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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하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 들어 생겨났거나 악화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차라리 잘한 일을 세는 편이 빠를 것 같다.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으니, 잘한 일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친시장, 친기업 정책'만큼은 잘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현 정부가 기업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됐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낙제점' 발언은 현 정부에 대한 재계의 정서를 잘 드러내 준다. 비록 정부가 윽박질러 억지 사과를 받아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건희 회장은 '낙제는 면했다'고 말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의 입까지 틀어막음으로써 '낙제도 못 면할' 한심한 정부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기업 총수의 말까지 검열하는 정부가 어떻게 '친기업' 정부인가. 두둑이 챙겨준다고 존경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퍼주고 욕까지 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 이것도 업적이라면 업적이겠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10년 9월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조찬 간담회).
 이명박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10년 9월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조찬 간담회).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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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시장' 정책도 그렇다. '친 오세훈'이라는 뜻이라면 모를까, 이명박 정부만큼 반시장적인 정부도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수요, 공급량, 환율 등 시장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대통령 눈초리나 선거일이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제조업과 유통업체에 생필품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앞세웠으니 사실상 협박이었다. 업체들에 일일이 가격 인상날짜를 정해줬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게 무슨 경제체제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해서 물가라도 잡히면 얼마나 좋겠는가.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온 건 선거 후 물가폭등이었다.

이럴 바에야 기업을 모조리 국영화하는 게 낫다. 그럼 정부 마음대로 가격을 주무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러면서도 틈만 나면 '민영화' 노래를 한다.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 사외이사직까지도 '낙하산'을 투하하면서 말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틀어 이렇게 허술한 관치경제를 시도한 정부도 드물 것이다.

여기서 현 정부가 망가뜨린 것의 실체가 드러난다. 바로 '상식'이다.

이명박 정부가 망가뜨린 것 하나 : 상식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후 사회 곳곳에서 상식이 무너졌다. 이루 세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녹색성장' 하나만 보자. 강을 콘크리트로 막고 강바닥을 파내는 공사를 '친환경'이라 우기는 나라가 세계에서 한국 말고 또 있는가?

기억력을 조금 발휘하면 더 기막힌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30만이 넘는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었다. 공정 80%를 향해 가고 있는 현재, 이 일자리는 모두 어디 갔는가? 강바닥에서 모래를 파내 충당한다던 8조 원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수질을 감시용 '로봇 물고기'는 어디 있는가? 다른 물고기의 정서를 배려해 대통령이 직접 제안했다는 '편대 유영 기술 개발'은 어디로 실종됐는가? 한국언론에 따르면 이 모든 기술은 오래 전에 개발됐을 텐데 말이다. 일 년도 채 안 된 작년 6월 18일 <연합뉴스> 보도를 보자.

"이 대통령은 지난달 초 관계수석실로부터 4대강 관련 보고를 받던 자리에서 로봇물고기 크기가 1m가 넘는다는 설명을 듣고 '너무 커서 다른 물고기들이 놀란다. 크기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참모들이 전했다.

그러자 참모들은 '많은 첨단 복합기술이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크기를 줄이는 게 불가능하다'고 답했지만, 이 대통령은 '그러면 그 기능을 나눠서 여러 마리가 같이 다니게 하면 되지 않느냐'며 편대유영 기술 개발을 제의했다는 후문이다.

이 말을 들은 참모들이 연구진과 협의한 결과, 실현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세계 최초의 '편대 유영' 기술 연구에 착수, 최근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모는 '크기를 줄여 여러 마리가 함께 다니도록 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감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감각이 뛰어난 건 사실이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는 감각 말이다. '로봇물고기'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수질오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꺼낸 말이다. 기술적 가능성이나 재정적 검토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태어난 로봇 물고기는 30만 개의 일자리와 편대를 이뤄 국민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설사 로봇 물고기가 다른 고기들의 환대 속에서 4대강을 누빈다고 하자. 이들이 오염상황을 경고하는 신호를 보낸다 치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로봇 물고기 눈에서 광선이 나와 댐과 보를 폭파해 자연상태로 되돌리기라도 하는가? 강의 오염은 장기적이고 누적적인 결과다. 강의 수질을 되살리는 작업은 수영장에서 뜰채로 장난감을 건져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국민들이 로봇 물고기를 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채로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이다. 반대의견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인'이라는 말을 혐오하지만, 그만큼 정치인 자질이 넘치는 사람도 드물다. 그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2010년 4월 28일 오전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 '청와대사랑채' 2층에 마련된 4대강 홍보물에서 4대강 수질 감시를 위해 투입하겠다는 '로봇물고기'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10년 4월 28일 오전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 '청와대사랑채' 2층에 마련된 4대강 홍보물에서 4대강 수질 감시를 위해 투입하겠다는 '로봇물고기'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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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잊는 국민이 무책임한 정부를 만든다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사업 관련 주장 가운데 결정판은 '선박을 운영하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말일 것이다. 배의 스크루가 산소를 공급하기 때문에 물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학자들까지 나서서 이런 몰상식을 옹호했다는 점이다.

나는 '스크루 수질 개선론'이 사실이길 바란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물장구치지 말라'는 꾸중을 자주 들었던 사람으로서 말이다(난 그저 욕탕의 수질을 개선하고 있었을 뿐인데).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보 쌓고 강바닥 파는 일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로이터통신>은 작년 3월 18일 환경단체보고서를 인용해, 4대강 사업이 조류 50종 이상을 멸종위기로 몰고 갈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기껏 하루에 서너 차례 오갈 배가 물을 정화한다고 주장하면서, 강에 떼로 상주하며 시도 때도 없이 물갈퀴를 젓는 새들은 왜 내쫓으려 하는가. 연료도 들지 않고 기름 오염 우려도 없는 '친환경 스크루'를 말이다.

4대강 사업은 전 세계 환경, 생태 전문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독일 수리전문가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는 이달 4일 유엔환경계획 슈타이너 사무총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4대강 사업이 생태를 보존한다는 한국정부 주장은 아무런 학술적 근거도 없으며, 공사 강행 시 상상키 어려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는 경고였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편지를 사적인 주장으로 치부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수많은 전문가 동료 및 환경단체와 조율해 도달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하천 복원은 강을 자유롭게 흐르게 만드는 것이지, 보로 막아 변형시키는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이런 상식적 목소리를 한국에서는 왜 이리 듣기 어려운가.

방법은 하나뿐이다. 몰상식한 발언과 결정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정치인이든, 관료든, 교수든 말이다. 쉽게 잊는 국민이 무책임한 정부를 만드는 법이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정치판에서 건망증보다 기특한 것도 없다고.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몰상식의 책임을 묻는 것과 몰상식이 낳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사실이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4대강 사업을 당장 중단해야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차피 도로 뜯어내야 할 어리석은 공사다. 왜 막대한 돈을 더 들이고 재난의 고통을 당한 후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망가뜨린 것 둘 : 공동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제부터 그토록 열성적인 환경주의자였는지 말이다. 그것도 강만 살릴 수 있다면 온 국토를 다 파헤쳐도 좋다는 급진론자가 아닌가. '지구해방전선(Earth Liberation Front)' 같은 환경 테러단체가 무색할 지경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서울이라는 비인간적인 공간에 생겨난 청계천은 사람들에게 숨 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생각한 바를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이명박 대통령(당시 서울시장)의 성향이 이 작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낸 것도 사실이다. 청계천 복원이 이명박 시장이 생각해 낸 것도 아니고, 복원 과정과 결과가 가장 생태적인 방식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잘 경험하지 못했던 시민들은 이 '불도저'를 환영했다. 그러나 이 '행복한 결과'는 큰 불행의 시작이었다. 안 그래도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계천 신화'는 바람직하지 못한 학습효과를 낳았다.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저질러 놓으면 좋아하는 게 국민들'이라는 그릇된 신념을 강화한 것이다. 

대운하 시절부터 수송과 물류는 사업의 핵심이 아니었다. 4대강 사업의 핵심이 생태와 환경이 아니듯 말이다. 대운하 선박이 서울-부산 구간을 운행하는 데 70시간이 걸리는 비효율을 지적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관광이 주목적'이라고 말을 바꾸지 않았던가. 대운하와 사대강 사업의 공통분모를 파악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바로 '개발' 그 자체다.

이 점은 베른하르트 교수가 슈타이너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4대강 사업이 "하천공학과 하천생태계 측면에서 볼 때 지극히 무책임한 사업으로, 건설업계에 대한 대규모 지원책에 불과하다"고 썼다. '한반도 대운하'든 '강 살리기'든, 땅을 파고 시멘트를 붓는 순간 대통령이 원하는 바는 달성된다.

대선 후보이던 2007년 6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하구에서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대선 후보이던 2007년 6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하구에서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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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 수질이 개선되느냐 마느냐는 부차적 문제다. 강둑 위에 도로를 만들고 주변에 건물을 쌓아 이권을 개입시키기만 하면 된다. 결국 4대강 살리기가 살리려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사적 이해관계다. 4대강 개발은 공동체 소유의 자연을 '민영화'하는 작업인 셈이다.

4대강 사업이 완료되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던 강은 지역별 이해관계로 쪼개질 것이다. 벌써 사업을 놓고 지역 간 갈등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4대강 사업이 완료되고 나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든 자연으로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개입된 이권과 이를 둘러싼 지역갈등이 복원을 차단하는 족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죽든, 옆의 도시가 황폐화되든 상관없다. 내가 투자했는데, 어떤 바보가 이 '사유재산'을 자연으로 되돌리려 하겠는가. 경제적 이해관계는 공동체의 가장 큰 적이다. 사적 이해관계는 '나'의 것이지만, 공동체의 자산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우리가 공유한 것'을 '내 것'과 (인정하기 싫은) '네 것'으로 찢어놓는 작업이다.

이명박 정부가 사악한 이유는, 공동체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점이다. 뉴타운, 4대강, 세종시, 과학벨트, 동남신공항에서 보듯, 이권을 놓고 지역 간에 싸움을 붙이는 것은 현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이명박 이후'를 준비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이처럼 황폐화된 공동체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다.

이명박 정부가 망가뜨린 것 셋 : 삶과 꿈 

이명박 정부가 헛된 고집만 부리지 않았어도 지금 살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4대강 공사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사회안전망 없는 나라에서 위태롭게 살다 목숨을 끊은 사람들, 등록금에 한 푼 보태려고 배달 오토바이를 몰다가 차바퀴에 희생된 대학생들. 삶과 꿈의 파괴는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가장 큰 과오다.

민주화 이후 국민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나서도, 세금을 국민들의 삶을 보호하는 데 쓰기는커녕 강바닥과 건설사 주머니에 쏟아 붓고 있다. 물고기 놀라는 것까지 걱정하는 자상한 대통령이 국민들은 삶은 왜 이리 고통스럽게 만드는가. 물론 그의 '배려'와 상관없이 공사현장에서는 물고기들이 배를 위로 하고 떠오르고 있지만 말이다.

국민들은 몰상식한 정부를 만들어 내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이제 두 번째 어리석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침묵과 인내로 그 몰상식에 동조하는 것이다.


태그:#이명박정권, #4대강, #로봇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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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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