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듣고 미국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U.S.A."를 연호하며 성조기를 흔들었다. 9.11 이후에도 성조기는 곳곳에 등장했다. 거리의 상점, 식당, 야구경기장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성조기를 볼 수 있었다. 테러의 충격을 추스르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성조기는 억지로라도 미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을 짜내기 위해 필요한 상징이었다.

 

세계인들의 눈에 성조기는 그저 한 나라의 국기일뿐 결코 그전처럼 위협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 성조기는 분노를 숨기고 있었고 곧 복수를 불러왔다. 부시와 공화당은 연달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공격을 단행했고 전 세계는 전쟁과 테러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9.11 테러 이후 지난 10년 동안 힘들게 살아온 것은 미국인들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인들이 크게는 전쟁과 테러의 위협에서부터 작게는 여행 때마다 복잡한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오히려 미국인들보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더 많은 생명의 위협과 생활의 불편을 겪어야 했다. 9.11 테러가 일어난 후 10년 만에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이 사살됐다. 미국인들이 다시 들고 나온 성조기는 10년 전과는 달리 자부심의 표시였지만 그것은 다른 형태의 분노와 복수를 부르고 있다.

 

빈 라덴 사살로 세계가 더 안전해졌다는 오바마, 과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빈 라덴의 사망으로 세계가 더 안전해졌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말은 빈 라덴 사망의 의미를 강조하고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독려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빈 라덴 사망 발표 직후 미국 정부는 전 세계의 미국인들에게 여행 주의보를 발령하고 되도록 집과 호텔에 머물 것을 당부했다. 미국 씨아이에이(CIA)의 레온 파네타 국장도 알 카에다의 복수를 경고했다.

 

"빈 라덴은 죽었지만 알 카에다는 사라지지 않았다. 테러주의자들이 복수를 할 것이고 우리는 계속 경계하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9.11 이후 국내 이슬람 급진세력들의 테러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영국도 긴장하고 있다. 윌리암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알 카에다의 복수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 카에다 중에 앞으로 몇 주 동안 자신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집단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특별히 앞으로 몇 주간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이유 있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다. 아프가니스탄은 9.11 이후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의 공격을 받았고, 그때 시작된 아프간 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권을 잃은 탈레반은 1~2년은 잠잠했지만 곧 세력을 재결집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세력을 확장해 오히려 아프간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포함한 무장세력들의 테러와 민간인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전쟁으로 매해 2~3천 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되는데, 그 중 60% 이상은 탈레반을 포함한 무장세력들에 의해 희생당한다.

 

빈 라덴의 사망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 등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들에게 내부 결속을 다지고 외부 공격의 명분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빈 라덴의 사망이 1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아프간 전쟁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알 카에다에게 아프간 전쟁은 미국과 나토라는 기독교 세계가 이슬람 국가를 침략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 의한 빈 라덴 사살은 이와 같은 알 카에다의 주장을 재확인시키고 미군과 나토군은 물론 그들에게 동조하는 아프간 사람들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최근 '봄의 대반격'을 공언한 탈레반에게도 좋은 명분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정책 연구센터의 하군 미르 부소장은 알 자지라(Al Jazeera)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전쟁이 지금처럼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 라덴 사살은 우리의 고통을 끝내주지 못할 것이다. 알 카에다는 테러 공격을 계속할 것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 저항도 계속될 것이다."

 

파키스탄은 9.11 이후 외교적 거래를 통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협조하기로 했지만 그로 인해 아프간 전쟁에 말려들어 테러의 표적이 되어 왔다. 9.11 이후 알 카에다와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파키스탄 서부로 피신했다. 이들은 이 국경지대를 근거지로 삼아 꾸준히 파키스탄에 테러 공격을 가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나토군의 보급차량들을 공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동시에 발생한 두 건의 폭탄 공격으로 50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테러 공격 때문에 지난 6개월 동안에만 수백 명이 사망했다. 빈 라덴의 사살에 파키스탄 정부가 협조한 것 때문에 이 지역의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 복수를 명분으로 한 테러를 감행한다면 결국 다시 무고한 사람들만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빈 라덴 사망... 급진 세력들에게 테러 정당화할 명분 줘

 

빈 라덴 사살로 급진 이슬람 세력들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이라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을 다시 수면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지지하지 않는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과 같은 급진 이슬람 세력들이 주장하는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의 대립 논리에도 동조하지 않는다. 아랍 민주화에서 보듯 아랍 세계의 무슬림 젊은이들은 오히려 세계화에 익숙하고 서방 기독교 세계와 같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세계가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것은 9.11 테러가 보여주는 것처럼 소수 급진세력의 행동이 전 세계에 큰 재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빈 라덴 사망은 그런 급진 세력들에게 전 세계 무슬림들을 설득하고 테러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다.  

 

미국이 특별히 자국민들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한 것 같다. 미국인들은 빈 라덴의 죽음에 환호했고 성조기를 흔들며 빈 라덴이 바로 미국의 주적이었음을 확인했다. 이같은 미국인들의 환호와 그들이 흔든 성조기는 알 카에다에게 복수의 대상이 누군지를 확실히 각인시켜준 셈이다. 그러나 그 복수가 미국인들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세계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복수는 알 카에다에게는 필연적인 일이다. 알 카에다는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도자가 사살된 것에 분노하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려 할 것이다. 행동으로 분노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내부적 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의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을 설득하고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도 분노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알 카에다는 국제정치의 질서 밖에서 활동하는 비국가 집단이다. 더군다나 한 곳에서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음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집단은 힘으로 막거나 없앨 수 없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자멸할 때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빈 라덴의 사망이 알 카에다의 존재를 세계는 물론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게도 다시 각인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알 카에다의 복수 다짐 때문에 전 세계가 긴장과 공포에 휩싸인 이 상황은 뭔가 잘못된 느낌이다. 미국인들이 성조기를 들고 외친 승리가 알 카에다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태그:#오사마 빈 라덴, #알 카에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