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산을 지나 태안반도를 따라 이어지는 서해 가로림만(加露林灣) 길을 달리다보면 혹시 잘못 표기된 것이 아닌가 싶은 이정표를 발견한다. 그 이름은 '황금산' 참 독특한 산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엔 자전거 여행 중이었는데 가로림만의 집요한 언덕길들에 지친 나머지 미처 가보지 못하고 다음에 꼭 들르리라 머릿속에만 꾹꾹 눌러 담았던 곳이다.

대호방조제를 넘어 달려가다 작은 어선들이 정답게 떠있는 삼포항을 지나면 가로림만의 끝동네 독곶리가 나온다. 황금산과 독곶리가 써있는 이정표를 따라 29번 국도를 계속 달리면 어느새 도로가 끊긴다. '국도 종단점!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커다란 팻말과 함께 앞에는 좁은 흙길과 웬 공장의 굴뚝들이 서있고 초록의 수풀 뒤 저멀리에 야트막한 산이 솟아있다. 저 산인가? 마침 지나가는 분에게 물어보니 저 산이 황금산이란다. 

황금산은 원래 항(亢)금산으로 칭했고 옛 읍지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예전엔 금을 캐기도해 폐광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서해 가로림만의 입구를 지키고 선 등대같은 황금산, 품속에 황금만큼 귀한 비경을 감추고 있다는 산에 드디어 찾아왔다.

산의 들머리에 이런 작은 포구가 있다니 참 이색적인 산행길이다.
 산의 들머리에 이런 작은 포구가 있다니 참 이색적인 산행길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황금산 주변에는 거대한 산업단지의 높은 굴뚝들이 솟아있어 또 다른 풍광을 만들어 낸다.
 황금산 주변에는 거대한 산업단지의 높은 굴뚝들이 솟아있어 또 다른 풍광을 만들어 낸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낮지만 다채로운 풍경을 지닌 산

산의 들머리에 작은 포구와 함께 포장마차촌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 생경하고도 이채롭다.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산은 안 오르고 그물이 쌓여있는 포구 앞에서 물고기를 싣고 들어오는 작은 어선들을 구경하거나 바닷가에 모여 앉아있다. '이 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구나' 산을 오르기도 전에 그런 느낌이 든다.  

해발 130m. 산이라 부르기엔 좀 민망하게 낮은 높이지만 멀리서도 눈에 띄게 보일 만큼 산의 풍채가 당당하고 뚜렷하다. 바다 옆에서 등대처럼 우뚝 솟아난 산이라 그런 것 같다. 이 산을 기준으로 한쪽은 풍요로운 가로림만 갯벌이고, 다른 쪽은 수많은 굴뚝이 서 있는 공업단지다.

흙 속에 묻혀 반쯤나온 나무계단길을 따라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오른다. 주말인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호젓한 숲길을 혼자 걷기도 한다. 새들도 황금을 좇아 왔는지 온갖 종류의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새들의 합창에 맞춰 울창한 수목으로 그늘진 오솔길을 여유롭게 걷는 것만으로도 산행이 즐겁다. 산속에 야생 고라니들이 산다더니 그럴 만하겠다.   
황금산은 3개의 작은 봉우리가 능선으로 이어져 남북으로 긴 산자락이다. 1시간도 안 되어 봉우리의 정상에 오르니 돌탑과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 황금산사가 맞아준다. 인근 주민들이나 어부들이 풍년이나 풍어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사실 이 정도는 잠시 쉬어가는 풍경일 뿐이다. 이 산의 진수는 정상의 봉우리들이 아니라 바닷가의 절경들이다. 그래서 황금산을 바다를 보러 오는 산이라고들 한다.

급하거나 험하지 않은 부드러운 오솔길을 걸어 오르다보면 새소리들 사이로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급하거나 험하지 않은 부드러운 오솔길을 걸어 오르다보면 새소리들 사이로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황금산에는 금보다 멋진 비경이 숨어있다. 물이 더 빠지면 코끼리 바위 밑으로 걸어 넘어갈 수 있다.
 황금산에는 금보다 멋진 비경이 숨어있다. 물이 더 빠지면 코끼리 바위 밑으로 걸어 넘어갈 수 있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바닷물을 마시는 코끼리 바위

'코끼리 바위'라고 써 있는 산속 이정표를 따라 다시 산을 내려간다. 수목이 우거질대로 우거진 산길을 내려가자니 정말 바다가 나오긴 나오는 걸까 믿기지가 않고 의심이 든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이 어딘가에서 파도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귀를 쫑끗 세우고 들어보니 이번엔 길고도 낮은 저음의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와~"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좁은 외길의 내리막길을 사뿐하게도 내려간다. 파도소리와 뱃고동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 풍경도 함께 커지면서 갑자기 눈 앞이 망망대해의 바다로 탁 트인다. 저멀리로 서해바다가 한 눈에 펼쳐지는 작은 해안이 그냥 봐도 명당자리다. 초병은 없지만 작은 초소도 들어서 있다.

바닷가에 들어서서 내가 내려온 산쪽을 보니 깎아지른듯한 기암절벽이 해안를 따라 도열해 있다. 해안으로 장대하게 치솟은 절벽들도 멋진데 그 위로 낙락장송의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부드럽고 모성을 느끼게 하는 다른 서해 바닷가와는 달리 날카롭고 늠름한 절벽과 시원하게 쪼개진 기암들이 강한 남성성을 느끼게 한다. 바닷가에도 모래는 없고 다양하게 생긴 몽돌들이 꽉 들어차 있다.

자갈들 위를 조심스럽게 걸으며 절벽으로 둘러싼 해안을 따라 가다보면 독특한 모양의 바위들을 만나게 된다. 산속의 이정표에 써 있던 코끼리 바위가 대표적이다. 조각가가 작품으로 만들어 바닷가에 전시해 놓은 것처럼 절묘한 모양이다. 족히 5m는 넘는 이런 큰 코끼리 바위를 바다가 파도라는 끌과 정으로 만든 것이라니, 그 시간과 세월은 계산하기도 상상하기도 어렵다. 물이 더 빠지면 코끼리 바위 뒤로 넘어가 해안 도보여행을 계속 할 수 있고, 밀물이 오면 코끼리가 점점 바닷속으로 잠긴다니 더욱 신비한 풍경이다.

거칠고 투박한 바위와 깍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닷가는 강인한 남성성이 물씬 풍긴다.
 거칠고 투박한 바위와 깍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닷가는 강인한 남성성이 물씬 풍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산속에서 주먹만한 빨강게와 마주치니 신기하고 반갑다.
 산속에서 주먹만한 빨강게와 마주치니 신기하고 반갑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주상절리, 기암괴석, 해식동굴의 절경

서해바다의 특징인 조수간만의 차는 이런 리아스식 해안을 만들었다. 바닷물의 거친 드나듦은 흙을 허물고 바위를 깎아내면서 해안을 따라 멋진 비경들을 탄생시켰다. 제주도에서 보았던 주상절리의 멋진 바닷가를, 강원도 추암해변에서 만났던 기암괴석들의 절경을 황금산에서 그것도 바로 눈 앞에서 마주하다니.

촛대바위를 닮은 우뚝 키 큰 바위가 바닷가에 서있는데 꼭대기에 절묘하게 자라는 소나무의 목에 밧줄에 걸려 밑으로 내려져 있다. 밧줄에 치댄 소나무가 위태위태하고 안쓰럽다. 겨우 저 바위 위에 올라가보려고 소나무에 밧줄을 걸어 놓은 사람의 욕심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아무도 없는 해안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근처에 있는 낚시배를 빌려타고 기암절벽의 주변 해안을 둘러볼 수도 있다고 한다. 바닷물도 서해라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맑고 파랗다.

해안가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밑으로 많은 굴들이 뚫려있다. 쉬어갈 겸 깊지 않은 굴 안에 쏙 들어가 앉아 있으니 포근하고 편안하다. 쇠처럼 단단해 보이는 바위에 어떻게 이런 굴들을 뚫은 건지 바다와 파도의 끈기와 힘이 새삼 놀랍다. 바닷가 전체를 다 여유있게 돌아보려면 반나절은 걸릴 것 같다. 산행하기 위해 갖춰입은 등산화며 등산복이 무색해지는 산이다.

하산하기 위해 바닷가에서 나와 다시 산을 오른다. 발밑에서 찌르르 찌르르 곤충이 내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주먹만한 빨강 게들이 산을 돌아다니고 있다. 게가 소리를 내는 것도 희한하고 산 속에서 게를 만나니 신기하고 반가워 쭈그리고 앉아 게들의 산행을 구경했다. 여러모로 기억속에 추억으로 남는 산이 될 것 같다.   

바닷가의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도 한그루 낙락장송도 눈길이 머무는 자연의 작품들이다.
 바닷가의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도 한그루 낙락장송도 눈길이 머무는 자연의 작품들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 5월 30일에 다녀 왔습니다.
- 네비게이션이 있는 분은 '황금산 횟집'으로 입력하면 산 초입까지 안내합니다.



태그:#황금산, #서산 , #가로림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