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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키우면서 놀란 가슴 쓸어내린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10살 아들, 8살 딸을 키우고 있는 직장맘이다. 얘들을 키우다 보면 감기로도 아프고, 사고로 다치기도 하다. 어른이 눈앞에 있어도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 펼쳐진 것은 며칠 전, 아파트 현관 앞에서였다.

마라톤광 따라가다 계단서 구른 아들

퇴근 후, 밥통에 쌀을 안쳐놓고 출근하면서 싱크대에 담가놓은 그릇을 씻고 있었다. 마라톤광인 남편도 일찍 퇴근했다. 8월 29일에 있는 마라톤 기록단축을 위해 훈련을 한다고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더운 여름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한 아들에게 남편은 "자전거 타러 갈래?"라고 말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아들은 서둘러 자전거 열쇠를 챙기고 현관문을 나섰다.

"자전거 타러 갈래?"란 말 한마디에...
▲ 영화 'ET'의 한 장면 "자전거 타러 갈래?"란 말 한마디에...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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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분쯤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고 부자(父子)가 다시 들어왔다. 왼쪽 머리에 피를 묻히고 얼굴에는 피멍이 든 채 말이다. 머리에는 계단을 굴러 생긴 상처가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선명하게 보였다. 길이 4cm, 두께 2mm의 상처다.

아파트 계단에 세워둔 자전거를 서둘러 옮기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서 생긴 상처다. 같이 있던 아빠도 미처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현관문을 나선지 몇 초 만에 벌어진 상황이었고, 1분여 동안은 피를 멈추기 위해 손으로 지혈했던 시간이었다. 서둘러 구급약을 찾아 소독하고, 붕대로 머리를 동여맸다.

계단에서 구르느라 떨어진 신발을 주우러 계단으로 가보니, 웬일인지 신발이 한 짝 밖에 없다. 마라톤광이 앞서 갈까봐 아들은 마음이 무척이나 급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얼굴 정면은 아니었지만, 응급실에 가야할지 잠시 망설이다 인터넷을 찾아 보았다. 지혈을 하고, 하루 이틀 경과를 지켜보다가 심한 두통이 있거나 하면 병원으로 가라했다. 다행히 피는 멈췄고, 말하는 것도 또박또박하다.

혹시나 염증이 염려되어 다음날 병원에 들렀다. 다행히 꿰맬 정도의 상처는 아니고 주사 한 방과 약을 처방해 주었다. 머리에 동여맨 붕대는 상처도 깊지 않고, 여름이라 바람이 통해야 한다며 풀어도 된단다.

6년 전, 딸 손가락 괴사될까 노심초사

6년 전, 딸아이가 2살 때였다. 평상시처럼 얘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했다. 점심 무렵 평소에는 전화하지 않는 어린이집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이 다쳐서 119로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원장도 지금 병원에 가는 길이라 정확한 사항은 가봐야 안다고 했다.

점심 무렵 평소에는 전화하지 않는 어린이집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이 다쳐서 119로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 119 구급대 점심 무렵 평소에는 전화하지 않는 어린이집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이 다쳐서 119로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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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병원이라고 알려줬다. 서둘러 사무실을 나와 차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오로지 신호등 색깔만 보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병원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 안 왔어? 더 기다릴 수 없어서 지금 수술 들어갔어."

남편은 차라리 잘됐다 했다. 덜렁거리는 손가락을 봤으면 충격이 컸을 거라며 위로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딸아이는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발간 채, 오른손에 붕대를 동여매고 나왔다.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가 딸이 문 옆에 서 있는 걸 모르고 문을 닫았단다. 오른손 중지 약 1cm 가량이었다. 소독을 해주려고 보니 수술한 흔적이 자그마한 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살은 한쪽으로 밀려있었다. 그런데,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가 괴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유명하다는 외과병원, 성형외과 등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택시기사가 그런다.

"오늘만 울고 이제 그만 우씨요."

손에 쥔 손수건이 축축하게 젖어있다. 어떤 의사는 손이 괴사되어 지금 당장 수술해서 아래 살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어떤 의사는 괜찮다며 우선 치료하고, 나중에 성형해도 된다고 했다. 의사마다 다른 의견에 희망과 절망을 오갔다.

다시 수술할 수도 없고, 이왕 수술한 거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더 이상 어린이집을 보낼 순 없었다. 그날 바로 짐을 싸서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서 2년 동안 살았다. 괴사되지 않기를 바라며 날마다 거르지 않고 소독을 하고 치료를 했다. 다행히 손가락은 좀 아쉽긴 하지만 잘 붙었고, 지금은 1년 반을 다닌 피아노도 제법 잘 친다.

다쳐도 잘 먹는 아들, 마음을 놓다

계단에서 굴러 생긴 아들 머리의 상처도 2mm의 틈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붙었다. 소독만 잘하면 문제없단다. 다쳤을 때, 응급실로 직행했다면 꿰맨 자국까지 흉터로 남았을 텐데 다행이다. 학원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렸다. 상태를 유심히 봐달라 부탁하고, 점심으로 죽을 끓여 보냈다.

아들이 죽을 먹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한다. "그럼, 그만 먹어라" 했더니, 곧바로 빵을 맛있게 잡수시더란다. 맛있게 먹는다니 다행이었다. 이틀간 병원에서 소독을 하며 경과를 지켜보고서야 겨우 마음을 놓았다.


태그:#자전거,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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