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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노병들이 제식훈련 시범을 보이고 있다.
 호주 노병들이 제식훈련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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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평대대(호주육군 3대대) 막내였습니다. 18살이었지요. 전쟁이 그렇게 참혹할 줄 몰랐습니다. 60년이나 지났는데 지금도 악몽을 꿉니다. 가평전투에서 죽은 전우들이 꿈속에 나타나는 겁니다. 피투성이로..."

한국전 참전용사 프랭크 윈터스씨(78)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오랫동안 하늘을 응시했다. 가슴에 훈장을 여러 개 단 역전의 용사가 눈물까지 내비쳤다. 잔뜩 찌푸린 시드니의 하늘에서 간간이 가을비가 흩뿌렸고.

프랭크 윈터스씨는 1932년 서부 호주의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규모가 큰 양 목장을 소유한 아버지의 희망으로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하던 중이었다.

1949년 연말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같은 동네 형들이 전쟁터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형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여러 도시를 구경했던 얘기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외국을 구경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병무당국에 물어보니 일본에 점령군으로 주둔하는 3대대에 지원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원입대를 한 겁니다. 그런데 지도를 펼쳐보니 일본이 8000km나 떨어져있는 나라였어요.

결국 일본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기초훈련을 받는 도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부산을 통해서 3대대에 합류해보니 평안북도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후에 북진하던 3대대가 중공군한테 밀려서 후퇴를 거듭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가평전투'가 벌어졌고요."

시드니에서 열린 '가평전투' 60주년 추모식

지난 4월 26일 오후, 콩코드병원(구 전쟁부상자 원호병원) 채플에서 '가평전투 60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 NSW지부'가 주관한 추모식에는 마리 배셔 NSW주 총독과 한국전쟁 참전국가 외교사절 등이 참석했다.

호주 출신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한인동포들이 다수 참석한 추모식은 참전용사 거스 브린씨의 '가평전투' 소개와 마리 배셔 주총독의 추모사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한편 콩코드병원 인근에 위치한 시드니제일교회 성가대원이 찬양 순서를 맡았다.

배셔 주총독은 "한국과 호주 출신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가평전투 60주기 추모식'을 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면서 "60년 전에 '가평대대' 용사들은 후퇴하지 않는 호주군인 특유의 군인정신으로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어 한국군과 UN군이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서 3대대의 용맹함을 상기시켰다.

배셔 주총독은 '가평전투' 당시 UN군 총사령관이었던 매튜 B. 리지웨이 장군이 쓴 공적인증서를 인용하여 "3대대가 4월 23일 새벽부터 24일 야간까지 완전하게 포위된 상태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결사항전의 정신으로 중공군 1개 사단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한편 배셔 주총독은 "1년 전에 방문한 한국은 전쟁의 참화를 겪은 흔적이 전혀 없는 활기 넘치고 발전된 모습이었다"면서 "하루 전에 시드니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수많은 한국 출신 학사, 석사, 박사학위 수여자를 보면서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을 확인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한국전쟁때 인민군에 의해 모두 점령되고 부산 일대만 남은 한국지도를 보여주는 거스 브린씨.
 한국전쟁때 인민군에 의해 모두 점령되고 부산 일대만 남은 한국지도를 보여주는 거스 브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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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군의 한국전쟁 참전

60년 전에 발생한 '가평전투' 소개를 맡은 참전용사 거스 브린(83)씨는 부산 일대만 남은 한국 지도를 보여주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번째 전쟁이었던 한국전쟁은 미국의 지지를 받은 한국과 소련의 지지를 받는 북한이 맞붙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잘 준비된 막강한 군대였다면 남한 군대는 수도 서울을 이틀 만에 빼앗길 정도로 무력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일본에 주둔 중이었던 맥아더 휘하의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역시 일본 히로시마에 주둔하고 있던 호주 공군 소속 제77비행대대는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면서 전쟁임무를 수행했고, 그 당시 호주 공군기는 세계 전쟁사에 기록된 최초의 제트전투기(호주끼)였다.

UN군이 참전을 결정하자 중공군이 개입했고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영연방연합군은 주로 중공군과 전쟁을 벌였다. 호주 3대대는 승전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주둔하다가 1950년 9월 28일, 호주항공모함 '솔 헤이븐 호'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병력의 70% 이상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었다.

미군과 함께 북진을 거듭하던 3대대는 11월 1일, 평북 정주에서 초대 대대장이었던 찰리 그린 중령이 중공군 포탄을 맞아서 전사하는 비극을 당했다. 그 당시 중공군은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왔다. 하루 9만여 명의 군인과 군수물자가 아무 어려움 없이 건너와서 인해전술을 펼친 것이다."

'가평전투' 공로 인정받아 '가평대대'로

"결국 1월 4일부터 한국군과 UN군의 후퇴가 시작됐고, 중공군의 춘계대공세가 펼쳐진 4월 23일부터 이틀 동안 경기도 가평 일대에서 '가평전투'가 벌어졌다. 이틀 동안 3대대가 가평전선을 사수한 후, 뉴질랜드와 캐나다 포병이 폭격을 퍼부어 3천여 명의 중공군이 전사했다.

4월 24일 밤에 중공군이 퇴각한 가평전선은 수도 서울에서 불과 56km 떨어진 곳으로 3대대의 희생적인 전투가 없었다면 서울까지 속수무책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았다. 호주군 33명과 뉴질랜드군 2명이 전사한 '가평전투'는 호주전쟁사에 기록된 위대한 전투로, 3대대는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부대표창과 함께 '가평대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후 3대대는 수원지역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마령산 지역으로 투입되어 휴전이 될 때까지 지루한 참호공방전을 계속했다. 모래주머니로 만든 벙커에는 쥐가 득실거렸고 주로 야간에 기습해오는 중공군 공격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

한국전쟁은 3년 1개월 하고도 이틀 더 이어져서 1953년 7월 27일에 휴전됐다. 3년 동안 1만7000명의 호주군이 참전해서 전사 339명, 부상 1216명, 포로 29명의 희생을 기록했다.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게 하소서(Lest We Forget)."

18살의 나이로 가평전투에 참가했던 프랭크 윈터스씨.
 18살의 나이로 가평전투에 참가했던 프랭크 윈터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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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병사 프랭크 윈터스의 눈물

'가평전투' 60주기 추모식에 시드니에 거주하는 프랭크 윈터스(78)씨가 참석했다. '가평전투' 참전용사 대부분이 80세 이상의 고령이고 다른 주에 거주하기 때문에 그가 유일한 참석자였다. 추모식이 끝난 다음 귀가하는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내가 막내라서 별로 할 말이 없다"면서 병원 뒤쪽의 벤치에 앉았다.

윈터스씨는 "그 당시 나는 18살이었다. 부대원 대부분이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라서 나를 대열 뒤쪽에서 싸우도록 배려했다"면서 "이틀 동안 빵 한 조각 먹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호주인 특유의 동료애(mateship)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전투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그때마다 전우가 나를 구해주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한 번은 나를 바위 뒤쪽으로 밀어붙인 동료(중사)가 내 대신 총탄을 맞아서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고 말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윈터스씨는 "가평전투 부상자 중에서 많은 인원이 이곳 콩코드병원에서 평생 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 되어 외롭게 투병생활을 하다가 숨진 전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 대목에서 인터뷰가 한 번 더 중단됐다. 또다시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부채춤 공연을 펼친 '송민선 무용단'이 가평부대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부채춤 공연을 펼친 '송민선 무용단'이 가평부대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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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춤을 추는 나라에서 왜 전쟁이..."

채플에서 열린 추모식이 끝난 다음 배셔 주총독 등 참석자 대부분은 리셉션에 참석했다. 외교사절과 함께 '가평전투 60주년 기념 케이크'를 자른 배셔 총독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참전용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편 리셉션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무용가 송민선씨가 지도하는 <코리안무용아카데미> 소속의 배유미씨와 임수미, 변조은 어린이 무용수가 부채춤과 북춤을 공연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한국무용을 처음 관람한다는 배시 잉글만씨는 "한국무용이 참 황홀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춤을 추는 나라에서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을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다수의 한인동포들이 참석한 '가평전투' 60주기 추모식은 한국과 호주의 우의를 다지는 행사였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터키, 뉴질랜드 등의 참전국 외교사절이 헌화를 통해서 젊은 나이에 숨진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위로한 뜻 깊은 추모식이었다.


트렌트 스콧 대대장 "24일 가평전투 60주년 맞아 큰 행사"

트렌트 스콧 가평부대 대대장
 트렌트 스콧 가평부대 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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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가평대대'라는 별명을 얻었나?
"3대대는 가평전투의 공로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고 '가평대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호주는 가평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4월 24일을 '가평의 날'로 정했으며, 가평 퍼레이드 같은 행사를 통해 호주 군인의 용맹스런 정신을 기리고 있다."

- 오는 24일 가평전투 60주년을 맞아 '가평의 날' 행사를 크게 펼친다던데, 어떤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인가?
"올해가 60주년이라서 퀸튼 브라이스 연방총독과 스티븐 스미스 국방장관 등 연방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특히 올 연말에 3대대가 타운즈빌로 부대를 이전하기 때문에, 이곳 홀스워디에서 열리는 마지막 '가평 퍼레이드'다."

- 한국 가평에서 열리는 '가평전투' 6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줄리아 길라드 수상이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길라드 수상은 가평전투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만나서 격려할 계획이다. 3대대 부대원 20여명도 가평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4월 4일 오전에는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대대를 방문해서 큰 영광이었다. 특히 가평 출신 국회의원이라서 더 반가웠다."

- 3대대 병사들의 자긍심이 크겠다. 부대를 돌아보니 1950년 11월에 평안북도에서 전사한 찰리 그린 초대 대대장이 영웅처럼 모셔지고 있는데.
"그분은 가평대대뿐만 아니라 호주 육군의 영웅이다. 지금 이 자리에 미망인 올윈 그린 여사가 계신데 우리는 '맘'이라고 부른다. 3대대 병사들은 선배들의 업적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런 전통을 지켜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태그:#가평전투, #가평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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