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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소개하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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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으로만 알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다음 글로벌미디어센터에 도착한 시간이 22일 오후 5시 40분이다. 회의실에 모여 기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제주에서의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 행사는 시작된다. 기자들은 40대가 주류인 것 같다. 그렇지만 70대의 시민기자도 있고, 20대의 신입기자도 여럿 있다. 기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말과 글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유태웅 기자는 사교적이고, 김종성 기자는 수줍음이 많으며, 류시춘 기자는 주장이 강하다. 기자들에 대한 인상이 더 있지만, 말로 표현하기가 조금은 부답스럽다. 김병기 뉴스게릴라 본부장은 전투적으로 보인다. 그는 오마이뉴스 오연호 사장이 참석하지 못한 사연을 전하며, 지난 두 달 동안 미국에 머물면서 향후 10년 먹을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커뮤니케이션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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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시민기자 중 하나가 즉석에서 오마이푸드를 개발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한다. 재미있는 생각이다. 언어적인 재치도 있고 실현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오마이투어도 가능할 것 같다. 시민기자들이 전국을 커버하고 있으니까. 또 그들은 나름대로 지역의 전문가들 아닌가. 저녁을 먹은 뒤 뒷풀이에서 어떤 기자회원이 말한다. 신자유주의시대 다음에는 지역주의 시대가 올 거라고.

그렇다면 <오마이뉴스>의 비전은 있다. 현장성에 있어 <오마이뉴스>를 따라올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 기회에 오마이파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핵심 골수당원만 7만명이고, 일반회원까지 합치면 20만명이 된다고 하니. 지나친 공상일까? 뒤로 갈수록 시간에 쫓겨 기자들의 소개시간이 짧아진다. 마이크를 잡으면 뭔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사람들의 속성인가 보다.

소개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완전히 어둠이 깔렸다. 이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숙소로 돌아와 방을 배정받고 보니 가나다순 배열이다. 우리 방은 윤씨와 이씨들 세상이다. 상대적으로 사교적인 이민선 기자가 나가자고 제안을 한다. 그렇게 해서 나가 하우스 맥주집에 들어가니, 이번 산행 참가자의 1/3쯤이 그곳에 모인 것 같다. 우연치고는 참.

가을의 정점에 만난 어리목 풍경

한라산행 개념도
 한라산행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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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버스를 타니, 제주에 사는 윤영국 기자가 제주 안내를 한다. 직함을 보니 제주 유지다. 여행안내사, 여행기획가, 여행사 지사장, 숲해설가에 관광경영학과 겸임교수까지 하고 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 주었다. 차를 타고 어리목으로 가면서 하는 제주 소개가 범상치 않다. 역사와 문화를 꿰뚫고 있다. 그러면서도 슬쩍슬쩍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풀어준다.

어리목은 한라산의 서북쪽 코스로 경사가 완만하고 경치가 좋아 올라가기에 좋다. 이번 산행은 어리목으로 올라가 영실로 내려오도록 되어 있다. 영실은 한라산의 서남쪽에 있다. 차는 제주 시내를 벗어나 1139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간다. 중간에 어리목 입구에서 좌회전해 어승생악을 왼쪽으로 끼고 어리목 휴게소에 도착한다.

여기서 간단히 주의사항을 듣고 산행을 시작한다. 몇 명의 기자가 산행을 포기한다. 사실 어리목을 출발 윗세오름에 오른 뒤 영실기암을 지나 영실 주차장까지 가려면 4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중간에 사진도 찍고 경관을 즐기면서 가려면 다섯 시간은 걸린다. 그러니까 중상급 코스는 되는 셈이다.

어리목의 단풍
 어리목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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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목 초입에는 활엽수들이 많아 비교적 단풍이 잘 들었다. 고운 단풍나무도 여럿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어리목휴게소 주변에는 까마귀가 많다.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는 동물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러고 보니 인간들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고 낭비하고, 자연을 착취하는 면이 있다. 그게 다 돌아올 업보인데도.

산 속으로 조금 들어가자 어리목계곡이 나온다. 보통 계곡에는 물이 흐르는데 이곳은 흐르지 않는다. 이런 걸 건천이라고 한다. 바위 아래 지하로 물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지하로 스며들어 흐르는 물을 또 복류수라고 한다. 사실 수질은 복류수가 더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제주의 물은 '삼다수'라 해서 꽤나 인기가 있다.

사제비동산 풍경
 사제비동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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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스를 계곡으로 잡지 않고 능선으로 잡는다. 산행에서는 계곡보다는 능선을 타는 게 일반적이다. 한참을 오르니 사제비동산이 나온다. 윤영국 기자에게 사제비동산의 어원을 물으니 '새잡이'에서 변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새잡이에서 사제비로의 변화, 음운학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럼 이곳에 매가 많이 살았다는 말인가?

사제비동산에서부터 키가 큰 교목 활엽수는 사라진다. 구상나무, 주목 등 침엽수가 좀 있고,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앞이 확 트이고 전망이 좋다. 대신 바람이 세차게 불고, 연무가 끼었다. 이곳 사제비동산에서 윗세오름까지는 오문수 기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8월 같은 시기에 실크로드의 다른 코스를 여행해 기사를 쓴 적이 있어, 서로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다. 오문수 기자는 지금 여수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어리목 휴게소에서 사제비동산까지는 2.4㎞이고 고도차는 450m쯤 된다. 사제비동산의 해발은 1427m이지만, 동산 위로 오르지는 않는다. 우리는 만세동산과 민대가리오름을 사이를 지나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이곳에는 나무판으로 만든 길과 현무암 너덜 지대가 이어진다. 풀들은 바람을 이기지 못해 옆으로 누웠다. 올해는 어딜 가나 억새가 많지 않아 가을의 멋을 조금은 덜 느끼게 된다.  

윗세오름, 그곳에 가고 싶다

윗세오름의 고사목
 윗세오름의 고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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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구상나무와 조릿대가 있어 스산한 가을풍경을 상쇄해 준다. 조릿대는 고산지대에 적응해 사는 대표적인 수종으로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난쟁이 대나무라고도 불리는데, 한라산의 해발 600m에서 1800m 사이에 주로 분포한다. 땅속줄기가 그물처럼 촘촘하게 퍼져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윗세오름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구름이 심해진다. 바람과 함께 몰려와서는 앞을 가린다. 윗세오름은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다. 주변에 고사목도 여럿 보이고 고사목 사이로 까마귀들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고 보니 까마귀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나보다. 하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텃새니까.

안개 속을 뚫고 지나가는 삭도
 안개 속을 뚫고 지나가는 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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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세오름에 오르니 11시45분이다. 어리목 출발시간이 9시45분이니 두 시간쯤 걸은 셈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다. 그것은 어리목에서 올라오는 사람과 영실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점심 때가 되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컵라면을 먹는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물건은 삭도(索道)라고 불리는 괘도차를 통해 어리목에서 올라온다. 삭도는 길을 따라 나 있다.

윗세오름에서 갈라지는 등산로는 세 가지다. 하나는 서벽을 통해 한라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그런데 이 길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또 하나가 우리가 가게 될 영실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코스는 내려가는 길로 한라산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영실기암은 영주 십경 중 하나다. 영주는 제주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돈내코 코스다. 

영실기암을 그냥 놓고 내려오기가 싫다

영실기암
 영실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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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실방향으로 간다. 영실이라는 지명의 영은 신령스러움을 뜻한다. 그리고 실은 골짜기의 이두식 표현이다. 그렇다면 영실은 신령스런 골짜기를 말한다. 그래서인지 영실에는 볼거리가 많다. 오백나한으로 불리는 영실 기암이 있고, 병풍바위가 있고,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널리 피어 있다. 내가 이번 산행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영실 기암이다.

영실 코스에서 우리는 먼저 넓게 펼쳐진 초원을 만난다. 이와 같은 초원지대를 제주 사람들은 선작지왓이라 부른다. 여기서 '선'은 서 있다는 뜻이고, '작지'는 돌을 가리킨다. '지왓'은 밭이라는 뜻이니, 선작지왓은 넓은 돌밭이라는 뜻이 된다. 봄에는 이곳에 진달래와 철쭉이 만개한다고 한다. 가을에는 갈색으로 변해가는 억새와 풀이 장관이다.

선작지왓의 황량함
 선작지왓의 황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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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인지 가을 풍경은 그렇게 멋지지를 않다. 엉겅퀴 꽃이 가을을 보내게 싫어하고, 조릿대가 겨울을 준비하는 것 같다. 또 안개구름이 밀려와 조망도 좋지를 않다. 이 지역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게 되면 침엽수 군락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부터는 길이 현무암 사이로 나 있어 걷기가 좀 불편하다. 등산화를 신지 않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모습이 가끔 보인다.

영실기암은 해발 1600m 병풍바위에서 부터 시작한다. 이곳에서 해발 1300m 되는 영실휴게소 위까지 바위와 자연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정말 장관이다. 길은 절벽 옆으로 나 있으며, 내려오면서 왼쪽으로 기암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에는 또 활엽수들이 분포되어 있어 단풍까지도 멋이 있다. 영실기암을 보지 않고는 한라산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 통할 것 같다.

바위절벽에 핀 구절초
 바위절벽에 핀 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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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을 보니 영실의 병풍바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고 있다.

"신선들이 사는 병풍바위: 수직의 바위들이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것처럼 둘러서 있어 병풍바위라고 부릅니다. 신들의 거처라고 불리는 영실(靈室) 병풍 바위는 한여름에 구름이 몰려와 몸을 씻고 갑니다."

상당히 서정적이다.

안개에 싸인 형제봉
 안개에 싸인 형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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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기암의 멋진 풍경은 볼레오름이 보이면서 줄어든다. 볼레오름과 세오름 쪽으로 시야가 탁 트이면서 시선이 기암을 서서히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실휴게소 가까이 내려오면서 또 한 번의 장관이 나타난다. 영실휴게소 뒷산에 바위 봉우리가 마치 형제들처럼 흘립해서 자태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안개구름에 가려 모습이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영실휴게소에 내려오니 시간이 벌써 오후 1시 37분이다. 버스가 있는 국립공원 영실지소까지는 아직 4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10월22-23일 양일간 제주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창간10주년 기념 행사 참관기이다. 2회 기사 중 첫째로 한라산 등반을 다뤘다. 두번째는 제주의 스토리를 다룰 예정이다.



태그:#창간 10주년, #제주, #한라산행, #어리목, #영실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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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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