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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블로그에 연재되고 있는 내가 살아 온 삶들에 대한 기록은 근자에 출간한 나의 자서전 '뉴민주당 그 거대한 기쁨'의 일부분을 갈무리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점과 이야기의 중심구조가 나를 중심으로 엮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요즘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님과의 이야기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많은 분들이 격려와 함께 질책을 보내주셨다. 질책을 보내주신 분들의 대부분은 2004년 탄핵에 대한 나의 입장을 물어왔다. 탄핵을 할 때는 찬성해 놓고 이제와 돌아가신 대통령님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모습이 표리부동하다는 것이다.

그 분들의 비판은 분명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그리고 정치를 계속하는 한 나에게는 그 분들의 의견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2004년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탄핵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혀 왔다. 그동안 어떻게든 내 입장을 밝히고 가야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왔다. 대통령님께서 가시고 나자 그런 내 생각은 더 확실하게 굳어졌다.

사실 이번에 자서전을 준비하면서 탄핵 시절의 상황을 기록했었다. 그것은 당시 내가 처한 상황과 회한과 가슴 속 상처였다. 하지만 난 결국 그 부분을 자서전에서 삭제하고 말았다. 이유는 지금의 내처지 때문이다. 난 민주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고 그 준비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내 마음 속 고백이 정치적으로 비춰질 것만 같았다. 이로 인해 돌아가신 분에 대해 오히려 누를 끼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결국 난 자서전에서 탄핵 부분을 삭제했다. 하지만 블로그에 올린 글들이 사방으로 퍼져가고 뜨겁게 반응하는 누리꾼의 댓글을 보면서 내 생각이 짧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자서전에서 누락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할까 한다. 사실 떨리고 두렵기도 하다. 평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아래부터는 자서전에 누락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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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20일 결국 민주당이 분당되었다. 많은 분당파가 함께하기를 끝까지 설득했지만 난 동참하지 않고 끝내 민주당에 남았다. 분당 전날 분당파의 정신적 수장이었던 김원기 의장은 새벽 3시까지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내 완곡한 고사가 이어지자 마지막에 가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전해왔다.

"김의원, 당신 참 나쁜 사람이요. 나는 대통령이 정치인을 두고 책임지겠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당신에 대해서는 세 번씩이나 김효석이는 내가 책임진다는 얘기를 하고 있잖소. 아무리 당신 뜻이 옳다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이 당신을 못 잊어 마지막까지 이렇게 애원하는데 이럴 수가 있소?"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흔들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통령과 난,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로 변해 있었다. 대통령은 나의 생각을 존중했고 나 역시 그 분의 올곧은 성정에 흠뻑 매료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정치적 판단의 문제였다. 난 결코 분당파가 말하는 분당의 논리에 찬성할 수 없었다. 분당은 그 어떤 레토릭으로 치장해도 분열이었다. 결코 명분이 없는 일이며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에 문제가 있으면 당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당을 깨고 나가면 어떻게 정당의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단 말인가? 새롭게 만든 신당이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 때 또 당을 깨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끊임없이 당은 분열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분당파가 내세우는 지역주의 청산이 왜 민주당을 깨야만 이루어지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또한 난 분당이 호남의 고립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호남은 많은 이유로 홀대 받아왔다. 3당 합당이 그랬으며 5.18 광주 학살이 그랬다. 그러면서도 호남은 마치 지역감정의 온상지처럼 지탄 받아왔다. 동서화합을 얘기할 때면 너도 나도 호남기득권을 깨야한다고 말하지만 그보다 실제적으로 한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영남기득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비겁한 정치 행태다. 호남 기득권에 안주한 수구적 정치 행태는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호남의 정신, 호남인들의 뛰어 난 정치의식마저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으로 매도되어선 안 된다.

당시 민주당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동의한다. 민주당은 호남기득권 세력의 득세, 비민주적인 당내 절차, 계파정치로 사분오열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은 시스템을 바꾸고 치열한 당내 투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마땅했다. 그것이 바로 정당의 발전이며 역사이다. 분당파는 스스로를 옥이라 생각하고 남은 기득권세력을 석으로 규정해버렸다. 분당파의 주장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걸러내자는 옥석 고르기와 다를 바 없었다. 문제는 그 옥석 고르기는 정치인이 아닌 국민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정치를 마음에 맞는 사람들하고만 할 수 있단 말인가.

난 결국 분당에 동참하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다. 무수한 비판이 날아왔다. 호남당, 전라도 깽깽이, 호남의 자민련이 될 거라는 욕설에 가까운 비아냥거림이 들려왔다. 정치를 시작한 후 가장 큰 시련이었다. 새롭게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초미니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삽시간에 민주당을 추월하여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자 명실공이 정부 여당이 되었다. 대통령을 만들고도 다시 야당이 되어버린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과 싸워야 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공동의 지지자를 두고 살고 죽는 제로섬 게임을 벌여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선거를 앞둔 민주당은 대통령과 신당에 대한 분노로 폭발 일보 직적이었다. 선거의 결과가 민주당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었다. 한순간에 여당에서 야당으로 변해 버린 민주당이 갖는 불안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때 대통령의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이 터졌다.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는 반대자 입장에서 해석하면 민주당 죽이기였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민주당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처절한 생존 본능과 다름없었다. 국회에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탄핵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었다. 나는 대통령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주관에 대해 타협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야당의 탄핵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감정적인 판단이었다. 난 당내에서 강하게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 하지만 당 분위기는 반대의사를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경색되어 있었다. 강경파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의 의사는 너무도 쉽게 묵살되어 버렸다. 다가 올 파국이 눈에 빤히 보였다. 결국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당에서는 표 단속을 위해 몇차례 다짐을 받았고 국회에서 밤을 함께 새우며 결전을 다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분명 민주당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당론으로 결정지어졌다. 정 당론을 따르기 싫으면 탈당을 하라는 얘기까지 있었다. 이제 탈당을 각오하고 당론을 거슬러 반대의 표를 던질 것이냐, 아니면 당론에 따라 찬성표를 던질 것인가만 남았다.

결국 난 찬성표를 행사했다. 거스를 용기가 부족했다. 비겁하다고 욕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당의 원칙에 동의한다. 탈당하지 않는 한, 당의 결정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었다. 당론의 결정 과정은 또 하나의 투표이며 결과에 승복한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심판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후 난 그 때의 선택으로 인해 많은 비판에 시달려왔다. 많은 국민은 그 때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두 내가 짊어져야할 정치적 짐이다. 내 정치적 과오에 대해서 변명할 생각은 없다. 국민의 주신 뜻을 겸허한 마음으로 반성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은 차마 지울 수 없었다. 정치적 문제와 인간적인 문제는 엄연하게 다르다. 난 인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께 죄를 지었다. 탄핵이 통과되던 날 하루 종일 우울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 가슴 속 화농이 되어 박혀버렸다. 이제 그 미안함을 갚을 길도 없다. 야속한 양반. 그 미안함은 영원한 빚이 되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리고 정치를 하는 한 계속해서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이다.

탄핵의 역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셌다.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민주당의 지지도는 끝 간대 없이 하락했다. 아! 민주당의 선택은 실패한 것이다. 국민의 의중을 정확히 읽지 못했던 것이다. 정치를 계속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 둘 순 없었다. 그것은 비겁한 도피였다. 난 도망자가 될 순 없었다. 지금 주어 진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야만 난 새로운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17대 총선을 시작하기도 전 민주당은 전 지역에서 몰살이 예고되고 있었다. 여론조사를 돌려보면 내 지역구에도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선거는 해보나마나한 게임이 될 수도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압승은 이미 대세였다. 한나라당은 천막 당사로 옮기면서 까지 국민께 사과했고 호남 근거지마저 잃은 민주당은 아예 회생의 기미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 무엇으로도 분노한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그 때 열린우리당에서 연락이 왔다. 김효석이를 죽이기 아까우니 지금이라도 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라는 제의였다. 그러면 지역구는 열린우리당 후보를 정리해 주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고마웠다. 그 제의는 어쩌면 어둠의 수렁에 빠진 내게 희망의 동아줄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 제의를 수락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어려움에 놓인 것은 내 선택에 의한 인과응보였다. 결국 모든 원인이 내게 있었다. 난 달게 그 벌을 받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내가 무슨 염치로 다시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단 말인가. 차라리 정치를 그만두면 두었지 그럴 순 없었다. 나는 그 뜻은 너무도 고맙지만 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 때 다시 뜨겁게 만나자고 열린우리당 입당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난 정말 열심히 선거 운동을 했다. 냉담한 민심이 선거운동을 하는 내내 피부로 전달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업보라고 생각했다. 난 진심을 다해 일할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며 다녔다. 내 진심이 통해서 인지 난 선거에서 가까스로 승리할 수 있었다. 정말 어려운 선거였다. 선거 결과는 참혹할 만큼 당황스러웠다. 민주당은 전국에서 단 5석 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민심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난 다시 살아남았지만 브레이트의 시구처럼 기쁘지 않았고 오히려 슬펐다. 그저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일 밖에 할 줄 몰랐던 나는 탄핵과 17대 총선을 겪으면서 비로소 정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정치를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국민이 두려웠다.

난 살아남았지만 민주당은 형체만 남고 고사 직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을 벗어났지만 내가 진 마음의 짐은 결코 벗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민주당을 살려 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호남을 석권하기 시작했고 서울에서 조순형의원을 당선시킬 정도로 회복하고 있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연전연패하여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17대 국회에서 내가 해야 할일을 찢어진 야권의 통합으로 정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두 개의 정당은 다시 합쳐져야만 했다. 기필코 민주개혁세력은 하나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이 17대 국회에서 내가해야할 일이었다. 내가 몸을 던져 통합에 앞장섰던 것도 탄핵에 동참했던 짐을 덜기 위해서였다.


태그:#노무현대통령 탄핵, #김효석, #뉴민주당플랜, #민주당전당대회,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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