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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묘미는 각 나라의 풍물을 비교하는데 있다고 본다. 그러나 패키지 여행의 경우 아무리 자세히 본다고 해도 그 비교가 대체로 정확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왜냐하면 언어 소통 등의 이유로 각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제한되어 있고, 만나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설명에 보고 듣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판단까지 가미되면 자칫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번 유럽 여행도 주마간산격으로 훑어본 정도이고, 가이드의 일방적인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비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듯 하기에 진행된 일정을 참고하여 짤막하게 여행지별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에게 독일은 선망과 동경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의문의 나라였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킨 나라. 연합국에 의해 분단되어서도 세계가 놀랄 정도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낸 나라. 반세기 만에 민족 통일을 이루어낸 나라. 그리고 음악과 문학의 나라.

 

그러나 지난 8일 첫째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착과 일박은 솔직히 일정으로 치기 어렵다. 오후에 도착하여 저녁 먹고 숙소를 찾아 들어간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숙소에서 봤던 프랑크푸르트의 낙조, 공원 속의 도시 같은 시가지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점은 기록할 만한 사실이었다.

 

둘째 날 오전, 잠시 프랑크푸르트 시청광장, 마임강 주변, 성 페트로 성당 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시가지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어 깨끗하다는 생각뿐 감동은 적었다.

 

하이델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유럽의 풍경이 다음날 보게 될 로마의 풍경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지만 허물어진 건물, 그 건물 벽에 남은 수많은 정교한 조각, 그리고 우리의 전통 한의원에서 보았던 약장을 볼 수 있었다는 점,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술통 등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점은 이미 12세기에 세워진 대학이 존재했다는 하이델베르크의 역사도 그렇지만 라인강의 지류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까지 연결된다는 네카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잡은 뛰어난 도시 풍광이었다고 본다.

 

우리에게도 고구려시대에 태학과 경당이 있었고 조선시대에 요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과 지방 교육 기관인 향교가 있었다지만 현재는 박제화 되어버린 사실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던 점도 기록하고 싶다.

프랑크푸르트는 괴테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괴테에 관해 아무런 안내도 하지 않았다. 베르트르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던 심정을 되새기기에는 너무 늙었기 때문이었을까? 나 또한 묻지 못했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으면서 감동했던 시간조차 아득한 과거로 남겨둔 채 쫓기듯 로마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돌아와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크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8월 9일~18일 동안 다녀왔습니다.


태그:#유럽 여행,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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