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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이지선씨
 인터뷰 중인 이지선씨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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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더 냉정한 현실인식 아닐까요? 다 포기하고 산다고 재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지선씨(26)의 자그마한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학창시절 소위 '엄친딸'로 불리던 그는 어쩌다 지금의 '날라리'가 되었는지 조곤조곤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에 '20대가 만나는 20대'라는 취지의 인터뷰가 꺼려졌다고 했다.

"요즘 20대를 주제로 각종 기획이 넘쳐나는데 정작 20대가 희망을 얻을 만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잘 나가는' 20대를 보여주며 박탈감만을 주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고…. 하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었단다. 그는 "저는 아직 성공한 사람이 아니니까 인터뷰를 해도 되지 않을까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지선씨는 뮤지컬 작곡가 지망생이다. 2010년까지 공연제작사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음악 공부를 하고 있다. 용돈은 클래식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련한다.

하지만 그는 여느 작곡가들처럼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온 사람이 아니다. 피아노는 어린 시절 학원에 다니며 배웠던 '체르니 30번 수준'이다.

초등학교 때 바이올린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IMF의 여파로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당시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봤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이후에도 음악에 대한 꿈은 접어둬야 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당시, 언니가 작곡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굉장히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모범적으로 잘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지레 겁먹었던 것 같아요."

이지선 씨 프로필   
1986년  3월 출생.
2004년~ 고려대 몸짓패 '돌개바람' 활동
2006년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 여성국장
2007년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 집행위원장
2008~2009년 한국대학생문화연대 예술단장
2009년 뮤지컬 '요새 젊은 것들은' 기획 및 공동작곡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 기획 스태프 
2010년 공연제작사 '명랑씨어터 수박' 인턴 사원

그는 '성적표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딸'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서울에 있는 외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 삶은 더 팍팍해졌다.

"고등학교에서는 의식적으로 감성을 다 말려 버렸어요. 잘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 독하게 공부했죠.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말려버린 감성을) 다시 못 꺼낼까봐 무서웠어요. 일등이 되어 있었고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지만 우주 끝에서 혼자 빛나는 별 같았어요."

그러던 중 언니가 드디어 부모님의 승낙을 받고 원하는 학과에 합격을 했다. 그녀는 "언니가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스스로 세워놓은 체계 같은 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혼란스러움은 계속됐다. 하지만 몸짓패 활동을 시작하고, 학생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서서히 삶의 가치관이 만들어졌다. 보통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됐고 차츰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이 사회는 변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을 예술로 풀어보겠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지난 19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한 까페에서 남들과 조금 다른 꿈을 꾸는 그를 만났다.

전공과 전혀 다른 꿈... "안 맞는 학과에 들어간 게 '행운'"

-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지금 지선씨의 모습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왜 경제학을 전공으로 택하신 건가요?
"어디서 읽은 건데, 우리 중 대다수가 주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 와중에 대학에 갔고 그 때까지도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무난하게 사회과학을 선택해 정경대에 들어갔고 또 무난하게 경제학과를 선택했죠. 이중전공으로 또다시 무난한 경영학과를 선택했어요."

- 경제학과에 잘 다니고 있었으면 취직도 잘 됐을 텐데, '몸짓패'('몸짓'이란 민중가요에 맞춰 하는 율동을 뜻한다)나 '학생회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새 친구들은 그런 활동에 별로 관심 없잖아요.
"몸짓패 같은 경우엔 뭐하는 곳인지 잘 몰랐지만 그냥 춤추는 게 좋아서 갔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게 질려서 더 공부하기는 싫었거든요. 그러다 1학년 어느 여름 날 '열사가 전사에게'라는 곡을 연습하는데 가사가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그전에는 그냥 유행가처럼 따라 불렀는데, 갑자기 가사가 들어왔어요. '이게 이런 의미구나' 싶었죠. '이제 내가 2학년 선배가 되는데 그동안 너무 몰랐구나'하는 생각에 뒤늦게 반전 집회 같은 데도 찾아 가고 그랬어요. 이후에 자연스레 학생회 활동도 하게 됐고요. 어떻게 보면 안 맞는 학과에 들어간 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하하하."

2009년 예술계열대학생 공동행동 사전행사로 시청광장에서 거리홍보를 하고 있다.
▲ 몸짓을 하고 있는 이지선씨 2009년 예술계열대학생 공동행동 사전행사로 시청광장에서 거리홍보를 하고 있다.
ⓒ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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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졸업대학은 sky (학점은 4.3)
토익점수가 900점 (경력도 많이)
자격증은 몇 갠가 (그 용모는 단정히)
해외 봉사 쯤은 (스펙 스펙 스펙)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대단한 것이 아니네 (이건 기본적인 스펙)
이건 기본적인 것이 아닌가 (스펙 기본 스펙)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우리 회사랑 잘 맞는 인재라네


- 뮤지컬 '요새 젊은 것들은' 中에서

- 문화, 공연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학생회 활동을 하던 2006년, 평택에 갔어요.(당시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크게 불거졌던 때다) 예술인들이 평택 예술인 마을에 벽화를 그려 놓았더라고요. 주민들 얼굴을 창문에 그려놓았는데, 참 아름답다고 느꼈죠.

얼마 뒤에는 청계천에서 '평택, 들이 운다' 문화제가 열렸어요. 청계천에서 보통 집회를 하면 집회 참여자와 시민들이 나뉘어져 있는데, 그 날은 달랐어요. 가수 임정희씨, 윈디시티 등의 공연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웅장한 합창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집중하더라고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봤어요.

문화로 사람을 움직인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고, '이런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공연 기획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친언니가 '그럼 진짜 공부를 해봐라'라고 하면서 공연 기획 아카데미를 소개시켜 줬어요."

- 뮤지컬 작곡가라는 지금 꿈과 달리 처음에는 '뮤지컬 기획'을 공부하신 거군요. '기획'과 '음악 작곡'은 하는 일이 엄연히 다른데 언제 음악쪽으로 관심이 옮겨 갔나요?
"2008년에 함께 아카데미를 다니던 친구들 중에 저의 관심사를 잘 알던 한 친구가 뮤지컬 '빨래'를 추천해줬어요. 참 좋았어요. 주인공이 이주노동자이고, (다른 인물들도) 비정규직에 직장에서 차별받고, 옥탑방에 살고, 장애가 있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인기가 많다고 하니 충격적이었죠.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까' 고민했어요.

지난해에 (빨래 공연제작사에서) 일할 때 다시 여러 번 보며 분석을 해봤어요. '음악의 힘'이라고 결론을 내렸죠. 대본만 보면 어둡고 무거운데, 팍팍한 현실을 음악으로 이야기하니까 밝고 희망적으로 만들어지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 한국대학생문화연대에서 활동하실 당시 실제로 뮤지컬을 기획하고, 작곡도 하셨잖아요? "'요새 젊은것들은'이요! 한문연(한국대학생문화연대) 주최 예술캠프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뮤지컬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뮤지컬 음악의 재미를 알게 됐죠. 총 여섯 번 공연을 했는데 한 회차를 빼고 전석 매진됐어요. 우리같은 젊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 티켓 값을 저렴하게 했는데, 예상보다 돈이 많이 들어 적자가 나긴 했지만요.(웃음)

참 기적같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꿈을 이룰 사람 찾는다'며 온라인에 구인 광고를 뿌렸더니 지원서가 많이 왔어요. 첫모임에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자기이야기를 하며 우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자리도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감동적이었나봐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대학로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도 큰 이벤트였어요. 극단하는 선배한테 도움도 받고 여러 사람들이 도와줬어요. 당시 연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연극동아리 했던 친구 한 명 밖에 없었지만 연출 하고 싶으면 연출, 음악하고 싶으면 음악. 다들 하고 싶은 것을 했어요.

하지만 그 때 '실력이 있어야겠다'는 교훈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당시가 한창 '88만 원 세대'가 이슈였던만큼 기획은 정말 좋았어요. 우리가 직접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연기나 대본, 음악의 완성도는 굉장히 아마추어적이었죠. 기획만 좋아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거죠. 전문성을 쌓고,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할 뻔한 음악... '비겁한 변명'이었죠"

뮤지컬 '요즘 젊은 것들은'에 쓰일 소품을 제작중인 이지선씨(맨 오른쪽)와 동료들
 뮤지컬 '요즘 젊은 것들은'에 쓰일 소품을 제작중인 이지선씨(맨 오른쪽)와 동료들
ⓒ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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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2008년 음악에 관심이 생기고 나서도 음악이 아닌 기획 분야에서 일하셨네요. 2010년까지 일했던 제작사에서도 기획, 마케팅 쪽에 계셨다면서요?
"사실 좀 비겁한 결정이었어요. '음악은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절충안으로 기획 쪽에서 일하면 음악에 대한 욕구를 좀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충족이 안 됐어요. 지난해 회사에 다니면서 공연하는 걸 바로 옆에서 봤지만 전 사무직 일만 하고 있었죠. 맘 속에서 '음악하고 싶다, 창작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몽글몽글 올라 오더라고요.

며칠 우울해하다가 다시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게 될 뻔 했는데, 문득 '나도 비겁한 변명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제가 한문연에서 후배들에게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한 현실적인 공부가 아니라 꿈과 적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나 자신조차 꿈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그건 하면 안 되는 거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이런 상황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해도 될까? 안 될까?' 할 게 아니라 '하는 게 옳은 일이다'라고 정리를 했어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가치에 따라, 힘들더라도 '하는 게' 맞는 결정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던 중 뮤지컬 '빨래' 작곡가님께 이런 고민을 말씀드릴 기회가 생겼어요. 선생님께서 길이 있는지 알아봐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얼마 뒤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길이 없더라'고 하셨죠. 대신 선생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셔서 레슨을 받고 있어요."

- 회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그만뒀어요. 부모님께는 비밀이에요! 지금은 클래식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뮤지컬 음악을 가르치는 곳이 여기 밖에 없더라고요."

- 그전에 공연제작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이 어땠는데요?
"고대 입학 했을 때 아빠가 "지선아 우리 집에 별이 하나 떴다. 나는 그 별만 보고 산다"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별이 점점 까매지고 있어요. (웃음) 부모님도 당연히 안정된 것을 바라시죠.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행복해 하면 부모님도 좋아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부모님은 제가 회사 들어갔을 때에도 굉장히 좋아하셨죠. '얘가 일이라는 걸 하는구나. 지 앞가림을 하는구나'하고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부모님께는 왠지 제가 잘하고 있는 것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잘하는 게 없어지니까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지더라고요. '힘들다' 이런 이야기는 생각도 못하고요. 그러면 안 되는데 대화가 점점 없어져서 안타까워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 와중에 대학에 갔고 그 때까지도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 와중에 대학에 갔고 그 때까지도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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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 때는 언제예요?
"제가 졸업한 대학교의 기숙사 피아노 실에서 연습을 하는데, 한 번은 너무 춥더라고요. 피아노를 치면서 "춥다, 춥다, 춥다"라는 말이 계속 나왔어요. 손가락은 점점 굳어가고…. 아는 분의 소개로 어느 교회에서 연습하기도 하는데, 아침 일찍 갔는데 문 닫혀있는 날이 있었어요. 교회 행사가 있는 걸 모르고 갔다가 발길을 돌리게 되는 날도 있고요. 사실 요 며칠도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어서 울었어요.

한편으로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좀 작아지기도 하죠, '저 친구들은 이렇게 많이 배웠는데…'하면서요. 지금 하고 있는 클래식 공연장 아르바이트에도 그런 어린 친구들이 있어요. 집에서 서포트를 받으면서 전공하고… 그런 걸 보면 부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누가 왜 뮤지컬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거든요. 학생운동, 문화운동 하면서 이런 이야기들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거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쌓아왔던 것이고요. 기술이라면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이제 배우는 것이니까 가끔 조급한 생각이 들다가도 곧 괜찮아져요.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음악 쪽으로 잘 풀려서 예중, 예고에 갔다면, '담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하지는 못 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갖게 된 것 같아서 좋아요."

- 하지만 우리 세대는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보다는 당장 살아남는 게 급하니까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20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보통 대학에 많이 가니까 '졸업할 때 빨리 뭔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황지우 전 한예종 총장님이 이런 말을 하셨어요.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에 만 시간은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린다면 선 그리기에 만 시간, 색깔에 대해 만 시간, 점에 만 시간 인거죠. 더 세부적으로 나눌 수도 있고요. 따라서 대학 4년 동안 그림을 마스터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졸업할 때 '아, 내가 그림으로 빨리 성공을 해야 할텐데! 뭔가 보여줘야 할 텐데'라며 불안해하고 조급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나이도 많고, 음악 전공한 친구들 생각하면 늦었을 수 있지만요. 10년 후에는 뭔가 되어 있겠죠."

- 10년 후에 뭘 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한예종) 졸업이나 했을라나?(푸하하하하) 뮤지컬 작곡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고요.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은 20년 뒤에나 나올 것 같네요. 공부 시작하고 얼마 안 되고 나서 조급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입시가 목적이 아니라, 음악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왜 조급해 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일을 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구, 선배들 보면 취업할 땐 모두들 축하해주지만, 일 년 정도 지나고 나서 정작 본인들이 '힘들다, 나랑 안 맞는다'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런 게 바로 30대 사춘기죠. 우린 다들 내가 좋아하는 것, 좋은 일을 제대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기준이 된다면 잘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게 어렵지만요."

이지선씨가 용산참사 추모 문화제에서 몸짓 공연을 하고 있다.
▲ 용산참사 추모 문화제 이지선씨가 용산참사 추모 문화제에서 몸짓 공연을 하고 있다.
ⓒ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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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데 그게 드러나지 않잖아요. 2008년 촛불 때 배웠던 것 중 하나가 '나만 이렇게 어렵게 사는 게 아니구나. 저 사람도 그렇구나'하는 걸 알게 됐다는 거예요. 어떤 분이 광장에 나와서 '나는 대리운전 기사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다들 박수를 치더라고요. 나만 힘든 줄 알면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걸 알면 '문제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뮤지컬에서는 보통 환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는데, 저는 오히려 뮤지컬이니까 그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의 힘도 있고요. 뮤지컬 음악이 견딜 수 있는 희망이 되고 그게 또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행복하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람들 마다 맞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전에 도서관에서 혼자 경제학을 공부할 때는 차가운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았는데, 음악을 공부하니 참 행복해요. 음악이 날 감싸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물론 제 주변에는 경제학 같은 공부가 잘 맞는다는 사람도 많지만요"라고 말했다.  

"음악 공부를 하면서 학문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어요. 학문에 '다다르지 못한 경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운 것 같아요. 이런 걸 느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다들 그런 공부를 한다면 참 행복할 텐데요."


태그:#이지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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