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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어린이날 맞이 나들이에 나선 아이들
 4일, 어린이날 맞이 나들이에 나선 아이들
ⓒ 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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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들꽃들이 논길에 피었다. 민들레가 핀 옆자리에 누운 주름잎이 피었고 누운 주름잎 옆에 봄맞이가 그 옆엔 꽃다지, 냉이꽃이 서로서로 웃으면서 재잘거리고 있다. 저 봄꽃들은 서로 다르지만 함께 하고, 함께 하여도 제 빛깔을 놓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소통, 부모·자식 간의 소통도 저 들꽃처럼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유치원 부모들의 경우 자식과 부모의 소통에서 언제나 부모 중심이기 쉽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앞두고 유치원에서 이와 관련된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니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을지 조금은 답이 보였다. 사랑의 방식을 곰곰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바라는 부모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부모의 욕구를 알리기 전에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욕구들을 알면 소통이 쉽지 않을까? 아이를 안다는 것은 관심을 갖고 어떤 욕구가 있는지 늘 놓치지 않는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의 욕구를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그것이 먼 훗날 좋은 부모·자식 관계를 돈독히 하는 기초가 될 수도 있다. 유치원 시기 아이들과의 소통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아이와 함께하는 어린이날... 이 날만이라도 '조건 없는 사랑'을 주자

엄마, 아빠에게 바라는 소원을 적고 있는 아이들
 엄마, 아빠에게 바라는 소원을 적고 있는 아이들
ⓒ 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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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치원 아이들과 어린이날에 대한 수업을 했다. '엄마, 아빠한테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이고 부탁하고 싶은 것엔 어떤 것이 있는지' 아이들에게 묻자 7살 태환이 조금은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우리 아빠가 말 잘 들으면 장난감 사준다 했어요."
"나도요."

질문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선물'하니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의했다. 'ㅇㅇ하면 ㅇㅇ해줄게'. 청춘 남녀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은 무조건이지만 부모들은 조건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흔히 내세우는 조건 중 하나가 '말 잘 들으면'인데 이 시기에 아이들에게 붙이는 이런 조건들은 자존감을 낮게 하고 죄의식까지 키워줄 수도 있다. 그러니 어린이날만이라도 무조건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보자.

"엄마, 아빠한테 소원편지를 써봐. 그러면 선생님이 꼭 전해줄게."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연필을 꽉 쥐고 소원을 그리고 적었다.

어린이날 소원을 적은 아이들의 쪽지
 어린이날 소원을 적은 아이들의 쪽지
ⓒ 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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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제부터 말 잘들을게요. 혼내지 마세요.
엄마 아빠, 화·목요일마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요.
아이스크림 많이 사주세요.
팽이 사주세요.
자전거 사주세요.
장난감 사주세요.
로봇이랑 과자 사줘요.
팽이 사주세요.

부모들이 어린이날 이벤트처럼 가야 한다고 여기는 놀이공원에 대한 이야기는 한 명도 없
고 지금 바로 아이들 옆에서 해결 가능한 소원들 뿐이다. 우리 반 호재는 부모님께 이런 감사편지를 쓰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말 안들으면 신나게 안 때리고 살짝 때리고
말 쪼금 안 들으면 안 혼내고 쪼금만 혼내고
자전거 내가 못탈 때 내가 연습하는 것 봐줘서 좋아요.

우리 아빠는
엄마가 약속 안 지키면 아빠가 지켜줘서 고마워요.
엄마가 안 데리고 가면 아빠가 오늘만 쉰다고 데리고 가줘요."

엄마와 함께 한 행복한 기억을 표현한 아이의 카드
 엄마와 함께 한 행복한 기억을 표현한 아이의 카드
ⓒ 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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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혼내고, 자전거 타는 것 지켜봐주고, 약속 지켜주는 부모가 좋단다. 좋은 부모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 아이의 욕구에 함께 하는 부모다. 딱지를 좋아하면 함께 딱지를 치고, 팽이를 좋아하면 팽이를 사서 함께 하고, 자전거 타기에 열중이면 자전거를 함께 타고, 인형놀이를 좋아하면 인형놀이에 동참하는 것.

늘 직장생활에 지쳐서 매일 미안했다면 숙제처럼 해결하는 놀이공원보다 어린이날 지금 내 아이가 바라는 놀이에 동참하는 건 어떨까.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것들 중심으로 어린이날 쿠폰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틀림없이 어린이날 이후로 내 아이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작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함께 하다보면 이 봄, 서로 다르지만 함께 하는 들꽃가족이 되어 있을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이 제안하는 '어린이 쿠폰'
- 문방구 가서 원하는 것 모두 사기 (문방구는 아이들의 '보물섬' 같은 곳. 아이들이 문방구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도 잠깐이다. 매일 그럴 순 없지만, 어린이날 하루만이라도 아이들이 '조건없이 충분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보는 건 어떨까. 그래도 만 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바구니에 먹고 싶은 것 모두 담기
- 다니던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기
- 모래놀이 해가 질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하기
- 좋아하는 친구를 집에 초대하기
- 아랫집에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 동안 쿵쿵 뛰기
- 자주 가던 산책길에서 꽃 목걸이 만들어주기
- 30분동안 하자는 것 다 하기


태그:#유치원,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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