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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나 머리 염색하면 어떨까?"
"엄마는 괜찮아. 맘대로 해."
"무슨 색으로 할까?"
"오렌지색 어때?"
"너무 평범해."
"그럼 노란색"
"그것도 평범해."
"네 얼굴이 무척 평범하시거든요?"
"아니거든! 빨강색 어떨까?"
"왜, 그냥 초록색으로 하시지."
"초록도 괜찮긴 한데 빨강보다 눈에 안 띄어."
"아무거나 하셔도 눈에 띕니다. 고딩이 하시는데 왜 눈에 안 띄시겠어요."
"근데. 엄마, 나 돈 없어."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나도 돈 없어. 엄마가 미쳤다고 고딩 딸이 빨강머리 하겠다는데 돈 대주냐?"

일주일 전 딸은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나타났습니다. 제가 허락한 일이기는 하나 생각보다 너무 빨강머리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빨강머리로 염색한 딸
 빨강머리로 염색한 딸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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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짱 예쁘게 나왔지?"
"너 지하철 타고 왔냐?"
"응. 사람들이 다 쳐다봐. 어떤 애가 자기 엄마한테 '엄마, 저 언니 좀 봐' 라고 하는거 있지? 좀 무안하더라."
"너 집에 올 때 앞으로 모자 눌러쓰고 와라."
"왜?"
"야. 이 동네에서 네가 내 딸인 거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쪽팔리잖아'."
"헐. 어머니 마음을 크게 드세요."
"이보다 더 크게 마음 먹으면 하늘로 바로 승천하것다."

딸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날 저녁 외식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주변 시선들이 저희 모녀를 힐끗거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제 마음에 약간 당혹스러움이 올라오면서 아는 사람들이 내 딸을 '날라리'로 보는 걸 넘어 저를 이상한 엄마로 보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약간 떨어져 오라고 하고 빨리 걸었더니 눈치가 백단인 딸이 "엄마, 같이 가. 어머니 같이 가요"라고 장난치며 바싹 달라 붙습니다.

식당에서 한 부부가 우리를 계속 흘낏거려서 민망했는데 딸은 제가 아는 사람인 줄 알고 밝은 표정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 아저씨 놀란 표정을 보니 막국수 드시다가 목에 탁 걸렸을 것 같습니다.

빨강머리의 딸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두발 자유화가 허용되지 않는 학교에 보내는 부모로서 괜히 자기 딸이 물들까봐 걱정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동네 나이가 좀 있으신 분께 딸이 빨강머리를 했다고 하니 걱정의 눈빛을 보냅니다. 저더러 너무 지나치게 아이를 풀어준다고 말입니다. 십년 넘게 알고 지낸 분이라 우리 아이들을 다 알지만 남들은 외모만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오해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저도 딸과 식당을 가면서 '사회적 편견'에서 내 자신이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딸에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모만 가지고도 억울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딸은 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느냐고 반발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또 앞으로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아이들 스스로 느낀다면 그들이 바꿔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이 그 머리를 하고 세상을 좀더 배우기 위해 어디론가 갔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챙기는데 제 마음이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고 싶어합니다. 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지하철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걱정됩니다.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고 싶은 유혹을 겨우 뿌리쳤습니다.

모든 것이 그 아이를 위한 과정이기에, 무거운 것을 들고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것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보는 것도 그 아이의 삶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이기에 그냥 등만 두드려 줬습니다.

일제시대 때는 중학생이 독립운동을 했고, 4.19때는 고등학생이 독재반대 투쟁을 했고, 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는 대학생이 주도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정의를 외쳤던 나이 때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사회 정의는 누가 외칠까요?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생명평화마당'을 해보니 대학생들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다 어디에 있을까요. 그나마 조계사에 온 대학생들을 보고 반가워 물어보니 과제물 하기 바쁘답니다.

주말인데도 과제물에 쫓기냐니까 과제물을 하든 안 하든 늘 불안한 것이 요즘 대학생활이랍니다. 우리가 시험공부는 안 하면서 시험을 앞두면 어디 못 가는 것과 마찬가지 심리라고 할까요. 어쨌든 다른 쪽에 눈을 돌릴 수 없는 처지랍니다.

부모가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지 않으니 자식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서도 부모한테 의지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자유를 주면 그걸 누리지 못하고 방종으로 흐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기 자식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저는 제 딸이 빨강머리를 했건, 노랑 머리를 했건 관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소중히 여길 것임을 믿습니다.

다음 주에는 딸과 함께 이곳에 가렵니다. 엄마보다 너희들이 앞으로 더 오래 살 세상이니 너희가 나서서 지키라고 말입니다.

생명평화마당 49일 정진
 생명평화마당 49일 정진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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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유, #조계사, #4대강, #사회적편견, #생명평화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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