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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사퇴에 분노를 넘는 슬픔 느껴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가 경기지사 후보를 사퇴했다. 진보정치의 제도적 역량이 극도로 핍진한 상황에서, 그간 이 땅의 진보진영은, 원했든 원치 않았든, 몇몇 뛰어난 인물들에 정치적 진출을 의존해 왔다. 그런 인물들의 맨 앞자리엔 언제나 심상정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의 충격과 아쉬움이 컸다.

 

후보사퇴는 전적으로 심상정 본인의 결정이었겠지만, 진보진영 안팎의 우려와 반발을 왜 그라고 예상 못했겠는가. 사퇴의 변을 말하던 그의 눈물이 그가 짊어져야 했을 말할 수 없는 부담과 고뇌를 대변한다. 정치권 밖의 일개 관찰자로서 나는 심상정 같은 촉망받는 정치인을 이런 결정에 이르게 한 현 단계 한국정치의 지형과 제도적 실상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개인적 분노와 분노를 넘는 슬픔을 느낀다.  

 

조용히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 본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질과 관련된 실질적 내용들을 말하기 이전에 그런 것들이 채워질 수 있는 절차와 제도의 정비에 일차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자본(이 우위를 점하는 위계적 권력현장인 시장)에 대한 노동의 상쇄력의 정치적 제도화"로 정의해도 무방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계급간 권력의 길항을 제도화한 정치체제이다. 민주화 이후 사반세기의 한국정치는 여전히 이런 제도적 장치가 부실하거나 부재하다. 선거법, 정당체제, 법 앞에 평등, 노조관련법, 기업법, 기업지배구조 등 허다한 분야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수렴, 표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와 제도들이 미완인 채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진보의 가치 이전에 민주주의 가치 방어해야 하는 상황

 

제도가 부실하면, 인물이 제도의 역할을 대신 해야 한다. 이는 사람이 제도의 공백을 현장에서 몸으로 메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제도 자체를 만드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심상정의 역사적 의의는 바로 한국 민주주의에 현 발전단계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 선거를 명백한 지형선거로 본다. 현 상황은 통상적인 정당정치의 맥락으론 설명될 수 없는,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와 관련된 엄중한 상황이다. 그것은 제도의 공백을 메울 진보적 인물들의 정치권 진입 자체를 항구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이다.

 

한국정당정치가 여야를 막론하고 보수적 이념의 지형 위에서 전개돼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이념적 지형이란 것이 그냥 보수라는 말로 뭉뚱그려 질 수 없다는 것이 갈수록 자명해졌다. 방송법 같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법에 대한 상식적 저항조차 반대를 위한 반대, 상습적 발목잡기 정도로 치부하는 전략이 흐지부지 먹혀들고 있다. 재벌, 복지, 노동 등 개혁의 핵심과제들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거나 오히려 퇴행의 조짐마저 감지된다.

 

이런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제도화를 가름하는 것들로서 구태여 진보적 가치를 들이댈 필요가 없는 사안들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 상황에 대한 정밀한 인식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 상황에서 문제는 민주당/국민참여당이 진보진영으로서는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무능한 보수정당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토대를 '착실히'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정치의 현 상황은 현 집권세력과 민주당을 보수진영으로 한꺼번에 싸잡아 매도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한국의 진보진영이 새롭게 도약하려면, 도약의 터전이 웬만큼 마련돼야 한다. 현 정세에서 그런 터전을 갖추는 작업은 방어적이고 보수적으로 수행될 수밖에 없다. 집을 지을 땅의 토사가 휩쓸려 내려가는데, 진보의 벽돌을 쌓자고 난리를 피울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모든 가능한 전선에서 그간 이룩한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를 지켜내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진보의 가치 이전에 민주주의의 가치를 방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반MB는 단순한 선거전략일 수 없어

 

보수우익이 보기에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일지 모른다. 진보진영 쪽에서 그것은 분명 다른 쪽에서 잃어버린 10년이었다. 민주당/국민참여당은 '진보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만큼 유능하지 않으며, 또 그 10년을 성찰하고 반성하고 책임을 물을 만큼 정직하지도 체계적이지도 못하다. 이 두 정당은 다양한 입장들과 무입장이 혼재돼 있는 무정형의 비이념정당이라는 편이 옳다. (모당인 열린우리당이란 이름을 상기해 보라.)

 

가령 민주당은 반MB의 연대세력이라는 의미 이상을 부여할만한 정당이 애초부터 아니었다. 어차피 진보정치의 명운이 민주당에 달려 있다고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정색을 하고 민주당의 진보성을 따지는 것만큼 싱거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정말 심각한 일은 이명박 정권의 지난 2년 반 세월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역사를 일거에 한 세대 이전으로 돌릴 수도 있는, 지극히 공격적이고 독선적인 정권임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MB는 단순한 선거전략일 수 없다. 그 자체가 진보정치의 앞날을 위해 갖는 함의가 진정으로 막중하기 때문이다. 혁명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면 진보의 도약은 건전한 민주적 토양 위에서만이 가능하다. 지금은 그런 토양, 그런 지형이 위기에 몰린 절박한 상황이다. 이러한 때에 가짜 진보와 진짜 진보의 차별화를 논하는 것은 정말 적절치 않다

 

보수당 18년 집권 영국, 신자유주의로 완전히 바뀌어

 

지난 30년의 영국정치가 교훈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국 보수당은 1979년 이후 대처의 11년 집권을 포함하여 18년 동안 연속적으로 집권했다. 1997년 노동당이 집권했지만, 그 때에는 이미 대처주의가 영국정치의 이념적 지형을 신자유주의로 완전히 바꾼 뒤였고, 그 와중에 노동당내외의 좌파 진보진영은 정치적으로 사실상 괴멸되었다. 대처정부가 국유화한 산업들에 대한 재국유화는 완전히 포기됐고, 오늘날까지 영국은 서방세계에서 노동운동의 강도가 가장 낮은 나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영국정치에서 제3의 길을 뛰어 넘는, 명실상부한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반이명박 전선은 이명박 개인에 대한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 대통령이 지니는 막강한 권력과 현 정권 출범 이후의 일관된 행태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수많은 반민주적 관행과 민주주의의 퇴행을 정당화하는 제도화에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것이다.

 

진보정치의 장래 아닌 생존 낙관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린 상황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정치지형 뿐 아니라 현재대로의 우리의 시민사회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압도적인 보수적 헤게모니 속에서 이념적으로 지극히 퇴행적이고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의 의식을 여전히 짓누르는 것은, 냉전반공주의 뿐 아니라 지역주의, 성과주의, 반정치, 반복지 담론, 가난과 노동에 대한 경멸, 한탕주의 같은 것들이다.

 

지금의 추세대로 언론과 방송이 보수일변도로 스스로를 정비해 갈수록, 우리 사회의 퇴행적 의식과 관행은 교정되지 않은 채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이 땅의 선거제도와 언론이 진보진영의 후보자들을 어떻게 차별하고 체계적으로 배제해 왔는지, 일련의 명백한 반개혁적 조치들이 변변한 저항에 노출되지 않고도 어떻게 성공적으로 법제화 되어 왔는지, 익히 보아왔다.

 

우리는 진보정치의 장래가 아니라 생존을 낙관할 수 없는 암울한 처지에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반MB는 단순한 선거전술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정치와 사회의 막중한 위기 상황에 대한 차선의,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대응이다.

 

심상정 후보의 사퇴는, 진보진영의 수많은 양심적 인사들과 활동가들에게 말할 수 없는 상실감 혹은 상처를 안겨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한국 진보정치의 생존과 한국정치의 민주적 지형을 복구하기 위한 살신의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잘못하면, 다 죽는다.

덧붙이는 글 | 고세훈 기자는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입니다. 


태그:#심상정, #고세훈, #경기지사 후보,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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