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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클래식(classic)하다

.. 카메라의 강국 일본에서 하필이면 왜 클래식하기 그지없는 투박하고 커다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등장시켰을까? ..  <영화가 사랑한 사진>(김석원, 아트북스, 2005) 20쪽

"카메라(camera)의 강국(强國) 일본"은 "사진기 나라 일본"이나 "사진기 하면 첫손 꼽는 일본"으로 다듬고, "하필(何必)이면 왜"는 "왜"로 다듬습니다. '하필'은 "어찌하여 꼭"을 뜻하는 낱말입니다. '하필이면'과 '왜'를 잇달아 적으면 겹말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굳이'나 '구태여'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등장(登場)시켰을까'는 '내놓았을까'나 '내세웠을까'나 '보여주려 했을까'로 손질해 줍니다.

 ┌ 클래식(classic) = 고전 음악
 │   - 클래식 콘서트 / 그는 클래식에 상당히 조예가 깊다
 │
 ├ 클래식하기 그지없는 투박하고 커다란 사진기
 │→ 오래되고 투박하며 커다란 사진기
 │→ 낡고 투박하며 커다란 사진기
 │→ 예스럽고 투박하며 커다란 사진기
 └ …

국어사전에도 '클래식'이라는 영어는 실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으레 쓰는 '클래식하다' 말풀이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클래식하다'처럼 쓰는 말은 국어사전에 담을 수 없겠지요. '클래식하다' 같은 말마디는 사람들이 얄궂게 잘못 쓴다거나 어설피 마구 쓴다거나 엉터리로 아무 데나 쓴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영어를 쓴다고 한결 멋스러울 까닭이 없습니다. 영어로 하기에 무언가 남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영어이기 때문에 왠지 달라 보일 일이란 없습니다.

"클래식한 자전거"라서 더 멋지지 않습니다. "클래식한 디자인"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클래식한 패션"이나 "클래식한 분위기"란 어떤 삶 어떤 모습 어떤 이야기가 되려나요.

맨 처음 '클래식하다'라고 말한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궁금합니다. 맨 처음 '클래식하다'라는 말마디를 들은 사람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요즈음 '클래식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생각일까 궁금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또 늙은 어버이 앞에서, 또 구멍가게 할매 앞에서, 또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또 시내버스 앞에서, 또 시립미술관 앞에서, 또 무슨무슨 캐슬이라는 아파트 앞에서 이런 말마디를 읊거나 옆에서 이 말마디를 듣는 사람은 어떤 느낌일는지 궁금합니다.

ㄴ. 피크닉(picnic)

.. "좋았어. 고구마가 수북하게 한가득! P! 피크닉 가자! ..  <꽃과 모모씨 (1)>(다카하시 신/강동욱 옮김, 삼양출판사, 2010) 65쪽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한테 토박이말로 이름을 지어 주는 사람이 있는 가운데, 요즈음은 영어로 이름을 지어 주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키우는 집개나 집고양이 가운데에는 나라밖에서 목돈을 들여 받아들인 개나 고양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땅한 노릇이라 할 만한지 모르겠으나, 삽살이나 진돗개한테 영어로 이름을 붙이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기글에 나오는 'P'는 집에서 기르는 토끼한테 붙인 이름입니다. 한국사람 가운데에도 집토끼한테 이렇게 'P'라는 이름을 붙이는 분이 있을까 궁금한데, 일본사람은 이처럼 이름 붙이는 일이 흔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더욱이, 이 일본만화를 한글로 옮긴 분은 'P'를 '피'로든 'ㅍ'로든 적바림하지 못합니다. 아니, 어찌저찌 손보거나 옮겨낼 재주가 없다 할 만합니다. 처음부터 알파벳으로 붙인 이름인데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 picnic
 │  1. 소풍, 피크닉
 │  2. (소풍) 도시락
 │
 ├ 피크닉 가자!
 │→ 소풍 가자!
 │→ 나들이 가자!
 │→ 마실 가자!
 │→ 바람 쐬러 가자!
 │→ 놀러 가자!
 └ …

영어 '피크닉'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나오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은 한국말을 담는 책이니까, '피크닉' 같은 영어를 국어사전에 실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국어사전에는 영어가 적잖이 실렸어요. 사람들이 제법 쓴다 할지라도 함부로 실으면 안 되지만, 더 깊이 살피지 못하며 그냥 싣고 마는 영어가 제법 많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지만, 이내 갑갑하고 한숨 쉴 만한 말마디를 찾아보고야 맙니다. 그래도 궁금한 나머지 인터넷에서 '피크닉'을 찾아보니, '피크닉도시락, 피크닉바구니, 피크닉가방, 피크닉테이블, 피크닉데이, 피크닛바스켓, 피크닉펜션, 피크닉용품' 같은 낱말이 줄줄이 뜹니다. 그나마 한자말 '소풍(逍風)'이라도 쓰는 사람은 드물고, '소풍날'마저 아닌 '피크닉데이'이고 맙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다가는 더 크게 놀랍니다. 아니, 'picnic'을 풀이하면서 '피크닉'을 풀이말로 버젓이 적어 놓습니다. "picnic = 피크닉"인가요.

 ┌ 봄나들이 / 들나들이 / 꽃나들이
 ├ 봄놀이 / 들놀이 / 꽃놀이
 ├ 봄마실 / 들마실 / 꽃마실
 └ …

소풍을 다니면 되는 우리들인 한편, 예부터 누구나 '나들이'를 다니거나 '마실'을 했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이곳저곳을 나들이를 하거나 마실을 합니다. 책방마실을 하거나 골목마실을 합니다. 자전거마실을 하거나 걷기마실을 합니다. 춘천마실을 하고 원주나들이를 합니다. 서울마실을 하며 여수나들이를 해요.

놀러 가서 즐길 밥이라면 '마실밥'이나 '마실도시락'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마실바구니'라든지 '마실날'이라든지 '마실철'이라든지 '마실이' 같은 낱말을 하나둘 써 볼 만합니다. 마실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마실이'입니다. 또는 '마실꾼'이나 '나들이꾼'이라 하면 돼요.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말마디를 가다듬습니다. 오순도순 사랑하면서 글줄을 살찌웁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영어, #외국어, #우리말, #국어순화,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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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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