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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5.18부상자'인 고 리영희 선생은 5.18국립묘지 7묘역 4번 묘지에 영면할 예정이다. 그가 잠들 곳 두 줄 앞에는 고 윤영규 선생이 영면해 있다.
 '5.18부상자'인 고 리영희 선생은 5.18국립묘지 7묘역 4번 묘지에 영면할 예정이다. 그가 잠들 곳 두 줄 앞에는 고 윤영규 선생이 영면해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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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마음에 맺음말부터 먼저 씁니다. 고 리영희 선생 마지막 가시는 길, 서울광장 노제가 아니면 광주 금남로 노제라도 해서 보내드리는 게 예의 아닐까요?

어제(6일) 저는 고 리영희 선생께서 영면하실 국립 5·18묘지를 미리 가보았습니다. 고인은 광주에 있는 국립 5·18묘지 7구역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위치를 확인한 저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국가보훈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 리영희 선생께서 영면하실 곳이 5·18국립묘지 7구역 4번 묘지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오전에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고인께서 5·18묘지에 영면하실 수 있는 근거가....?"
"저희들은 사회민주화 공헌 부분 등은 얘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들은 고인께서 80년 당시 5·18과 관련 부상자로 인정되셨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 고인께서 5·18부상자라니요?"
"고인께서는 1980년 5월에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심문과정에 고문을 받아 척추를 다쳤습니다. 그래서 5·18부상자로 인정되셨고요."

대다수 사람들처럼 저 역시 선생께서 민주화 공로가 많기 때문에 5·18묘지에 영면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5·18국립묘지에 묻히는 이유, 아시나요

5·18부상자이신 선생께서는 내색 한 번 않고 '5·18관련자'로 살아오신 것입니다. 그저 "나 죽으면 5·18묘지에 묻어달라"고 말씀하셨을 뿐이죠. 고문으로 망가진 몸이 증명하고 있어도, 죽은 후에 더욱 명백해질 사실임에도 당신은 먼저 내놓아 자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선생께서는 앎과 삶이 일치하는 진정한 '시대의 스승'이셨습니다. 막연히 '민주화에 공헌했으니 5·18묘지로 가셨겠지'하고 단정지어 생각해 버린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5·18항쟁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고,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5·18묘지 관리는 국가보훈처가 하고 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5·18국립묘지에 영면할 이들의 적격여부를 검토하여 범죄경력 등 이력이 없으면 이를 최종 승인합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고인은 국가가 인정하는 5·18관련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인께서 5·18부상자였던 것을 모르기는 광주의 5·18 관련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5·18부상자는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여러 고초를 겪으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해(1980년)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 받고 부상 당하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그런 분의 영면에 감히 뭐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줄였습니다.

서울광장이 아니라면... 금남로 노제라도 치르자

리영희 선생이 2009년 집앞 잔디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리영희 선생이 2009년 집앞 잔디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 류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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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가신 이들의 노제를 마지막으로 치러드린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8일 오후엔 경기도에서 화장을 마친 선생의 운구가 광주에 도착합니다.

이런 분 마지막 가시는 길, 금남로에서 막걸리 한 사발 나누며 노제라도 치러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은 비단 저만의 바람인가요?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 고 리영희 선생 빈소에서 인터뷰 한 사우디 교포 손순호(53)씨도 이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명색이 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면서 병원 내 발인식장(200석 규모)에서 발인식을 하고, 또 노제도 지내지 않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예의, 서울광장에서 지키지 못하면 광주 금남로 노제라도 치러서 지켜드리면 어떨까요?


태그:#리영희, #5.18, #5.18국립묘지, #금남로, #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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