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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에 운행되던 군 작전용 특수보트가 암초에 걸려있는 모습
 짙은 안개 속에 운행되던 군 작전용 특수보트가 암초에 걸려있는 모습
ⓒ 김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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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 7월 3일 민간인들을 태우고 유람에 나섰다가 특수작전용 고속단정(RIB)이 전복사고를 일으킨 충남 태안의 정보사령부 소속 특수부대 출신 전역자 A씨의 말이다. 당시 사고로 고속단정에 타고 있던 공군 이아무개 대위와 공군 소령의 부인 김아무개씨가 목숨을 잃었다.

사고 직후 국방부 조사본부와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 정보사령부 감찰실 등이 조사에 착수해 민간인들을 데리고 와 고속단정 탑승을 요청했던 해군본부 정보처장 이아무개 해군 대령과 해당 부대장인 김아무개 대령을 직권남용과 군용선박 불법사용 등의 혐의로 8월 12일 구속기소했다.

부대장인 김 대령은 해군 수사당국의 최초 조사에서는 이 대령이 부대에 왔다는 것은 알았으나 관사에 머물고 있어 군용 고속단정이 이 대령을 위해 운항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지만, 국방부 조사본부의 추가 보강조사에서 이 대령의 고속단정 사용 요청을 인지했거나 허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구속된 이 대령은 해군 정보병과 중 최선임자로 지난 2004년 특수부대의 부대장을 지냈다. 사고 직후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이 대령 일행이 낚시하러 왔다가 (고속단정을 조종한) 권 원사를 우연히 만나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또 "2008년 이전에는 관행적으로 민간인을 탑승시킨 사실이 드러나 확인하고 있지만 최근 2년 동안은 드러난 게 없다"고 설명했다. "주말이면 군용보트가 민간인들을 태우고 만리포 주변을 돌아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는 인근 어민들의 증언도 있었지만 군 당국은 국회 보고에서 '지역 주민들이 훈련 상황을 잘못 보고 오해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7월 22일 국회 정보위원회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조사결과 전복사고 이전에도 민간인을 고속단정에 태운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사고 이전인 지난 5월 21일에도 해당부대장인 김 대령이 자신의 가족 4명을 소속단정에 승선시켜 38분간 운항했고, 사고 당일에도 총 4시간 30분 가량 7차례나 군용함정의 무단 운항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신 의원은 "민간인이 해당 특수부대의 숙영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신청 및 보안심사 등의 사전절차를 거치게 돼있으나, 지난달 11∼12일 공군의 아무개 준장이 일가족과 함께 휴양차 이곳에 묵으면서도 신원 미상자 3명이 숙박한 것으로 처리됐다"고 밝혔다.

"독신장교숙소, 콘도미니엄처럼 운영"

고속단정과 충돌한 '강달'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뒤로 보이는 것이 해당 정보부대 인근.
 고속단정과 충돌한 '강달'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뒤로 보이는 것이 해당 정보부대 인근.
ⓒ 신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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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역자 A씨의 증언한 부대의 실상은 신 의원의 주장보다 훨씬 심각했다. A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최근 2년 동안 부대가 독신장교숙소(BOQ-Bachelor Officers' Quarters)에 있는 몇 개의 방들을 외부 손님이 묵기 위한 일종의 콘도미니엄처럼 운영해 왔다고 말했다.

"부대의 경치가 정말 좋았다. 그래서 주말, 특히 피서철이면 부대가 항상 외부 손님들로 붐볐는데, BOQ의 방을 항상 몇 개씩 비워 놓고 묵을 수 있는 사람 순위까지 메겨놓았다. 우선 높으신 분들 지인들이 우선이고, 후순위에는 부사관 이상 가족들까지 묵을 수 있게 되어 있더라."

A씨는 이런 관행 때문에 정작 BOQ에 방을 배정받았어야 할 전문하사(유급지원병)들이 방을 얻지 못하고 영외 거주하는 간부들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출퇴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증언했다.

또 그는 거의 매주 주말이면 BOQ에 묵고 떠난 외부 손님들의 뒤치닥꺼리에 동원되었다고 말했다. 손님방에서 나온 술병과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는 일은 A씨 같은 병사들의 몫이었다.

"손님 방 청소하는 일에 열외는 없었다. 또 외부 손님들이 오면 병사들은 생활반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통제해 불만들이 많았다. 주말에는 운동장에서 볼도 차고 싶은데 손님들이 왔다고 그러지 못하게 하니 억울하게 느껴졌다."

A씨가 본 '외부 손님'들이 혹시 부대의 업무와 관련된 인사들이었을 가능성은 없는지 물어보았지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여성들과 아이들이 끼어 있는 것을 보면 부대와 상관없는 외부인들이라는 걸 알았다.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간부와 같이 다니는 걸 보면 '아, 저 간부 손님들이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안 강조하는 특수 비밀부대? 우편물로 집배원이 전달

우리 군에서 정보 수집은 정보사령부가, 정보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한 방첩·보안 활동은 기무사령부가 담당하고 있다. 기무사령부가 방패라면 정보사령부는 창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령부 산하의 이 부대는 유사시 북한지역으로 침투해 모종의 극비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부대다. 과거 HID와 UDU 등 대북 첩보임무를 수행했던 부대를 통합해 만든 이 부대는 특수정보부사관들이 상주하며 훈련을 받는 곳이다. 이런 부대의 성격상 보안규정도 상당히 까다롭다.

이들 특수정보부사관들은 군복도 한국군복과는 다른 군복을 착용하며 개인화기도 외국제 총기를 사용한다. 부대의 대외명칭도 OO물산이라는 위장명칭을 사용했고, 부대원들에 대한 면회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보안을 적용해 왔다. 해당 부대는 이런 이유를 들어 사고 직후 사고 경위와 고속단정의 출항지 등 조사에 착수했던 해경 관계자들의 부대 출입조차 허용치 않았다.

하지만 A씨가 근무하면서 느꼈던 보안실태는 허점이 많았다.

"위병 근무를 설 때도 경찰복을 입고 설 정도로 보안을 강조했다. 병사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보안 교육을 받았다. 내가 쓴 보안 서약서 만도 50장이 넘을 것이다. 그런데 위병 근무를 서면서도 출입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부대의 보안을 책임진 간부가 위병소로 전화해서 '몇 명이 들어오니 통과시켜' 하면 그냥 패스다. 특수정보부사관들이 훈련 받을 때 입는 군복 자체가 외부에 노출되면 안 된다고 교육 받았는데, 간부들 중에는 이 군복 차림으로 외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부대 보안업무을 담당했던 간부도 있었다. 그래서 병사들끼리 모이면 보안은 우리만 지키는 것이냐는 불평들이 많았다."

실제로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인근 주민들 중에는 '한국군복과는 다른 군복을 입은 부대원'들을 부대 주변에서 목격한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또 이 부대는 부대로 배달되는 우편물을 관할 우체국에 설치된 사서함이 아니라 부대의 주소지에서 직접 수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태안 우체국 관계자는 부대의 사서함 계약은 유지되고 있지만 우편물을 부대로 직접 배달하기 시작한 것은 2년이 넘었다고 밝혔다.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야 할 첩보부대에서 부대원의 이름이 적힌 우편물을 집배원이 직접 부대로 찾아와 전달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런 점을 악용해 실제로 한 병사가 외부에서 술을 소포로 배달시켰다가 적발되는 일도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태안 사람들 중 이 부대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편한 곳으로 배치 받았다고 좋아했지만, 가서 보니 맘고생이 심했다. 적어도 국방의 의무가 부대 업무와는 아무 상관없는 외부손님들 뒤치닥꺼리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병사들의 숫자가 부족해 하루 8시간 부여된 직무를 수행하고도 위병소 근무 등으로 또 다시 8시간을 더 근무하는 날이 거의 매일이었다. 몸은 고달파도 뭔가 필요한 일을 했다면 성취감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곳에서의 근무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하는 자괴감만 들게 했다."

국방부 "현재 재판 중 사실관계 밝히는 데 시간 걸릴 것"

한편 지난 7월말 군은 부대 자체의 감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감찰장교 인선 때 정보특기자를 가급적 배제하기로 하는 등 유사사고 재발 방지대책을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책에는 해당 부대를 격오지 부대로 인정해 부대원인 부사관들에게 인사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 해당 부대가 소속된 정보여단의 참모장(대령급)을 육군이 도맡던 것에서 탈피해 육·해·공군 순환직위로 바꿔 지휘 체계를 쇄신하는 방안, 부대 시설물 사용 점검을 강화하는 방안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회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 신학용 의원은 "전에도 얼마나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판명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방부가 내놓은 대책이 꼬리 자르기식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유사사건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현장 감사를 강화하는 등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태그:#정보사령부, #고속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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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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