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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겉그림.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겉그림.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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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택시운전사에게 쇼크를 먹은 이가 있다. 친구들 가운데 머리 모양이 제일 우습게 생겼다는 핀잔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번 세계 여행길에서 그는 머리에 파마까지 해버렸단다. 이른바 스트레이트 파마가 그것.

하지만 루마니아에서 만난 미용사는 그의 머리를 스트레이트 대신 뽀글뽀글 파마로 올려붙였단다. 그 때문에 미용사와 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급기야 경찰까지 나서게 된다. 결국 길을 가던 중재인들의 도움으로 돈은 지불하지 않았고, 그 싸움이 지난 며칠 뒤에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헤어스타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967일 동안 세계를 돌며 낯선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김향미·양학용의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편은 민주노총에서, 아내는 사회당에서 일했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되면 10년 안에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했단다. 그러고는 여행 자금을 모았는데, 한 달에 20만 원씩 붓던 돈은 모두 전셋돈으로 들어갔고, 급기야 그 돈을 몽땅 털어 온 세상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처음에는 1년 정도 돌아보고자 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길은 생물처럼 스스로 길을 만들었다. 길은 만남으로 이어지고 만남은 또 다른 길로 태어났다. 길 위에서의 초대가 길을 이탈하게도 했고, 오히려 길을 잃고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어느 도시는 예정과 달리 훌쩍 건너뛰기도 하고, 또 어느 도시에서는 몇 달 동안 천막을 치고 유목민의 흉내를 내기도 했다. 마침내 길은 우리더러 설계도를 그만 내려놓으라 했다.
-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머리말 가운데

실로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는 걸 실감한다. 왜냐하면 이들 부부가, 이전에 만난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잇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지인들도 이전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연결된다. 이전에 함께 공부하고, 함께 토론하던 그들이 길 위에 새로운 길을 내 주는 것이다. 길이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길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 낯선 땅도 이들 부부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다. 복잡다단한 인도 땅도, 네팔의 탄촉 마을도, 페루 푸노의 티티카카 사람들도, 짐바브웨 하라레의 사람들도, 길 위에서 모두 친구가 된다. 물론 곳곳의 국경을 넘는 일은 힘이 들 것이다. 그것이 때에 따라서는 설렘이기도 하지만, 때론 고역일 때도 없지 않다.

이른바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을 넘는 일은 심히도 짜증 나는 일로 보인다. 그 때문에 남편은 말끝마다 투덜대고, 아내는 그 상황을 지혜롭게 수습하기도 한다. 그때 남편은 아내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다.'

여행길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혹시 잘못되어 경찰서로? 이런 걱정이 안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처음 하는 일이 항상 그렇듯이 긴장 저편에 슬며시 설렘이 고개를 들었다. 아내와 나는 먼저 관광 안내소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우리가 싸워야 할 여행사 '콜케 투어'(Colque Tour)에 대한 불만을 담은 투서가 가득했다. 심지어 운전사가 만취한 상태였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204쪽

이는 이들 부부가 피켓시위 한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생각하기에 따라, 배꼽을 잡고 웃을 수도 있고, 또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다. 이들 부부가 볼리비아에서 겪은 일이다. 여행 중에 눈발이 날렸고, 길은 비포장 도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프가 눈밭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어 호텔 시간에 맞추지 못했는데, 그 모든 걸 총괄하고 있는 여행사는 일방적인 약속 위반 통고만을 해댄 것이다. 이들 부부는 천재지변이라며 그걸 항의하고자 피켓시위를 했는데, 결국 끈기 있는 싸움 끝에 그 여행사의 사장으로부터 칠레 산 페드로까지 갈 수 있는 지프를 제공받게 된다. 실로 마법 같은 힘이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여행길에서 여행은 세 번이나 한다는 걸.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 번 하고, 실제 여행길에서 한 번 하고, 그리고 여행길에서 돌아와 배낭 속에 있는 추억들을 정리하면서 또 한 번 한다는 게 그것이다. 이 책도 어쩌면 스물여덟 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그 추억을 되짚는 세 번째 여행길이지 않나 싶다. 읽으면 읽을수록 유쾌하고도 따듯한 마법의 여행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김향미, 양학용 씀, 위즈덤하우스 펴냄, 2008년, 13800원)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 967일, 낯선 여행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들

김향미 외 지음, 예담(2008)


태그:#길, #여행,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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