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나라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
 우리나라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경북 예천에는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주막이 있다.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삼강주막이 바로 그것이다. 3개의 강줄기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주막이라 하여 '삼강주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강주막은 1930년 유옥연 할머니가 차렸다. 배를 타고 장사를 하던 보부상들이 거쳐가야 한 곳에 그들의 보금자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쉼터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주막은 1970년 나루터 아래로 다리가 놓이고 제방이 생기면서 쇠락해가기 시작했다.

평생을 주모로 살아온 할머니는 그 뒤로도 주막을 지키다 2005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주인을 잃은 주막은 점점 허물어져 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이 주막 살리기에 나섰고,  2007년 삼강주막의 새로운 주모를 공개 모집했다.

선발 조건은 세가지. 첫째는 술을 직접 담가야 하고, 둘째는 손님에게 친절해야 하며, 마지막은 주막을 비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 셋이 경쟁에 참여해 권태순 할머니가 주모로 선발됐다. 이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이들이 주막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권 할머니 혼자서는 유지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지금은 부녀회에서 주막을 운영하고 있다.

삼강주막에서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지 않으면 허전할 것.
 삼강주막에서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지 않으면 허전할 것.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금강산도 식후경. 주막에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가 정겹다. 걸쭉한 막걸리를 주고 받으니 가득찬 막걸리 만큼이나 흥이 가득하다.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은 막걸리는 주막이어서 그런지 더 맛있다.

안주는 단 세가지. 배추전, 도토리묵, 두부뿐이다. 가격대는 2000~3000원대로 지극히 서민적이다. '주모 한 상 주이소'라는 한마디면 12,000원에 모든 메뉴를 맛볼 수가 있다. 배가 고프다면 단돈 3000원에 주막 특미 손칼국수를 시켜도 좋다. 화려하고 푸짐한 식탁은 아니지만, 우리의 선인들이 주린 배를 채웠을 것이기에 더 소중한 먹거리들이다. 여기서는 맛이 중요하지 않다. 주막에 와서 구경만 하고 지나친다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것과 뭐가 다르겠냐는 말이다.

적당히 배를 채웠다면 슬슬 밖으로 나가 주막을 어슬렁 거려보자.

삼강주막의 부엌 내부 모습
 삼강주막의 부엌 내부 모습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삼강주막 터는 1934년 대홍수로 주막채만 남긴 채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들은 그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마을 어르신들의 고증에 의해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그 중에는 보부상과 사공들이 묵었던 숙소도 있다.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 만큼 분주했던 나루터에 밤이 되면 처음 보는 이들과 호롱불을 켜고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며 잠을 청하던 곳이다.

새것 테를 팍팍 내며 서 있는 건물들 한쪽 켠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삼강주막이 있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는 오래 돼 보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새로 복원된 것이다. 훼손된 목재와 지붕을 걷어내고 새롭게 지어졌다. 16평의 아담한 초가지만 부엌과 방 2개, 툇마루에 다락까지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방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벽면을 빼곡히 도배하고 있는 낙서들 때문이다. 어디서든 기록을 남기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민족성이라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고이 보존해야할 국가 지정 민속자료에 낙서를 해대는 몰상식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손이라도 묶어서 관람을 시켜야할 판이다.

마지막 주모인 유옥연 할머니의 지혜가 돋보이는 외상장부
 마지막 주모인 유옥연 할머니의 지혜가 돋보이는 외상장부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삼강주막이 민속자료로 지정된 데에는 부엌이 큰 몫을 했다. 둘이 들어가 움직이면 좁다고 느낄 정도로 협소한 부엌에 문이 자그마치 네개나 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할머니가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이기 편하게 설계된 것이다. 이런 짜임새 있는 구성이 높이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부엌 벽면은 할머니의 외상장부로 이용되었다.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던 할머니는 칼끝으로 금을 그어 표시를 했다고 한다.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잔, 긴 금은 막걸리 한되라는 뜻이며, 외상값을 다 갚으면 가로로 긴 금을 그었다. 말술을 먹는 사공들의 외상장부에는 긴 금이 많다는 해설사의 말이 재미있다.

막걸리 한 잔으로 노고를 덜어내기에는 일이 힘들었나 보다. 이렇게 장부를 만든 것을 보면 문맹이지만 지혜로운 어르신이었나 보다. 가로로 그은 금이 없는 것도 많은 것을 보니 인심까지도 후한 주모였나 보다. 지금 남아있는 흙벽의 외상장부 위로는 아크릴 판이 덧대어져 있다. 훼손될 것을 염려한 조치다. 이 흙벽은 건물을 새로 복원할 때 그대로 떼어내 보관했다가 다시 붙인 것이다.

주막의 뒤뜰에 놓여 있는 들돌
 주막의 뒤뜰에 놓여 있는 들돌
ⓒ 최지혜

관련사진보기


삼강주막의 뒤뜰에는 들돌이 놓여 있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농부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긴 것이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던 때라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들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몸값이 책정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무게가 엄청나게 느껴진다. 과연 이 돌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문화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1박2일 촬영차 다녀갔던 강호동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천하장사도 들지 못한 돌을 든다면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장사로 등급 업!

삼강주막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입구의 벽화가 눈길을 잡아끈다. 당시 정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민속화가 생동감 있다. 마치 나도 그 무리들 속에 끼어 있는 듯 생생하다.

예천군에서는 이 시대의 마지막 주막을 살리기 위해 매년 막걸리 축제를 열 계획이다. 작년 7월 30일 그 첫 축제가 열렸다. 올해는 아직 미정이지만, 작년과 비슷하다면 늦여름쯤 그 축제를 함께할 수 있을 듯 하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돌이 마을, 회룡포 마을을 둘러보고 삼강주막을 찾아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며 이곳의 정취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예약문의는 054)655-3132 또는 010-3532-2638. 각종 농산물 체험과 떡매치기, 한옥 체험, 민박등도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



태그:#경북, #예천, #여행, #삼강주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