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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는 어머니, '아이고, 죽겠다!'하시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십니다.
▲ 어머니 늘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는 어머니, '아이고, 죽겠다!'하시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십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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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평생 일을 달고 사십니다. 꽃다운 시절 시집을 온 이후 지금까지 너무 일을 많이해서 골다공증으로 고생을 하시는 데다가 허리까지 구부정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이젠 좀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시면 좋겠는데, 늘 일거리를 찾으십니다. 어떤 때는 '일귀신'이 씌인것 같아서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압니다.

'일하실 수 있는 게 좋은 거여, 그냥 하고 싶은것 하시게 두는 게 효자여.'

어머님께서 너무 일을 많이 하시는 것 때문에 속이 상해서 친구나 동료들에게 하소연을 하면 늘 결론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식 입장에서는 속이 많이 상합니다. 그냥,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는 말씀을 하지 않는 선에서, 취미 삼아서 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머니께서 무슨 일을 하신다고 하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오이밭에서 오이를 따고 있는 아내, 아들보다 더 낫습니다.
▲ 아내 오이밭에서 오이를 따고 있는 아내, 아들보다 더 낫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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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내도 그렇습니다. 저와 살다 보니 저와 비슷한 입장이지요. 그래도 어머니 편을 많이 듭니다. 늘 저한테 '불효자식'이라고 하지요. 자기 편한 대로 어머니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입니다. 어머니와 대립각을 세우면 늘 어머니 편이 되어 나를 공격하지요.

사실 농사일이라면 내가 더 많이 했고, 아내는 시집 오기 전에 농사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시어머니를 닮아서 거둔 것을 나눠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리바리 나누다 보면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는데 '그게 사는 맛'이라고 합니다.

사는 맛,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도 그 맛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다보니 '사는 맛'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난 늘 고독한 철학자 모양으로 인상을 구기고 있고, 아내는 늘 천진난만형입니다. 그렇게 다른 성격 때문에 적정선을 찾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밭일을 합니다.
▲ 어머니와 아내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밭일을 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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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2년이 되었습니다. 신혼 2년과 제주도생활 6년을 빼면 14년이나 아내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직장이다 뭐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아내는 삼시 세끼를 차려드리며 자식보다도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고부간의 갈등, 그것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 일이 없는 것을 보면 어머니와 아내는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직장 상사와 안좋은 일로 다투면서 실업자로 3개월을 보냈습니다.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새 일자리가 빨리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나는 나대로 오랜만에 좀 쉬면서 재충전하는데 일터로 내모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 중간에서 아내는 양쪽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어느새, 팔불출이 되고 있군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시중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오이, 이유는 생김새 때문이다.
▲ 못생긴 오이 시중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오이, 이유는 생김새 때문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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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를 땄습니다. 보시다시피 못생겼습니다. 시중에 상품으로는 나올 수 없는 모양들입니다. 그래도 아삭거리는 맛은 시중에서 사는 것에서는 맛볼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진짜 오이맛이지요.

아내는 오이, 감자, 토마토, 호박을 조금씩 나눕니다. 우리 먹을 것, 친정, 시누이, 그렇게 박스는 세 개가 됩니다. 이렇게 나누면 배달은 내가 해야 하니까 얼마 되지도 않는 것 우리나 먹자고 합니다. 그러면 대뜸 '정내미라고는 없는 양반'이라는 소리가 나오죠.

밭이 조금 먼 곳에 있습니다. 집을 나설때 아내는 '오늘은 어머니에게 화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꼬박 1시간 이상을 그냥 도로 위에 서 있었습니다.

"엄마는 평일날 가자니까, 이렇게 차막히는 토요일날 가자고 해요?"
"너, 월요일부터 출근하잖아? 이제 갈 시간이 없으니까 가자고 했지."
"알았어요."

나도 모르게 높아지는 언성, 서운하신 어머니, 중개자 아내......

일한 흔적을 간직한 장갑, 이런 모습이 정겹다.
▲ 면장갑 일한 흔적을 간직한 장갑, 이런 모습이 정겹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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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냥 어머니 하자는대로 다 했습니다. 일하시면 일하시는 대로 도와드리고, 해가 지거나 말거나 그냥 하시고 싶은대로 다 하도록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아내는 오랜만에 육체노동이라 힘이 든가 봅니다. 집에 오자마자 그냥 골아떨어집니다.

사진 정리를 하다가 아내가 일을 마치고 밭에 벗어놓은 목장갑을 보았습니다. 내 손과 흙 사이에서 아내는 목장갑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은,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아내는 목장갑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는 어려서 어머니를 몰랐고, 청소년기에는 친구들과 노느라 어머니를 몰랐고, 청년이 되어서는 내 인생 준비한다고 어머니를 몰랐고, 결혼을 해서는 아내와 아이들만 돌보느라 어머니를 몰랐고, 장년이 되어서는 내 인생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들어 어머니를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세세한 감정들을 놓치지 않는 아내가 어머니를 더 잘 압니다.

목장갑 같은 아내,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젠, 팔불출이 되어도 좋은 나이거나 팔불출이 되지 않으면 구박 받을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태그:#어머니, #아내, #고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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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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