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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산 아래 태풍에 쓰러져 썩어가는 소나무를 주워왔다. 아껴 때다 보면 일주일 넘게 장작 보일러를 돌릴수 있는 분량이다.
 길가 산 아래 태풍에 쓰러져 썩어가는 소나무를 주워왔다. 아껴 때다 보면 일주일 넘게 장작 보일러를 돌릴수 있는 분량이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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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땔감 걱정이 앞섰습니다. 집을 지으면서 장작 보일러와 함께 기름 보일러를 설치했는데 기름 값이 만만치 않아 주로 장작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땔감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고흥군에서 간벌한 땔나무를 저렴한 비용으로 배급한다 하여 마을 이장님에게 신청해 놓았는데 결국 우리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땔나무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너나 할 것 없이 세상살이가 힘들어졌다는 얘기겠지요.

좀생이처럼 길가에 굴러다니는 나무토막을 주워 오거나 바닷가에 산책 나갔다가 운 좋게 파도에 밀려온 나무토막을 구해 장작 보일러를 지피기도 하는데 하루 이틀이면 바닥이 납니다. 그럴 때마다 톱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늘 빈 손으로 내려옵니다. 빡빡하게 우거진 숲에서 서로 몸싸움을 하다가 말라 비틀어가거나 지난 여름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찾아 다녔지만 그런 적당한 나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땔감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떻게 할려구."
"아이구, 멀쩡한 나무를 못 베겠더라구."

이 굵은 녀석들은 우리집을 향해 후려치는 한겨울 바닷바람을 막아줄 것이고 또 저 녀석은 너무 어려서 베지 못합니다. 그렇게 전남 고흥으로 이사 온 이후로 단 한 그루의 나무를 베지 못했습니다.

"누구네는 트럭까지 끌고 가서 잘도 베어 오더구만…."
"기다려봐, 어디선가 생기겠지…."

목조 주택으로 번듯하게 지어놓고 땔나무 걱정이나 하고 있는 우리 사는 꼴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땔감은 어떻게 장만해서 방을 덥히고 살았냐구요? 지난 2월 말 전남 고흥으로 마악 이사 왔을 무렵에는 충남 공주에서 실어온 땔나무로 두 달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땔감은 충남 공주에서의 시골살이 13년 내내 나의 농사 사부님이었던 유순종 할아버지께서 아낌없이 내 주신 것입니다.

유씨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같은 땔감

충남 공주에서 생활 할때 13년간 나의 농사 사부님이셨던 아랫집 유순종 할아버지. 십 수년 간 집 주변을 빙 둘러 쌓아 놓은 땔감을 이사 가는 우리에게 건내 주시고 지난 여름 돌아가셨다.
 충남 공주에서 생활 할때 13년간 나의 농사 사부님이셨던 아랫집 유순종 할아버지. 십 수년 간 집 주변을 빙 둘러 쌓아 놓은 땔감을 이사 가는 우리에게 건내 주시고 지난 여름 돌아가셨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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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 할아버지는 땔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담벼락 주변을 빙 둘려 놓고 생활했는데 우리가 이삿짐을 꾸릴 무렵 그걸 다 실어 가라 했던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할아버지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십수 년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장작이라는 것을 빤히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위급할 때 병원으로 모시고 가거나 어쩌다가 찬거리를 챙겨 준 우리 부부에 대한 할아버지 나름의 답례였겠지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아이구 할아버지, 이걸 어떻게 장만하신 건디, 나중에 뒀다가 때세유."
"그냥 가져가, 나는 인저 필요 읎어. 살 날 두 얼마 안 남은 거 같구."
"아이구 참 할아버지두…."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지만 꼭 이누네(할아버지는 우리 집 큰 아이 인효를 '이누'라고 불렀습니다)한티 주고 싶어서 그랴."

아궁이불을 지펴 가마솥 가득 소여물을 삶아왔던 유씨 할아버지였기에 늘 땔나무를 쌓아 놓고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농사일을 함께 했던 소를 처분한 지 이미 오래였고 거기다가 집을 새로 고쳐 보일러 시설을 갖춰 놓고부터는 크게 땔나무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땔나무들이 할아버지 집 안과 밖에 층층이 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간혹 군불을 지펴 가마솥 가득 뜨거운 물을 끓여 쓰곤 했는데 그마저 거동이 힘들어 손을 놓고 있었던 할아버지였습니다. 이삿짐을 다 옮겨 놓고 우리는 염치불구하고 할아버지의 땔나무를 다발다발 묶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땔감이라 빗물이 들이친 곳은 반쯤 썩어가고 있었지만 장작개비 한 토막도 버릴 게 없었습니다.

그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는데 할아버지는 반쯤 열려진 방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옅은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곱지 않은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부부는 비를 맞아 가며 반나절 가까이 땔나무를 묶어 놓고 다음날 아침, 시간 맞춰 찾아온 5톤 트럭에 옮겨 실었습니다.

나의 농사 사부님. 평생 농사일로 살아오시다가 지난 여름 세상을 떠나신 유순종 할아버지. 뒤에 보이는 임봉순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나의 농사 사부님. 평생 농사일로 살아오시다가 지난 여름 세상을 떠나신 유순종 할아버지. 뒤에 보이는 임봉순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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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할머니는 지나가면서 눈을 흘기기도 했습니다.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이삿짐에 땔나무까지 실어가니 참 지독하다 싶었겠지요. 하지만 그 할머니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충남 공주에서 전남 고흥까지 5톤 트럭의 운송비가 땔나무 값보다 더 비싸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용을 떠나서 할아버지와 맺은 13년간의 정을 옮겨 실었던 것입니다. 그 땔감은 한겨울 이삿짐을 꾸렸던 우리 식구에게 낯선 타지에서 따뜻하게 보내라는 유씨 할아버지의 속 깊은 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삿짐을 꾸릴 때 이제 떠나면 언제 보는가 싶어 아내와 두 손을 꼬옥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유씨 할아버지. 그 땔감은 유씨 할아버지가 우리 식구에게 내준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식구가 전남 고흥으로 이사 와 한창 자리 잡을 무렵인 지난 여름, 손이 갈라 터지고 짓뭉개지도록 평생 머슴처럼 농사일을 하셨던 유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굳이 나무를 베지 않아도 찾아드는 땔감들

그렇게 유씨 할아버지의 땔감 덕분에 낯선 고흥땅에서의 첫 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땔감이 다 떨어질 무렵, 엔진 톱을 들고 나무를 베기 위해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집을 짓고 나서 빈손이 되다시피하여 기름 값조차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을 지피는 것보다는 더 유용한 나무, 바람을 막아주고 맑은 산소를 공급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푸른 빛깔에 고운 단풍까지 아낌없이 내주는 나무에 대한 생각에 잔가지 하나 베지 못하고 그냥 내려와야 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땔감이 되면 우리 식구만을 위한 것이지만 살아 있는 나무는 우리 식구들이 평생 누리게 될 것이고 또한 우리 집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고흥이 따뜻한 남녘이다 보니 낮에는 불을 넣지 않고 지낼 수 있어 많은 땔감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땔감이 필요했습니다. 길거리나 바다 산책길에 주워온 땔감으로 겨우 장작 보일러를 돌리고 있던 어느날, 새 터의 이전 땅 주인이었던 서해종씨가 밭을 정리하면서 베어 놓은 굵직한 아카시아 나무를 구할 수 있었고 그 땔나무로 일 주일쯤 버티고 나자 새 터를 소개해줬던 서군섭씨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농장에 참나무 베놓은 게 있으니께, 갔다 때소."

농장을 준비하면서 베어 놓은 굵직 굵직한 참나무를 가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자신이 몰고 다니는 트럭으로 그 나무들을 실어다 주시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늦은 봄, 한전에서 전선 주변으로 뻗은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지난 늦은 봄, 한전에서 전선 주변으로 뻗은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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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에서 가지치기한 땔감. 집 짓다가 버려진 자투리 목재와 섞어 사나흘 정도 보일러를 가동시킬 수 있었다.
 한국전력에서 가지치기한 땔감. 집 짓다가 버려진 자투리 목재와 섞어 사나흘 정도 보일러를 가동시킬 수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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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군섭씨의 목장에서 가져온 땔나무가 바닥이 보일 무렵에는 한국전력에서 전선 주변의 나무들을 정리했는데 그 가지치기한 것을 끌어다 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내면서 주변 나무들을 자빠뜨려 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름이 오기 전까지 때 맞춰 딱 필요한 만큼씩의 땔감들이 여기저기서 굴러 들어와 산에서 나무 한 그루 베지 않고도 장작 보일러를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풍기 없이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한여름을 보내고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또 다시 땔감이 궁해졌던 것입니다. 땔감이 바닥 나 어쩔 수 없이 한 사나흘쯤 기름 보일러를 돌리고 있었는데 바로 며칠 전, 우연히 길가 산 아래에 쓰러져 제 껍질을 삭이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를 만났습니다. 지난 태풍으로 쓰러졌던 모양인데 잡풀이 우거져 있어 여름 내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그 굵직굵직한 땔나무로 일주일 넘게 아무런 걱정 없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과학적인 눈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나무를 베지 않으니 마치 각본을 짜놓은 것처럼 꼭 필요할 때마다 땔감이 생겼던 것입니다. 사실 그 신비로운 것들은 가장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잘 짜 놓은 각본처럼 이뤄지겠습니까? 전남 고흥에 새 터를 마련해 겨우 자리를 잡고, 비록 빚을 냈지만 작은 도서관까지 지어가며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로 접어드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고정 수입이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원고 작업을 해왔던 다큐멘터리 방송 프로그램이 이번 가을 개편과 더불어 막을 내렸던 것입니다. 당분간 아내가 방과 후 학습 강사로 번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파도에 떠밀려온 나무 토막들. 가끔씩 바다 산책길에서도 땔감을 주워 오기도 한다.
 파도에 떠밀려온 나무 토막들. 가끔씩 바다 산책길에서도 땔감을 주워 오기도 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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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벌어 적게 먹고 사는 것조차 욕심 아닌가

오늘도 우리집 개 곰순이와 함께 집 앞 해변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곰순이가 해변에 개 뼈다귀라도 찾아 낸 것처럼 파도에 밀려온 몇 개의 나무 토막을 기분좋게 모아놓고 자갈 밭에 앉았습니다.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변함없음 속에서도 또한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바다에 눈을 맞췄습니다. 그 어떤 내면의 소리가 그동안 '적게 벌어 적게 먹고 사는 것'을 무슨 지상 과제처럼 내걸고 살아왔던 내게 일침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의 안정적인 생활? 이 또한 욕심이 아닌가. 그 안정적인 생활에 무뎌져 그 욕심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결국 너를 병들게 할 것이다. 번듯한 집을 소유하고 마누라까지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부족한 게 무엇인가. 세상은 둥그런 원처럼 되어 있질 않던가. 둥그런 원의 한 부분이 튀어나와 있으면 반드시 어느 한 부분은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 누군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어 배가 불룩 튀어 나오게 되면 그 누군가는 그만큼 주린 배를 움켜 줘야  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이런 사이비 교주 같은 말을 했다가는 된통 당하게 될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면의 소리에 불과합니다. 나 같이 겉과 속이 다른, 진즉에 어리석은 중생은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쉽게 떨쳐 내지 못합니다. 아내의 돈벌이로는 부족합니다. 머리통 커가는 아이들을 공부 시키기 위해서는 몇 푼의 원고료, 농사와 반찬거리에 불과한 바다 낚시질로는 부족합니다. 그 불안감 속에서 아내의 눈치를 살펴가며 새로운 밥벌이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한겨울 땔감마저 떨어지고 더 이상 기름 보일러조차 돌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면 살아 있는 나무를 베야 할지도 모릅니다.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살아있는 나무를 베지 않고도 어디선가 땔나무가 쯤맞게 굴러들어 왔듯이 땀 흘려가며 큰 욕심 부리지 않는다면 그 무엇인가가 빈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밥벌이가 있다는 것은 언젠가 밥벌이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밥벌이가 없다는 것은 곧 밥벌이가 생긴다는 것이니까요.


태그:#땔감, #살아있는 나무, #유씨 할아버지의 땔감, #밥벌이, #세상의 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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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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