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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사진 한장과 함께 출발합니다!
 새벽녘 사진 한장과 함께 출발합니다!
ⓒ 송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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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과 친구들은 당당히 출사표를 던지고 5일 새벽녘 첫 걸음을 나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시선을 보냅니다. 솔직히 약간 부담스럽습니다.

'쟤들은 이 더운데 대체 뭐하는 거야?'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지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설렘보다 컸다면 우리들의 도전은 이 자리에 놓일 수 없었을 겁니다. 자, 그럼 우선 오늘의 하루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새벽 6시 30분 수원 출발, 9시 20분 오산 시내 도착, 12시 30분 평택 초입에서 점심 식사, 오후 1시~2시 낮잠, 오후 6시 평택역 도착.

총 소요시간 휴식시간 제외 8시간, 총 이동거리 약 42km.

"힘내십쇼, 파이팅입니다!"

새벽의 도보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출근하는 직장인, 등교하는 학생, 그리고 그들을 위해 교통정리를 해주시는 교통 경찰과 모범택시 운전자.

병점역을 지나는 도중 교통정리를 하시던 한 모범택시 운전자분께서 우리들에게 "힘 내십쇼 파이팅입니다"는 응원의 말을 해주셨습니다. 한 시간 이상을 쉼없이 걷고 있던 우리들에겐 그 말 한마디가 응원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눈빛을 보냅니다. 날도 더운데 저게 뭐하는 짓이냐는 질타의 눈빛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응원을 보내주신 모범택시 운전자 같은 분들이 있기에 우리들은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깁니다.

태양을 가려 주고 바람이 분다면, 그곳이 우리의 휴식처

이 글을 쓰는 자취생은 평발입니다. 하지만 걷는 거 하나 만큼은 자신있었습니다. 군대 시절 행군에도 물집 한 번 잡혀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조깅화를 신고 더 가벼운 배낭을 짊어졌는데도 그 고통과 무게는 군대 시절보다 더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 고통은 차드, 야생마, 삐삐에게도 똑같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태양을 가려주고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 또한 젊을 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다들 휴식시간에는 평온해집니다.

태양을 가리고 바람만 막을 수 있다면 그곳이 휴식처입니다
 태양을 가리고 바람만 막을 수 있다면 그곳이 휴식처입니다
ⓒ 송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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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목적지는 평택 팽성읍 두정1리였습니다. 두정1리는 2005년 당시 차드와 자취생이 평화현장활동을 한 곳입니다.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첫 목적지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은 뜨거워지고 걸음은 느려져 평택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6시. 두정1리까지는 앞으로 8km 정도가 더 남았습니다. 휴식 없이 최대한 빨리 걷는다 해도 2시간. 아쉽지만 두정1리는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학생 이거 가져가야지~ 안 그러면 나 목사님한테 혼나는데"

우리는 첫날 잘 곳을 찾아 평택역 부근을 헤맸습니다. 애초부터 모텔이나 찜질방 등에서 자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잘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이 한 사회복지관에서 어느 교회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잘 수 있을 것이라고. 미리 전화를 넣어두고 교회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찾아간 교회에서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깁니다.

"어휴, 얼마나 힘들까. 저 땀나는 거 보소."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에 우리 어깨가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어쩌지? 우리 교회가 오늘 붙박이장을 새로 해서 본드 냄새가 많이 나... 여기서 잘 수 없을 것 같은데... 대신 목사님이 학생들 고생한다고 찜질방 가서 푹 자라고 하시면서 나가셨어."

따뜻한 밥 한끼라도 사먹으라며 손에 쥔 돈을 건네시는 어머님. 잊지 않겠습니다.
 따뜻한 밥 한끼라도 사먹으라며 손에 쥔 돈을 건네시는 어머님. 잊지 않겠습니다.
ⓒ 송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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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전하시면 아주머니께서는 주머니에서 봉투에 든 만 원짜리 세장을 꺼내십니다. 목사님이 찜질방비를 주고 가셨다며, 미안하지만 이 돈으로 찜질방 가서 자야 할 것 같다는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아... 코끝이 찡해 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삐삐는 아주머니와 목사님의 배려에 이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아주머니와 목사님께서 저희 생각해 주신 것만 감사히 받고 저희는 다른 잘 곳을 찾아볼게요."
"어, 그럼 이 돈 가져가서 밥이라도 따뜻한 거 사 먹어. 이돈 안 가져 가면 나 목사님에게 혼나."

아주머니가 내미는 만 원짜리 세 장을 차마 받지 못하고 도망치듯 그 곳을 나왔습니다. 황급히 발길을 돌렸지만 가슴이 찡해 옵니다. 이게 바로 도보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 민심 아닐까요.

결국 우리는 잘 곳을 찾지 못하고 어스름질 무렵 한 모텔에 짐을 풉니다. 모텔, 찜질방처럼 편한 곳에서는 절대 자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출발 하루 만에 깨졌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따뜻한 민심을 보고 난 뒤라 그리 씁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출발은 새벽 5시 30분, 하루의 종료는 오후 6시

첫날 하루를 걸어보니 40여 일을 걸어 목적지에 가기로 한 우리들에게 '걸음의 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루 도보의 룰을 정했습니다.

기상은 새벽 5시, 출발은 5시 30분,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종료는 오후 6시.

다음날 일정을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리해서 그날의 목표지점에 다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처음 우리가 계획했던 '즐김의 도보'와도 어긋나고 다음날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가 개인 뒤라 그런지 더욱 뜨거운 태양이 오후 내내 우리를 찾아온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청춘은 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말을 새기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일도 이런 하루가 계속 되겠지요.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무거운 배낭을 멘 어깨는 끊어질 듯 아파 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다시 한 발을 내딛습니다.

색칠한 것 아닙니다. 하루를 마친 자취생의 팔입니다.
 색칠한 것 아닙니다. 하루를 마친 자취생의 팔입니다.
ⓒ 송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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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한 장의 사진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우리의 고됨은 이 사진 한 장에 다 담을 수 있을 겁니다.


태그:#자취생 , #도보여행기, #오산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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