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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려대 학생이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학생들과 연대활동하는 청소노동자 한 고려대 학생이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장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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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새내기 시절 '단 하루만이라도'라는 학생회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단과대 학생회가 '단 하루만이라도'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삶을 체험해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행사였다.

새벽 5시에 눈을 떠 6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강의실마다 책걸상을 뒤로 밀어놓고, 윤이 나도록 쓸고 닦았다. 복도, 계단, 화장실, 교수연구실까지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식사시간에는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밥을 지어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최저임금을 겨우 받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 철부지였던 기자는 그 때를 계기로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사회에 널리 알리는 언론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청소노동자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휴게실-식사 지원

그 꿈은 최근 현실이 됐다. 올 1월부터 <오마이뉴스>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하면서 서울시내 28개 대학 청소노동자의 실태를 취재하게 된 것이다.

홍익대 사건이 계기였다. 사건이 커져서 많은 대학에서 청소노동자에 관한 정보를 잘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언성을 높이던  담당자도 있었다. 어느 대학의 시설관리 담당자는 "우리는 홍대랑 다르다"라며 "알아서 하고 있는데 왜 알려고 하느냐?"고 짜증을 냈다.

많은 용역업체도 답변을 회피했다. 한 용역업체 담당자는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고 말해놓고서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대학은 자체적으로도 조사하고 있다며 추후 28개 대학 자료가 완성되면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학교나 업체에서 답변을 회피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청소노동자들과 직영으로 계약을 맺고 있다며 자세한 정보 제공을 거부한 어느 대학은, 취재 결과 6개월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월급명세서를 지급하지 않기도 했다. 한 청소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30명이 넘는 노동자들에게 단 3장의 월급명세서를 돌려보도록 한 뒤 다시 수거해 갔다. 

'휴게실'과 '식사'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혔다. 휴게공간이 아무리 넓더라도 여러 사람이 이용할 경우 1인당 1평 이상의 휴식공간을 확보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34명이 한 휴게실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 청소노동자는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서 "한 번은 방귀를 잘못 뀌었다가 무식한 여편네 소리를 듣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고 어려운 처지를 토로했다.

28개 대학 중 어떤 형태로든 식사지원을 하는 곳은 13곳으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식사지원이 없더라도 취사를 허용해 주는 대학은 그렇지 않은 대학에 비해 사정이 좀 나았다. 이 경우 노동자들 끼리 회비를 걷어 쌀을 공동으로 구매하고, 각자 부식을 가져와 비교적 저렴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대 지원이 없고, 취사가 불가능한 경우 도시락을 싸오거나 식사를 사먹을 수밖에 없었다. 24일에 만난 한 청소노동자는 "청소하는 건물 내에 비치된 학생용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도시락을 데운다"고 말했다. 난로에 도시락을 데워먹는다고 답한 청소노동자도 있었다. 전자레인지나 난로마저 없으면 차가운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의 처지다.

식사를 사먹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 청소노동자였다. 이 경우 한 끼에 최소 4000원만 책정해도 20일이면 약 8만원이 든다. 즉, 한 달 임금의 약 10%를 식사비로 지출하게 되는 셈이다. 식사지원도 없고, 취사도 불가능한 대학의 어느 청소노동자는 "휴게실에서 몰래 라면을 끓여 끼니를 때우곤 한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점심식사 청소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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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힘들지만... 천사들이 많기에 나는 행복하고 즐겁다"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만난 청소노동자들 대부분은 열악한 처우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20일 국민대에서 만난 한 청소노동자는 얼마 전 청소도구함에서 익명의 학생이 보낸 편지를 발견하고 직접 답장을 쓰기도 했다. 이들의 편지는 국민대 학생들의 커뮤니티(cafe.daum.net/kookmin)에 올려져 많은 관심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그 분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기말고사 때였습니다. 그 분들은 입학할 때부터 쭉 제 주위에 계셨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그저 학교는 원래 이런 곳이란 생각뿐이었습니다. 시험기간이었습니다. 새벽 4시 시험공부에 지친 남은 학생들을 내보내시고 학생들이 바닥과 책상에 마구 버린 쓰레기들과 필기로 얼룩진 종이들을 청소하시는 그분들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날은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습니다. 새벽의 찬 공기는 숨 쉬는 입김마저 얼려버렸습니다. 새벽 4시, 마치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만 숲 속에서 나오는 요정들처럼 살며시 나타나서 눈을 쓸고 계신 분들의 역동적인 모습에서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텅 빈 교실, 책상위에 올라가 있는 다 마신 커피 컵과 음료수병, 각종 쓰레기들을 남모르게 치워주신 분들도 그 분들이셨습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을 모아서 버려주시는 분들도 그 분들이셨습니다.


제가 눈에 미끄러지지 않고 언덕진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던 것과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던 것과 깨끗한 화장실에서 반짝이는 거울을 볼 수 있었던 것과 아름다운 조경과 화분들을 볼 수 있었던 것들도 다 그분들 덕분이었습니다.


국민대학교의 어머니, 아버지이신 미화원 선생님! 모두 정말 존경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드립니다."(국민대학교의 한 학생)

"오늘도 여느 때처럼 일을 시작하려고 청소 도구함을 열었는데 종이 한 장이 발 아래 귀퉁이만 보였다. 물론 쓰레기려니 하면서 집어든 순간 '부끄럽지만'으로 시작한 글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 글을 읽었다. 가슴 저 밑에서 행복감과 잔잔한 웃음이 나온다. 때로는 힘들지만 이러한 천사들이 많기에 나는 행복하고 즐겁다. 언젠가 모 프로그램을 보다가 딸이 나를 안으며 '엄마 잘 길러줘서 고마워' '별 소리 다 하네 당연한 걸 가지고...' 나는 이 글을 읽고 딸과 그대들에게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고맙다.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맙다.'"(어느 미화원)

청소노동자의 실태를 직접 취재했던 기자는 두 사람의 편지를 읽고 눈물이 났다.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은 이 학생의 존재도 기뻤지만, 어려운 처지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학생에게 고마움을 나타낸 청소노동자의 마음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새내기 시절 기자의 꿈을 세워준 원동력이자 우리 시대 어머니와 아버지의 또다른 이름인 청소노동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김수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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