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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를 넘긴 지금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빰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찾아와 주는 사람들

제각각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네

- 시바타 도요 <살아갈 힘>

표지
▲ 시집 <약해지지 마> 표지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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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1911년 6월 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100세, 백세인(centenarian)이다. 90세가 넘어서 쓰기 시작한 시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시집으로 출판이 되었고, 이제는 그 시집이 번역되어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으니 남다를 것 없어 보이는 한 세기의 삶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부잣집 외동딸, 가세의 몰락으로 더부살이, 짧은 결혼 생활과 이혼, 재혼, 아들 출산, 사별...할머니의 일생은 그 자체가 그냥 100년 역사이며 기록이다. 오르막과 내리막, 행복과 고통, 따뜻한 정과 외로움이 골고루 들어있는.

젊었을 때의 취미 가운데 하나가 독서였고, 시인인 아들의 권유와 격려가 있었다고는 해도 아무나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할머니의 시가 천재적인 감수성과 재기로 번뜩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이 들어 살아가는 매일의 삶, 노년의 일상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어떻게 이리도 정확하게 끄집어 내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 자신을 돌봐주기 위해 찾아오는 도우미들과 아들, 때때로 생각나는 옛날의 기억과 가슴 속에 담겨있는 추억들, 거기다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에 이르기까지 할머니가 겪는 모든 것은 새로운 언어, 시로 태어난다.

저기, 불행하다며
한숨 쉬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 마>

노년에 찾아오는 몸과 마음의 여러 변화들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곁에서 도와야 하는 까닭은 그들 또한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입만 열면, 글만 썼다 하면 난체하고 가르치려 드는 노년도 물론 있다. 누구는 또 기회만 있으면 그저 힘들다는 하소연이나 서글픔만 잔뜩 늘어놓기도 한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미덕은 소소한 일상을 담백하게 글에 담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나이 많아 겪게 된 이런 저런 불편함까지도 끌어 안으려는 노력, 거기다가 삶의 시간들을 긍정으로 평가하고 나도 남도 편안하게 해주려는 깊은 배려와 따뜻함에서 나온다.

그러니 할머니의 시는 머리나 가슴에서가 아니라 나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어느 것도 아닌 '나이가 가져다 준 시(詩)'라고나 할까. 노년을 짐으로, 부담으로, 멀리 해야 할 어떤 대상으로만 여기는 우리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힘 또한 여기서 나오는 것이리라.

할머니의 시 가운데 내 가슴에 와 박힌 구절은 '잊어버리는 용기를 / 갖는 게 중요해'(<너에게 II> 중에서)였다. '잊는 것도 용기'라니...그 누구도 내게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다. 이 가을 가슴 속 저 깊은 데 자리 잡고 앉아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이 또한 할머니의 100년 연륜의 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덧붙이는 글 | <약해지지 마>(시바타 도요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2010)



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 지음, 채숙향 옮김, 지식여행(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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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 #노년, #할머니, #백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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