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거지요. 아무래도 분노의 화살이 아이들을 겨냥하게 되지 않겠어요? 이혼이 권장할 만한 사항은 아니지만 그리 두려워할 만한 것 또한 아닙니다. 일단 이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초조함이 없어져서 오히려 결혼생활을 잘 지킬 수가 있거든요.

먼저, 남편을 불러 앉혀놓고 터놓고 얘기를 하세요. "아무리 부적절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난 당신이 아무 여자나 집적거리고 만나고 다니는 거 싫다"고. 큰 잘못도 아닌데 멈추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단호하게 "사랑한다면 지켜 달라"고 요구하세요. 이렇게 말해도 어쩔 수 없다고 거절한다면 "사랑이 없는 부부관계는 지속시키고 싶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당연히 사랑이 없는 결혼은 지킬 의미도 없겠지요.

"노력해 보겠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남편에게서 신경을 끄세요. 남편이 바뀌기를 애타게 기다리지 말고 본인의 일에만 충실하세요. 님이 남편을 지키는 파수꾼이 아니잖아요. 자존감을 가지세요. 돈도 더 많이 벌고 님의 커리어에만 집중하면서 멋지고 당당하게 사세요. 멋지고 당당한 엄마를 보며 자라는 아이들이, 술을 마셔야 잠이 드는 우울한 엄마를 보며 자라는 것보다는 훨씬 더 행복하게 잘 자란답니다(여자가 밖으로 나돌면 접시가 깨진다고요? 40대 후반인 남자가 어떻게 60대 후반도 하지 않을 말을 하는지).

님의 남편 같은 사람은 사실 대가 약하기 때문에 강하고 단호하게 말하면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안 고쳐지면 정리하시고 새롭게 출발하세요. 괜히 문자나 이메일 같은 것 몰래보지 마시고요. 보는 맘이야 이해는 가지만 볼수록 더 궁금해지고 급기야는 님을 정신병자로 만들 우려까지 있습니다. 정신병을 얻고 자존감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될 결혼생활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변신하게 될 멋지고 당당한 님을 그려보며,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남편을 한번 상상해봅시다.

'레인보우 상담실' 엄을순 이프 대표
▲ 상담가 '레인보우 상담실' 엄을순 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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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혼, #새출발, #자존감, #정신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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