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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8일 녹색연합이 진행하고 있는 '사귀자'(4대강 귀하다 지키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경북 영주 내성천에서 진행된 현장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안미소씨(녹색연합 시민기자단)가 내성천의 시점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편집자말]
내성천은 상류부터 하류까지 바닥과 주변 일대가 모래로 형성된 모래하천이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지형이다.
 내성천은 상류부터 하류까지 바닥과 주변 일대가 모래로 형성된 모래하천이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지형이다.
ⓒ 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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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성천입니다. 낙동강의 제1지천이지요.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경북 봉화와 영주를 적시고 안동 등지를 거쳐 낙동강으로 흐릅니다. 나는 멸종위기종 1급인 흰수마자를 비롯하여 고라니, 삵 등 수많은 동식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106km 길이의 나는 작은 마을들을 굽이굽이 휘감아 흐릅니다. 그 모습이 마치 뱀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사람들은 나를 사행천(蛇行川)이라고 부르지요. 어떤 이는 모래사(沙)자를 써 부르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모래하천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강의 상류부터 하류까지 바닥과 주변 일대가 모래로 형성된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얕게는 3~7m, 깊게는 22m의 모래가 쌓여 있고, 그 속으로 차가운 물이 흐릅니다.

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래가 반짝이며 흐르는 것이 보인다.
 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래가 반짝이며 흐르는 것이 보인다.
ⓒ 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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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동과 문경을 거쳐 낙동강 하류까지 내 몸에 있는 고운 모래들을 멀리멀리 흘려보냅니다. 은빛 모래사장으로 둘러싸인 안동 하회마을과, KBS <1박2일> 촬영지로 유명한 '육지 안의 섬' 회룡포, 낙동강 하구의 여러 모래섬들은 그렇게 만들어졌지요.

그런데 며칠 전 40여 명이 저를 찾아와 '사귀자'고 고백했습니다. '4대강·하다·지키'(아래 상자기사 참조)고 하더군요. 그들은 내 몸의 한가운데 서서 몇 번이고 '사귀자'를 외쳤습니다. 또 모래톱 위를 걸으며 나의 고운 모래를 맨발로, 맨손으로 쓰다듬고 어루만졌습니다. 조금 깊은 물을 만나면 풍덩 빠지기도 하며 온몸으로 내게 안겼습니다.

이렇듯 정성어린 구애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고백을 받아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주댐이 생기면 나와 내 주변의 마을들은 물에 잠긴다고 합니다. 강변을 따라 드리운 버드나무들과 은빛 모래톱, 사람들이 살던 집터나 기찻길까지도 말입니다. 수몰되는 면적은 여의도의 약 1.25배이며 그 안에 살던 516가구의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벌써 15개 마을의 주민들은 보상을 받고 타지로 떠났습니다. 400여 년간 이곳을 지켜온 금광리 인동장씨 집성촌을 포함하여 83점의 문화재들도 함께 물에 잠깁니다.

1999년, 정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이곳에 송리원댐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일어나 궐기대회를 열고 격렬히 반대해 댐 건설을 무산시켰습니다. 그 후로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댐 건설 시도를 막아왔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취소됐던 댐 공사가 올해 다시 시작됐습니다. 영주댐으로 이름이 바뀐 채 말이죠. 영주댐이 4대강 사업에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수질 개선과 하류지역 용수 공급을 위해 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갈수기에 수질이 나빠지면 영주댐의 물을 방류해 깨끗하게 하고, 낙동강 중‧하류지역에 부족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강에 유입되는 오염원을 제거하는 것이 기본이고, 낙동강은 갈수기에도 물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나와 인접한 곳에 이미 안동댐과 임하댐이라는 대형 댐이 두 개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목적은 낙동강 하천 수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옵니다.

나는 정말로 사라지게 될까요? '사귀자'며 찾아온 이들은 나를 보는 것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왔을까요?

내성천을 찾은 시민들이 '4대강 귀하다 지키자'는 현수막을 들고 하트를 그리고 있다. 여주댐으로 인해 들어찰 물의 수위가 빨강색으로 표시돼 있다.
 내성천을 찾은 시민들이 '4대강 귀하다 지키자'는 현수막을 들고 하트를 그리고 있다. 여주댐으로 인해 들어찰 물의 수위가 빨강색으로 표시돼 있다.
ⓒ 황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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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사라져야 하는 게 제 운명인가요? 여러분이 답해주세요

어떤 이는 모래톱 위를 걸으며 오랜 옛날 여기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낡은 놋그릇과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줍습니다. 깨진 조각에 구멍을 뚫어 목걸이를 만들 구상을 합니다. 문경 예천에 사는 그는 도예과를 전공한 예술가입니다. 전에도 혼자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회룡포의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영주댐으로 인해 사라질 것을 가슴 아파합니다. 최근에는 인사동에서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4대강의 죽음'을 알리는 상여 퍼포먼스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를 "반드시 지키겠다"며 진흙을 만지던 단단한 손을 움켜쥐었습니다.

결혼 1주년을 여기서 기념하겠다며 멀리 부천에서 나를 찾아온 부부도 있었습니다. 둘은 손을 잡고 말없이 모래 위를 자박자박 걸었습니다. 부인은 아름다운 강에 댐을 만드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생태감수성 없는 사람들이 엉뚱하게 강을 마구 파헤친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그녀는 나를 보며 "너무나 아름다워서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마지막이 될지 나중에 다시 오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을 감사한다"면서.

내성천을 찾은 시민들이 맨발로 모래 위를 걷고 있다.
 내성천을 찾은 시민들이 맨발로 모래 위를 걷고 있다.
ⓒ 황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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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온 다큐멘터리 촬영팀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을 촬영하기 위해 중국과 필리핀을 거쳐 한국에 왔다가 우연히 나를 찾아왔습니다. 피부를 검게 그을린 카메라맨은 한참 촬영을 하다가, 3년 전 중국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중국 양쯔강의 싼샤댐과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환경대재앙'이라 불리던 싼샤댐 건설 당시 반대하는 중국인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4대강이 어떤 사업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거대한 댐이 가져올 위험은 압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나를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관련 작품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금광리에 사는 한 마을 주민은 어릴 적 내 위에서 고기를 잡고 놀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물고기들이 시속 20~30km로 움직여도 발로 잡을 수 있었다"며 빙그레 웃습니다. 그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은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마을이 사라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부가 문화재 이전 등 기본적 대책조차 논의하지 않는다며 분개합니다. 다른 마을 주민들도 "우리가 반대한들 국가가 하는 일을 막을 수 있겠냐마는, 참 한스럽다"고 합니다.

2014년입니다. 4년 후 영주댐이 완공되면 나의 이름도, 모습도 흔적 없이 사라질까요? 알 수 없습니다. 오늘도 나의 물줄기들은 말없이 작은 마을들을 휘감고 돕니다. 은빛 모래들을 싣고 낙동강으로 흐릅니다.

강 한가운데에서 사랑을 외치다
녹색연합 '사귀자(4대강·귀하다·지키자)' 프로젝트
아름다운 강과 연애하는 프로젝트 '사.귀.자'(4대강. 귀하다. 지키자)
▲ 우리 사귀자~! 아름다운 강과 연애하는 프로젝트 '사.귀.자'(4대강. 귀하다. 지키자)
ⓒ 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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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최하는 4대강 답사 프로그램이 신청 인원 미달로 무산되는 등 무관심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18일 녹색연합이 진행하고 있는 '사귀자' 프로젝트의 첫 현장 탐방 프로그램에 시민 40여 명이 참가했다.

'사귀자'('4대강·하다·지키'의 약자) 프로젝트는 아직 훼손되지 않은 4대강 사업 대상 지역들을 지켜내자는 취지로 녹색연합이 시작한 '강과의 연애' 프로젝트다. 김성만 녹색연합 4대강 대응팀 활동가는 "그동안 4대강 대응 활동이 한강과 낙동강에만 집중돼 있어, 아름다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들이 많았다"며 "보존할 가치가 큰 지역들을 선정해 '이곳만은 지키자'는 취지로 시민들과 함께 현장을 찾는 '사귀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북 영주 내성천에서 진행된 첫 번째 현장 탐방 프로그램에는 '낙동강의 피눈물' 영상을 만든 촬영팀을 비롯하여 서울, 영주 등 각지에서 온 시민들 40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내성천의 모래 위를 걷는 내내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탐방에 참가한 이동렬씨(프리랜서, 32)는 "길에서 '사귀자'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고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게 됐다"며 "이곳을 영상으로 촬영해 시민들에게 내성천의 아름다움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낮에는 친정부 활동을, 밤에는 '4대강 반대' 활동을 하느라 괴롭다"는 한 직장인은 "4대강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지율스님이 내성천을 방문한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오게 됐다"고 말했다.

내성천 데이트는 끝났지만 앞으로 '강과의 데이트'가 네 번 더 남아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쌍화점> 등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금강 하구 갈대밭의 낭만적인 데이트(10월 2일)가 기다리고 있다. 또 야생이 살아 있는 금강의 천내습지, 담양습지의 울창한 대나무숲,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병산서원 앞 병산습지도 차례차례 방문한다. 서명에 참여하거나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방식으로도 '사귀자'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참가신청‧문의 : http://www.greenkorea.org, http://cafe.naver.com/sagiza)


태그:#내성천, #영주댐, #4대강, #회룡포, #안동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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