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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취미는 루어낚시다. 루어낚시를 우리가 '낚시'하면 떠올리는 동양화 속의 강태공처럼, 찌를 바라보며 세월을 낚는 여유로움 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루어낚시는 인조 미끼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낚시 방법을 이르는 말이다.

'루어'(Lure)는 인조 미끼라는 의미인데, 고기 모양처럼 생긴 것, 개구리처럼 생긴 것, 지렁이처럼 생긴 것, 요란하게 움직이는 금속성분의 스피너, 스푼 등 다양하다. 루어라 불리는 가짜 미끼를 살아있는 미끼처럼 보이게 조작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또 어종별로 쓰이는 루어도 따로 있다. 이를 잘 선택하는 것이 루어낚시의 관건이며 실력이다. 루어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로는 꺽지, 쏘가리, 배스, 끄리 등이 있는데 루어를 물에 던져 여러 가지 기술로 움직임을 주면서 끌면 공격성향이 강한 고기들이 순식간에 잡아채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집 앞의 꺽지... 5년간 '손맛' 즐겨

나는 대상 어종 가운데 날렵하고 강한 꺽지의 '손맛'을 가장 좋아한다. 한번 스피너를 물고 나면 쏜살같이 채는 꺽지의 강력한 전율을 그 어떤 민물고기의 손맛에 견주랴. 그 손맛을 보려고 예전에는 섬진강이나 구례 인근까지 자주 나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집 앞의 냇가에 꺽지가 사는 것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집 앞의 꺽지는 여러 해 동안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손맛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5년전 집 앞 냇가에서 만난 대물(?) 꺽지. 생전 처음 꺽지를 본 아들이 기뻐하며 포즈를 취했다. 5년전만 해도 집 앞 냇가에는 꺽지를 비롯하여 토종물고기들이 가득했다.
 5년전 집 앞 냇가에서 만난 대물(?) 꺽지. 생전 처음 꺽지를 본 아들이 기뻐하며 포즈를 취했다. 5년전만 해도 집 앞 냇가에는 꺽지를 비롯하여 토종물고기들이 가득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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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지는 붕어처럼 몸이 납작하여 비늘이 배 쪽으로 갈수록 작아진다. 간혹 꺽지를 쏘가리로  혼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꺽지는 아가미 부분에 특이한 태극모양의 푸른 무늬가 있어 쏘가리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스피너를 물고 올라 온 귀여운 꺽지. 아가미 부분에 태극문양 같은 특이한 무늬가 선명하다.
 스피너를 물고 올라 온 귀여운 꺽지. 아가미 부분에 태극문양 같은 특이한 무늬가 선명하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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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더 크면 만나자!" 잡은 후 놓아주기전의 작별인사. 역시 입이 크다.
 "다음에 더 크면 만나자!" 잡은 후 놓아주기전의 작별인사. 역시 입이 크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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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지는 주로 깨끗한 계곡의 중상류 돌 틈에 몰려 살며 낮보다는 주로 밤에 활동한다. 자기 구역에 다른 꺽지나 물고기가 침범하면 필사적으로 자기구역을 지키는 날렵한 고유어종이다. 우리나라의 특산종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수질이 오염되어 꺽지를 만날 수 있는 계곡과 강이 많지 않은 터라, 집 앞 냇가의 꺽지 소식은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냇가라 해봤자 수심이 무릎 정도밖에 차지 않는 우리가 어렸을 적 봐온 '추억의 냇가' 그 자체다.

간혹 꺽지를 잡기위해 던진 '스피너'를 갈겨니들도 물고 올라온다. 혼인색을 띤 예쁜 갈겨니.
 간혹 꺽지를 잡기위해 던진 '스피너'를 갈겨니들도 물고 올라온다. 혼인색을 띤 예쁜 갈겨니.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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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꺽지를 잡기위해 던진 '스피너' 루어에 갈겨니들도 올라온다. 6~7월의 산란기에는 혼인색을 띠어 황색과 푸른색이 어울려 몸 색깔이 울긋불긋 화려하다. 혼인색을 띤 멋진 갈겨니를 전라도에서는 '불거지'라고도 부른다. 갈겨니도 언뜻 보면 피라미와 비슷하여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피라미보다 눈이 크며 비늘이 작고 옆구리에는 가로띠가 없어 피라미와 쉽게 구별된다.

물막이와 어도공사로 바뀐 집앞 냇가. 언뜻 보기엔 정리되어 보이지만, 물속 환경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물막이와 어도공사로 바뀐 집앞 냇가. 언뜻 보기엔 정리되어 보이지만, 물속 환경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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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냇가 점령한 배스... 꺽지 등 토종물고기 초토화

이 평화로운 나만의 비밀구역이 초토화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영원히 꺽지의 손맛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만 여겼던 집 앞 냇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 주말인 28일, 집에서 뒹굴고 있자니 꺽지의 아리따운(?)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지난 3월엔가 낚시를 하고 안 했으니 꺽지 손맛을 느낀지가 벌써 몇 달이 지났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결국 집 앞 냇가로 나섰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피라미와 갈겨니들이 부지런히 뛰고 있어야 할 수면은 요동조차 없다.

'어, 겨울이라 조용한가? 그래도 피라미들이 뛰어야 할 텐데….'

앗, 입질이다! 그런데, 몸이 하얀색을 띤것을 보니 꺽지는 아니다.
 앗, 입질이다! 그런데, 몸이 하얀색을 띤것을 보니 꺽지는 아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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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지를 잡기위해 던진 스피너를 물고 나온 배스.
 꺽지를 잡기위해 던진 스피너를 물고 나온 배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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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너를 묶은 후 눈앞에 던지니 바로 입질이 온다.

'툭! 후드득~!!!'
'역시 그러면 그렇지…. 흐흐흐'

헉! 그런데 딸려 나오는 놈은 평상시에 나를 반기던 얼룩무늬의 아리따운 꺽지가 아니다. 하이얀 빛으로 번쩍이는 아주 날쌘 놈이다. 올려보니 배스다. 15센티에 약간 못 미치는 어린놈이다. 연이어 끌려 나오는 놈도 또 배스. 이번엔 20센티에 가까운 놈이다. 서식한지 이제 2~3년쯤 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랬다. 수면에 피라미나 송사리의 치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 많았던 납자루, 참붕어, 피라미, 갈겨니들의 씨가 마른 것이었다. 지금은 낱마리의 피라미만 힘겹게 살고 있을 뿐, 그들의 자리를 온통 배스가 점령하고 있던 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냇가에는 대체로 우리나라 고유의 어종들이 주를 이뤘다. 육식성 어종인 꺽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질이 온순한 납자루, 참붕어, 피라미, 갈겨니 등이 물속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더러는 민물조개와 참게까지….

인위적 냇가 정비사업으로 물흐름 변화... 배스 서식 도운 꼴

불현듯 3년 전부터 중간 보를 만들고 물막이를 하며 어도를 만든다고 바위 등을 마구 부셔대던 일들이 생각났다. 이른바 집 앞 계곡에 불어 닥친 '하천 정비사업'이었다. 냇가에 널린 꺽지의 좋은 은신처인 커다란 바위는 포클레인으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렇게 평화로운 냇가에 왜 누가 배스를 유입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장 큰 원인으로 의심되는 것은 환경의 급격한 변화였다. 배스는 주로 물의 흐름이 정지된 댐이나 호수에 많이 서식하는 습성이 있다. 물의 흐름이 정체되거나 약해져 최적의 배스 서식지가 된 셈이다.

3년전부터 집앞 냇가는 물막이와 어도공사로 몸살을 앓았다. 졸졸 흐르던 냇가는 어느날부터 포클레인 소리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3년전부터 집앞 냇가는 물막이와 어도공사로 몸살을 앓았다. 졸졸 흐르던 냇가는 어느날부터 포클레인 소리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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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부터 생태통로(어도)를 만든다며 시작한 물막이 작업과 준설 작업을 위한 공사가 진행됐고 2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상류 쪽부터 준설작업을 시작했던 기억이 스친다. 혹시나 해서 떡밥을 넣은 피라미 채집통을 넣고 몇 시간을 기다려 봤지만 돌고기만 한두 마리 잡힌다. 물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결국 냇가가 초토화된 것이다.

배스 역시 나름대로의 생존의 이유가 있겠지만, 몇 년 전 냇가를 지배했던 꺽지의 모습을 알기에 오늘의 현실이 가슴 아프다. 낚시를 포기하고, 잡은 배스를 어떻게 처리할까 또 한 번 고심했다.

'놓아줄까? 아니면,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둘까? 그래도, 이건 아닌데…'

다시 놓아줘서 토종물고기에게 또 다시 해가 되느니, 차라리 집에 있는 수족관에 넣기로 했다.

고심끝에 집안의 수족관에 넣어진 배스 두마리. 오자마자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고심끝에 집안의 수족관에 넣어진 배스 두마리. 오자마자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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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항속의 배스 터전을 떠나 잡혀온 배스 두마리. 수족관에 들어가자마자 전투에 들어간다.공격적인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자리싸움을 하는 듯싶더니, 조금 큰놈이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힘에 눌려 바닥으로 기며 눈치 보는 아기 배스. 아기 배스가 희생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을 일방적인 공격이다. 도망칠 곳 없는 좁은 수족관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결과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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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터전을 떠나 잡혀온 배스들은 수족관에 들어가자마자 난리다. 공격적인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자리싸움을 하는 듯 싶더니, 조금 큰 놈이 작은 놈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기 시작한다. 힘에 눌려 바닥으로 기며 눈치 보는 아기 배스. 아기 배스가 희생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을 일방적인 공격이다. 도망칠 곳 없는 좁은 수족관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결과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력 다해 정착한 배스... 이젠 '천하에 죽일 놈'이라는 오명으로

배스가 무슨 죄가 있겠나. 미물에게 인간이 만든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분명 모순이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와 천대받고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에선 낚시와 식용 등 여러모로 사랑받던 물고기가 타국에서 천대 받으니 어쩌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이들 때문에 우리 토종물고기를 백년 후에는 어류도감에서나 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어이없게도 이 녀석들이 이역만리 한반도까지 흘러오게 된 이유는 어처구니 없다. 정부에서 국민들의 단백질(?) 보급을 목적으로 1970년대 초 미국에서 들여와 몇 군데 저수지에 시험 방류한 것이 이곳저곳으로 흘러들어 정착을 한 것이다.

물고기 팔자와는 어울리지 않게 산 넘고 물 건너 태평양 건너 뿌려진 후 정말 사력을 다해 살고자 발버둥 쳐서 이제 좀 살만하니까 난데없이 끌고 온 당사자들이 '죽일 놈들'이라고 비난을 하고 있고 있는 것이다.

역경의 세월을 이겨낸(?) 배스나, 배스 앞에 떨고 있는 토종물고기들 모두에게 슬픈 현실이다. 그래도 배스는 자기 생명을 위해 먹을 만큼만 먹지만 인간은 유희를 위해 생명을 파괴하지는 않았나? 배스로선 참으로 억울할 지도 모를 일이다. 배스야,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꼭 존경받는 물고기로  태어나길 바란다.


태그:#꺽지, #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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