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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 통계 숫자로만 심각성을 말할 뿐 빚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빚 때문에 고통을 겪은 이들의 경험담과 함께 '대출 권하는 금융회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4편에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 말>
생활비가 들어오려면 열흘이나 남았는데, 예상 못한 지출로 5월 2일 생활비가 바닥나고 말았다. 남은 돈은 달랑 4만 6403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많다. 게다가 5월에는 돈 쓸 일이 좀 많은가.

5월 3일 밤 9시, 현금카드로 인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금액 4만 원을 인출했다. 그중 2만 원은 첫째 교통비로 주고, 나머지에서 커피 한 통을 사니 남은 돈은 달랑 1만 2000원. 대학1, 고1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어린이 날에 치킨 한 마리라도 사줘야 할 것 같아 다음날인 5월 4일 비상금 통장에서 돈을 찾아야 하나, 얼마를 찾아야 하나 계산하다가 아쉬운 대로 냉장고 털어 먹을 것을 해주리라 결정하고 은행 마감시간을 넘겨 버렸다.

생활비가 들어오려면 10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5월 2일 예상치 못한 지출로 생활비가 바닥나고 말았다.
 생활비가 들어오려면 10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5월 2일 예상치 못한 지출로 생활비가 바닥나고 말았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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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린이 날을 보내고 5월 6일 다시 계산을 했다. 어린이 날이 아니어도 어버이 날과 부처님 오신 날 등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11일 이전에 돈 쓸 일이 많아 비상금 통장에서 돈을 찾긴 찾아야 하는데 찾은 만큼 쓰게 마련이라 가볍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15만 원을 찾아 그중 10만 원으로 고기도 사고 상추며 반찬 몇 가지를 사다 어버이 날 시부모님을 집으로 모셔와 고기를 구워 드렸다.

6년째 신용카드 없이 살고 있다. 게다가 이처럼 현금인출카드로 돈을 찾을 수 있는 통장 잔고가 바닥나면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은행 마감 전까지 창구에 가야만 돈을 찾을 수 있도록 해놓아 갑자기 돈이 필요할 적에, 난감할 때가 많다. 아마도 예전처럼 신용카드가 있다면 요즘처럼 돈 쓸 일을 앞두고 이처럼 번거로운 일도, 돈 걱정도 줄었을 것이다. 카드 한 장만 있으면 현금을 쉽게 마련할 수 있고 무엇이든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카드의 혜택과 편리함, 누릴 대로 누렸는데...

6년 전까지만 해도 내게도 신용카드가 4개나 있었다. 그중 1994년 12월에 발급한 A카드의 한도는 1200만 원. A카드 발급은행은 성인이 된 1985년부터 거래를 했고 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적은 액수일지라도 적금도 자주 들고 했기에 1990년대 말 아무런 담보도 보증인도 없이 1000만 원을 신용으로 대출까지 받을 정도로 내겐 주거래은행이었다. 그런 만큼 신용카드 한도도 높았다.

남편과 내가 가게를 하다 보니 우리는 고객이자 가맹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행이나 카드회사에서 신용카드 발급 제안이 먼저 왔다. 2000년 초, 당시 신용카드 회사들은 카드 유치 경쟁을 하며 각종 혜택을 내밀었다. B카드는 놀이시설을 이용하는데 혜택이 많아서, C카드는 중소사업자들에게 혜택이 많아서, D카드는 대형마트 앞에서 권유하기에 난 생각없이 카드를 발급 받았다.

나머지 3개 카드의 한도도 700만 원, 350만 원, 250만 원. 대략 이랬다. 한 번도 연체하지 않은 데다가 사업자이고 A카드사와의 신용상태나 거래금액 등 조건이 좋다보니 발급 당시 30만~50만 원으로 출발한 한도는 그리 오래지 않아 몇 백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한도가 높은 만큼 쓰기 편했다. 그리하여 한동안 카드의 혜택과 편리함을 누릴 대로 누렸다. 지금처럼 생활비가 바닥 나면 서슴없이 현금서비스도 받았다. 어버이 날이나 부모님  생신을 앞두고 지금처럼 목돈 들어갈 일에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당장 가진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선물을 해드리고 멋진 곳에 모시고 가 생색을 내기도 했다. 카드로 마당놀이 같은 표를 예매해서 모시고 가기도 했다. 여행할 때도 신용카드 덕분에 불안하지 않았다.

화재로 집 전소... 설상가상으로 매출도 '뚝'

신용카드 사용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4월 화재 직후. 몇 년 전 화재 관련법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내 실수로 남의 집을 홀랑 태워도 내 집까지 전소했다면 도덕적인 책임만 있을 뿐 일부러 불 내지 않은 이상 100%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다. 당시가 그랬다. 이웃의 실수로 불이 났는데 그 집과 우리집이 다 타 보상비 한 푼 받지 못했다.

복구가 끝나고 두 달 만에 집에 들어갔지만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많았다. 형제들이 냉장고며 세탁기 같은 큰 가전제품들은 사줬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서 사야 할 것들이 많았다. 화재 복구 비용 때문에 통장의 돈은 바닥난 지 오래인데다, 사고 사고 또 사도 살 것은 끝이 없으니 자연 쪼들렸다. 옷이 몇 개 밖에 없어 남편이나 아이들이 옷을 벗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빨아 말려야 할 정도로 쪼들렸다. 

2006년 2월 가게 접던 날 찍은 가격표 매기던 기구와 장갑, 그리고 작업 중 고단함을 달래고자 마셨던 커피 한잔.
 2006년 2월 가게 접던 날 찍은 가격표 매기던 기구와 장갑, 그리고 작업 중 고단함을 달래고자 마셨던 커피 한잔.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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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화재 이후 장사도 잘 되지 않았다. 경기침체 영향도 많았지만,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난 대형마트나 홈쇼핑 등의 영향이 더 컸다.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나 홈쇼핑의 싼 가격과 혜택에 우르르 몰려가니 장사가 될 리 없었다.

그래도 계절 따라 빚을 내서라도 물건을 갖춰야만 했다. 어떻게 된 것이 일부 할인마트에서는 같은 회사 같은 모델을 우리의 매입가보다 훨씬 싸게 팔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은 대형할인마트에서 구입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 팔기도 했다. 이는 우리 업종만이 아니었다. 음료는 더욱 심해 우리가 '포카리'라고 부르던 음료도매상은 IMF 무렵부터 거의 모든 품목을 대형마트서 사다가 일반 구멍가게에 납품할 정도였다.

당시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용카드뿐

장사는 안 되고 살 것은 많고, 가게 물건값까지 대야 하는 상황. 당시 화재로 깨질 대로 깨진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용카드뿐이었다. 꼭 필요한 것들만 샀지만 하루하루 신용카드 결제금액은 불어났다. 아무리 절약해도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키우자면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것들이 있는데다가 다음 달이면 좀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갈수록 장사가 되지 않아 임대료와 물건값 갚기에도 허덕였다.

돈에 쪼들리는 날이 계속되고 신용카드에 의지하면 할수록 이 카드에서 현금서비스 받아 저 카드를 메우는 일이 잦아졌고, 현금서비스 금액은 점점 늘어만 갔다. 가게까지 하고 있다보니 어떻게든 신용불량만은 피하고 싶어, 좀 싸게 나온 물건을 한꺼번에 매입할 때 급하게 쓰던 일수나 입금을 약속한 물건값을 카드대금 갚는 데 우선 쓰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불어나기 시작한 신용카드 대금은 도무지 줄어들지 않았다. 돌려막기를 하거나 어찌어찌해서 메우는데도, 진흙 속을 굴러가는 수레바퀴에 달라붙는 흙덩이들처럼, 갚아야 할 카드대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그러다보니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날아든 청구서만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잠을 자면서도 갚아야 하는 카드대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위에 눌리는 날이 많아지고 형체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쫓기는 날이 많아졌다. 2005년 가을, 갚아야 할 신용카드 대금은 천오백만 원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카드대금을 걱정하면서도 카드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악순환이었다.

카드대금 갚기 위해 애들 돌반지 팔고 세뱃돈 통장 깨고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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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계속 적자인 가게를 더는 미련두지 말고 접자고 마음먹을 정도로 가게 사정이 형편없었다. 솔직히, 자본을 무기삼아 소비자들을 싹쓸이 하려는 듯 달려드는 대형마트와 싸울 자신이 더는 없었다. 월 50만 원의 임대료도 내지 못해 6개월 가까이 보증금에서 까이고 있었다. 그만큼 돈 나올 곳이 없었던 것. 가게를 접으면 그나마 들어오던 돈마저 없을 것이기에 굶더라도 우선 카드대금부터 정리해야만 했다.

결국 아이들이 태어난 직후 만들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붓던, 아이들 세뱃돈이 고스란히 모인 차세대 주택통장 두개를 해약했다. 30개가 넘는 아이들 돌 반지도 눈물 머금고 팔아야만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깨고 싶지 않아 화재 후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붙잡고 있던 소중한 것들이었다.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도 팔았다. 자그맣게 들고 있던 적금도, 보험도 모두 해약했다.

그럼에도 갚아야 할 카드대금이 턱없이 부족해 형제들에게 손을 벌려야만 했다. 그러고도 250만 원 정도가 부족해 가장 작은 한도의 D카드는 메우지 못한 채 카드들을 죄다 잘라버렸다. 그리고 2006년 2월 엄청난 재고를 떠안고 가게를 정리했다. 이후 생활은 더 궁핍해졌다. 갚아야 할 빚 때문에 아이들과 20만~3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티곤 했다. 그러니 D카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한달 한달. D카드사는 시시때때로 전화해 본격적으로 대금납부를 재촉했다. 전화통화지만, 대기업 이미지와 전혀 다르게 D카드의 카드대금납부 재촉은 잔인했다. 말로만 듣던 사채업자들 수준이었다. 이후 친구에게 속사정을 털어놓고 돈을 빌려 청산했고 친구에게는 3년이나 지난 2009년에야 돈을 갚았다. 당시 거의 매일 아침 계속되던 D카드사의 카드대금 납부 협박은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한 장만이라도 남겨둘 걸 그랬나?' 처음엔 후회도 했지만...

카드를 자르고 한동안 카드의 편리함을 잊을 수 없어, '한 장만이라도 남겨 아쉬운 대로 쓸 걸 그랬나?' 생각하며 후회도 많이 했다. 솔직히 신용카드 한 장 없는 생활이 얼마나 불편한지 모른다. 모든 걸 돈 주고 사야 하기 때문이다. 현금을 주고 사면 돈이 아깝고 카드로 사면 왜 아깝다는 생각이 덜 드는지, 참 멍청하다. 여하간 이처럼 현금을 주고 사야 하니 망설이게 되고, 돈 없어서 못 사고 그러다보니 그만큼 쓸데없는 지출이 줄어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젠 외상으로 산 물건이 전혀 없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자고 눈독 들인 지 3년 만에 장만한 세라믹 냄비세트.
 사자고 눈독 들인 지 3년 만에 장만한 세라믹 냄비세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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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요즘 주부들 사이에 인기 있는 세라믹 냄비 세트를 구입했다. 사자고 마음먹은 지 3년 만에 구입한 것이다. 아마도 카드가 있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구입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한꺼번에 현금 12만 9000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이뿐이랴. 카드가 없기 때문에 장을 볼 때도 가진 현금에 맞춰 물건을 고르며 늘 조바심내곤 한다. 카드 한 장 없이 살아야만 하는 불편을 어찌 다 설명하랴.

게다가 필요한 생활비만 수시로 뽑아 쓸 수 있는 현금카드 발급 통장에 넣고 나머지는 통장을 들고 창구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해놓았으니 며칠 전처럼 예상하지 못한 지출 때문에 생활비가 바닥나면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 계획이다. 지금의 내 형편에는 이런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카드대금 갚는다고 마음고생 하지 않아도 되는 그 홀가분함이 맘껏 쓰지 못해 초라한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돈이 한창 많이 들어가는 시기여서 잠을 쪼개며 벌어도 늘 쪼들린다. 이러니 신용카드가 다시 생기면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다시 예전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솔직히 카드에 의존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올 초, 대학생이 된 첫째에게 "이 다음에 엄마와 한마디 상의 없이 신용카드를 만들면 그날부터 엄마와의 인연은 끊는 걸로 알아라!"고 경고 반, 당부 반의 말을 했다. 아이가 현명하고 계획적으로 돈을 쓰지 못하면 신용카드 발급을 최대한 막을 작정이다. 지난날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많이 썼다지만 돌이켜보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카드 무서운 줄 모르고 쉽게 샀고, 카드로 비싼 공연을 본다거나 비싼 외식을 하는 등 형편에 맞지 않는 지출도 꽤나 했기 때문이다.


태그:#신용카드, #카드대금, #현금서비스, #저축, #현금인출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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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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