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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 노원구 상계6동에서는 SSM(기업형 슈퍼마켓)과 지역상인들 간의 싸움이 1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영업을 방해했다는 이유의 고소장이었다.

 

작년 11월 국회에서 유통·상생법이 통과되면서 무차별적인 SSM 입점에는 제동이 걸렸다. 그와 동시에 상계6동 SSM입점저지투쟁도 끝나나 싶었지만 대기업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서 다시 골목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3월 28일 새벽 기습 입점을 하고 이틀 후 개장을 했다. 그사이 홈플러스는 수십 명의 용역직원을 고용해서 물리적으로 상인들을 밀쳐내었고 그사이에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영업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10여 명의 상인들을 고소고발한 상황이며 현재 2차 소환장까지 나온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 22일 상계6동에 들어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앞에서는 SSM 입점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1인시위가 있었다. 1인시위를 한 정구화(45)씨는 전날 아버지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울산에 내려갔다가 바로 이곳으로 와서 그런지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2009년 2월부터 계절이 6번이나 바뀌는 시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흡사 바위로 계란 치는 격이며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정씨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그저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던 자신이 이렇게까지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1년이 넘게 집회, 1인시위, 야간농성 등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로 싸워오면서 잃은 것도 많지만 배운 것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1997년 IMF 당시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몰아친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하던 직장에서 쫓겨나와 자그마한 동네슈퍼를 운영하기 시작해, 지금은 상계6단지에 있는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다니던 회사가 페업신청을 하고 직장인들이 쫓겨나온 것을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은 방만하고 부실한 운영을 한 기업과 이를 방조한 정부가 했는데 그 피해는 온전히 직장인들이 떠안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고 하나 둘씩 살길을 찾아 자영업의 길로 들어섰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대기업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자신처럼 생계의 위협을 받는 서민들이 점점 설 곳이 없어져 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정부의 무책임함을 원망했다.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은 바로 지역상인들

 

정씨와 SSM의 첫 싸움은 200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계7단지에 롯데쇼핑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변상인들과 함께 SSM 입점 저지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그땐 이 싸움이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누구도 대기업에 대항하여 싸우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상인들이 모여 억울함을 호소하고 목소리를 내면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서민들의 편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7단지 SSM에 대한 사업조정신청을 내고 반대집회도 하고 있을 때, 정작 SSM이 들어 온 곳은 엉뚱하게도 6단지에 있는 정씨의 마트 바로 맞은 편이었던 것이었다. 정말 등잔 밑이 어두운 상황이었다. 그 이후로 눈에 띄게 매출은 떨어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2010년 2월 또 다시 SSM이 근처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지금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상계6동 하라프라자 앞이었다. 그땐 정말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바로 코앞에 SSM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옆에 다른 SSM이 또 들어온다는 것은 지역 중소상인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실제 정씨와 함께 SSM 저지 반대 운동을 함께하던 인근 슈퍼들 중에 세 곳이 그사이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번에 SSM이 다시 들어온다면 그 역시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서 지금껏 이어온 것이었다.

 

"장사라는 것은 농사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 흘려 일하고 다시 내일을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다 보면 일한 만큼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기업 SSM이 들어오면서 생존권이 위협당하니까 그땐 앞뒤 가리지 않고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더라."

 

그는 1년이 넘게 싸워왔지만 아직 투쟁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기만 하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함께 싸움을 해준 분들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리에서 마이크 잡고 말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했다. 때론 이런 나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볼까봐 두렵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싸움에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때 힘이 많이 난다."

 

투쟁을 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1년간의 투쟁 끝에 작년 말 국회에서 유통·상생법이 통과되고 가맹점주가 입점을 포기했다. 그때는 정말 '하니까 되는구나', '계란으로 쳐도 바위가 깨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겼다고 생각하던 차에 다시 2차로 가맹점주가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힘들게 싸웠던 1년의 시간이 왠지 헛된 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 싸움 이기면 봉사활동 하며 살고파"

 

"400여 일이 넘는 투쟁 속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이다. 이런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나 혼자만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다보니까 그동안 살아운 모습이 반성되기도 한다.

 

아마 상인들만의 싸움이었으면 이렇게까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치 자기 일처럼 함께 도와주는 정당, 시민사회단체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투쟁이 잘 마무리된다면 어떻게든 지역에서 작은 봉사활동이라도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비록 아직 투쟁이 끝나진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조금씩 실천해가는 것만이 이번 투쟁에서 내가 받은 것들에 대해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장사를 하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꼭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면서까지 장사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최소한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라며 노원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SSM 싸움'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정씨는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SSM문제에 대해 '허가제'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이라고 했다. "SSM가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 막을 순 없지만 최소한 사전에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서 지역상권에 피해를 끼치는지 조사도 하고 지역주민들의 여론도 충분히 수렴한 뒤에 허가해 줘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유통·상생법이 신고제로 돼 있어 지금과 같이 피해받는 상인들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라며 유통·상생법 개정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또한 "SSM이 결국 들어오게 되더라도 중소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며 "대기업 SSM들의 영업시간 및 물품제한, 배달금지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갈등과 반목이 아닌 진정한 화합 속에서 중소상인들과 도움이 필요한 약자들이 발 뻗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이번 투쟁에 승리해서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내비쳤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노원자치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S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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