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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답사를 하다가 보면, 가끔은 황당할 때도 있다. 번지를 알고 찾아 갔는데도 문화재가 보이지 않을 때이다. 아무러면 번지에 있던 문화재가 어디로 이사를 한 것도 아닌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을 때는 정말로 황당하기가 이를 데 없다.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충남 유형문화재 제9호인 '연산아문'이 바로 그랬다.

 

연산아문을 처음으로 본 것은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그 연산아문이 있던 자리를 몰라,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대답뿐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우리 문화재에 대해 관심이 없다. 연산을 몇 바퀴를 돌아도 보이지를 않는다. 포기를 하고 딴 곳으로 가려는데, 앞에 정자와 같은 것이 보인다. 바로 연산아문이 길 안쪽에 서 있는 것이다.

 

 

18세기에 조성된 대표적인 양식의 문루

 

연산현의 관아를 출입하던 정문인 이 연산아문은 18세기 조선조 후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여지도서> 연산현 공해조에 보면 객사, 중문, 외문, 동헌 등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모든 건물들은 다 소실이 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출입문인 이 문루 하나이다.

 

연산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중층누각 건물이다. 아래층은 각 칸마다 문을 달아 통행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위층은 누마루로 사면에 난간을 둘렀다. 정면에서 바라보며 우측 협문 뒤로는 이층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을 달아냈다. 아문의 앞으로는 여러 개의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초석이 없는 연산아문    

 

연산아문은 초석이 없고,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주를 하층 중간부분까지 올려놓았다. 이렇게 긴 주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원형의 기둥인 목주를 이어댔다. 아문은 목조 2층으로 꾸몄는데, 공포는 전형적인 초익공계 형식을 따른다. 연산아문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건물 중에서는 대표적인 양식의 문루로 평가하고 있는 연산아문을 그렇게 만났다. 3월 13일 찾아간 연산아문은, 찾는 이 하나 없이 한가로운 모습이다. 보호철책 안에 자리한 연산아문을 둘러본다. 문이 달려 있던 부분에는 문틀을 끼웠던 자국이 남아 있고, 문 위 부분에는 살창이 보인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연산현

 

계단을 올라 누각 위로 올라가보니, 앞으로 좁은 골목 밖으로 연산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지금은 주변으로 건물들이 들어 차 있어 아문의 위치가 길 안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곳의 앞이 대로였을 것이다. 연산현은 충남 논산시의 연산면, 부적면, 벌곡면, 양촌면, 두마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당시는 그렇게 넓은 지역을 관할했다.

 

1896년 당시에는 충청남도 연산군이기도 한 연산현은, 본래 백제의 '황등야군'이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경덕왕 16년인 757년에는 '황산군'으로 개칭하고, 진잠현과 진동현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신라와 백제의 황산벌 전투가 벌어진 곳이, 바로 연산아문이 있는 이 일대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초봄의 따듯한 기운이 품안으로 파고 든다. 연산아문의 누각 위에 올라앉으니, 먼 옛날 이곳에서 호령을 했을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칫 그대로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연산아문으로 인해, 하루의 답사가 즐거운 날이다.


태그:#연산아문, #논산, #조선조, #유형문화재, #연산면 연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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