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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세월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곁을 떠난지가 벌써 1년이 되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 날벼락 같은 비보를 접한지가 바로 어제의 일처럼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너무도 생생한데 벌써 한 해가 바뀌었다니!... 지금 이순간에도 믿기질 않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황망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우리 역사의 비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역사는 왜 이토록 불행하고 가혹하고 박복한 것인가? 역사에 대한 가정처럼 부질없는 것도 없다지만 한반도 역사의 혹독함과 그 처연함을 생각할때 마다, '만일' 이란 가정법에 대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만일 김구 선생이, 여운형 선생이, 조봉암 선생이, 장준하 선생이,… 조금만 더 우리곁에 오래 살아 계셨더라면… 아니 우리가 그들의 수족이 되어 그들을 조금 더 보호하고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었더라면…  우리 역사가… 이토록…,

부질없다.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을 통해 또 다시 좌절된 우리 역사의 파행과 수난, 끊이지 않는 시련을 본다.  세계 어느시대,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에 우리처럼 전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난 전례가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참으로 인간이 가진 언어로 형언하기 힘든 불행한 사건이 이 조그만 반도땅, 분단의 남녘에서 일어났다. 그의 죽음은 해방후 또 다시 좌절된 민주세력의 비애이자, 또한 지금까지 왜곡되고 굴절된 우리역사에 대한 통절한 외마다 비명이리라! 

 

이는 곧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그토록 강조했던 고인의 마지막 처절한 외침이 되어, 잠자는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불벼락이 되고 있다. 엄중한 우리역사에 대한 우리의 몰상식과 불감증을 그는 마지막 소중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일깨우려 했던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울분과 좌절과 통한으로 점철된 형극의 역사를 해방후 반세기가 훨씬 지난후에도 여전히 만들고 있는가!  통탄할 일이다.

 

역사에는 공짜가 없다 했다. 단지 우리가 겪은 그 수많은 뼈아픈 경험과 불행했던 죽음들을 통해 소중한 역사의 교훈을 깨닫고 결연한 의지와 흔들림 없는 각오와 실천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어떻게 혼연히 맞설 것인지는 전적으로 살아 남은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 애통한 1주년 기일을 맞은 오늘, 과연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때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감히 누가 자부할 수 있겠는가!  정치는 여전히 지역감정을 등에 업고 동서로 반목하고 제 집단, 제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주의 폐해는 날로 더욱 심화되고 있고, 기득권자들은 분단을 기정사실로 고착시키며 진실을 호도하고 그 호전성만을 더욱 드러내고 있는 형국이니, 참으로 고인의 넋을 기릴 면목이 없다.

 

그러나 인간사의 모든 현상과 사건에는 반드시 인과관계의 <근원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제 좀 차분한 마음으로 우리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란 말처럼 과거사는 단순히 지난 과거의 사건으로 단절되지 않고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반드시 현재의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그러므로 치열한 우리 삶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제 객관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다시 한번 성찰해 보자. 

 

모든 역사는 현대사로 통한다는 말처럼, 일본 제국주의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실로 질긴 것이며 지금까지도 우리 삶의 일상에 깊게 각인되어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의식마저 지배하고 있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부대끼어 빛바랜, 이제 우리에게 이미 진부한 언어가 되어버린 '친일청산' 이란 어휘가 주는 그 남루함이다. 이는 물론 우리의 불철저한 <역사인식> 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제하 지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제나마 그 역사적 실체적 진실을 기록하여 후대에 교훈으로나마 남기자는 소박한 바램인 <친일인명사전>의 발간마저 숱한 반대와 우여곡절을 겪는 것을 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전도된 가치와 오욕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의 역류는 분명 지금 이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를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잊혀져야 할 지난 과거사가 결코 아니다. 노무현의 비극도 근본 원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는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번 준엄한 역사의 교훈을 깨닫는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친일파 청산의 실패를 우리 현대사, 역사의 첫 단추를 잘못 꿰였다고 은유하는데, 이는 결코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이는 단추 하나정도의 실수가 아니라, 헌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는데 필요한 기둥이나 대들보를 썩은 목재로 선택한 것과 진배없다. 그 결과는 무었인가? 와해는 필연이다.

 

생각해 보자! 35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배하에서 겨레와 민족을 배반하고 자신의 출세와 입신영달을 도모하던 민족반역 모리배들을 단죄는 커녕, 해방된 새나라에서 조국의 기틀을 세우는데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다시 기용했다는게 도무지 말이 되는가! 이승만의 과오는 후세 사가들에 의해 두고두고 비판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그를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고 추앙하기 바쁜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리의 거대 신문사들도 역사의 후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한 친일파들의 극렬저항에 <우리 역사의 정통성> 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친일청산이란 역사의 정도를 걷지 못하고 일탈한 우리역사의 보복은 가혹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싸워왔던 우리의 애국지사들이 역으로 친일민족반역자들에 의해 거꾸로 청산되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우리 역사의 반역이자 혹독한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단 한명의 친일분자들도 처벌하지 못한 '반민특위' 는 도리어 이들로 부터 역공을 당하고 와해되고 말았으니, 우리 현대사의 출발은 바로 <몰상식>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는 두고 두고 우리 현대사의 '아킬레스건' 이 되었다.  노무현의 죽음도 길게는 이런 불의한 역사와 전도된 가치와 오욕의 역사의 부조리와 맞닿아 있다.

 

이는 지난 과거의 잘못을 가려서 처벌하자는 단순한 징벌의 의미를 넘어서, 엄정한 역사를 염원하고 대면하려는 우리 전체 사회의 열망과 정의감의 문제이며, 또한 그것은 바로 지금도 우리 내면의 의식과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90년 1월 21일의3당 합당의 야합을 상기해 보자! 이 한편의 코메디를 방불케 하는 인위적 정계개편도 이러한 가치관 혼란의 와중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위적인 3당 합당이 우리에게 던진,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단순히 정치공학의 문제를 뛰어넘어 그것이 일반 국민의 정서와 우리의 정신세계에 끼친 해악은 실로 심각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정신세계의 공황' 을 의미했다. 지금까지의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구도>, <도덕과 부도덕>, <정의와 불의의 대립각>을 하룻밤 사이에 허물어 버린 정신적 공황! 우리의 도덕과 윤리와 양심과 가치관이 무너진 것이다.

 

생각해 보자! 어제까지 군사독재 종식을 외치며 온몸을 바쳐 투쟁하던 민주화 세력의 한축이 어느날 갑자기 그들과 손을 맞잡고 같은 '한' 당을 만들어 한솥밥을 먹는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났는가? 이는 우선 민주화 투쟁이란 대의명분보다는 지역감정 선동이란 정략적 지역적 역학구조가 비록 자신들의 집권구도에 훨씬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손 치더라도, 정말로 양식있는 지도자라면 해서는 결코 안되는, 지역감정을 볼모로한 전체국민에 대한 기만이자 배신행위였다. 이로 인해 친일청산이란 역사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우리의 부채의식에 또 하나의 '짐' 을 보탠 것이다.

 

이 3당 야합으로 인해 우리는 과거 30 여년 동안 군사독재정권이 저질렀던 온갖 악행과 고문과 각종 인권침해의 범죄에 대해서도 청산할 기회를 영영 잃고 만다. 또 한번의 뼈아픈 실책이자 우리역사의 파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함의는 무엇인가? 권력풍향에 민감한 숱한 변절자와 기회주의자들의 양산과 득세이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또한 이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대의명분이, 이제는 모든것이 지역감정으로 매몰되고 치환되어 우리의 눈과 귀를 마비시킨 것이다. 자신의 전생애를 걸고 조국 민주화투쟁에 앞장서 왔으며 민주세력의 한축을 담당했던 김영삼씨의 돌출행동도 역사에 대한 경외와 그에 대한 책임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것도 본질적으로는 친일파 숙청의 실패와 연관된 우리의 총체적 <역사의식 부재>의 소산물이었다.

 

특히 이러한 기성세대의 무분별한 정치적 야합이 젊은 세대에게 미친 파급효과는 지대했다. 전도된 가치와 목적의 상실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에 그들은 쉽게 감염되었고 절망했다. 목적추구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성세대의 몰염치에 그들은 마침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군사독재시절 우리사회 민주화 운동의 중추세력으로서 그 핵심역할을 담당하던 학생운동이 그 후 하향곡선으로 추락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오늘날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의 세태를 영악한 개인주의자들이라고 매도하기전에 먼저 기성세대의 과거행태를 반성할 일이다.

 

실패한 친일청산의 역사는 이렇게 여전히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사회 전반에 걸쳐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늘날도 주요신문의 사회면 조그만 '말단 기사' 를 장식하곤하는 독립유공자들의 부음소식은 우리의 역사 불감증을 여실히 반증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사회로 부터 받는 대접과 그들의 현 위상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반면 북한에서는 독립 운동가의 자식들 마저도 영웅의 후손으로 대접하는 것을 보면, 해방된 민족의 주권국가란 것이 이토록 부끄러울 수 가 없다.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병폐인 지역감정의 폐해에 대해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지역감정"이란 단어 자체가 내포하듯 여기에는 건전한 이성과 합리적 사유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저 편견과 맹목이 전체를 지배할 뿐이다. 우리의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 사고와 판단은 그 맹목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도구와 방편으로 전락할 뿐이었다. 가장 고도의 합목적성과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정치행위가 호불호(지역감정)에 의해 좌우됨은 우리의 비극이자 희극이다.

 

이 망국병에는 지식인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조금 세련되었을 뿐 기본적인 정서는 동일하다. 조선일보의 편집국장의 직위에 또한 검찰총장이라는 막강한 권세의 자리에, 몇 십 년 동안 특정지역의 인사가 배제되었음은 동시대의 비애다. 검찰로서 과거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군사독재정권의 버팀목이 되었던 자에게 유권자들이 최고의 득표율로 국회의원 당선이란 면죄부를 안기는 판국이니, 참으로 그 폐해의 심각성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조차 없다. 우리의 이성과 판단을 마비시키는 이 망국병을 고치지 않는한 우리사회에 희망은 없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이라고 똑 같이 예우하고 그의 집에까지 찾아가서 담소하는것을 보고 그의 몰역사성에 절망했다. 오로지 유권자들의 지역정서에 기댄 투표가 그에겐 소중할 뿐, 준엄한 역사의 심판은 안중에도 없는 그 천박성에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심히 실망했다. 소위 다른 직업도 아닌, 일국의 대통령이란 직책을 추구하는 자라면, 엄정한 우리 역사와 대면하려는 범부의 역사의식과 안목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참으로 경박한 처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결국 당장 눈앞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친일파들의 행각과 그 무엇이 다른가? 돈많이 벌게 해주고 경제만 살리겠다면 만사형통인가! 이런 철학을 가진 지도자라면 그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이 파행과 굴욕의 역사를 바로 잡지 못하는한 우리는 제 2의 노무현을 우리의 민주제단에 또다시 바칠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불행한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이는 우리 현대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질책이다. 차제에 이 근본적인 역사의 당위와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역사는 한 발자국도 진일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사회 민주주의의 척도를 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온갖 종류의 감언이설이 국민을 현혹한다. 또한 이맘때면 으레 그래왔듯이 수구세력의 단골메뉴인 북풍도 거세다. 조국의 분단과 냉전을 자신들의 선거판 호재로만 삼으려는 수구세력의 과거작태 또한 여전하다. 아무리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 라지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수는 없다. 잠시 속일수는 있을지언정 영원의 생명력을 갖는 진실을 호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분단을 먹잇감 삼아 주야장천으로 제 잇속 챙기는자 과연 누군가?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행동하는 양심을 주문하던 두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호소가 더욱 절실한 요즘이다.

 

<분단시대>에 소위 진정한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최신인기 가요순위 만큼이나 경박한 여론조사라는 숫자 놀음에 일희일비하며 시세에 영합하기 보다는, 변함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그 저류에 내재하는 민심이란 도도한 역사의 정언명령을 간파할 수 있는 예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보' 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개의치 않고 한걸음 한걸음 우직하게 <역사의 정도>를 걷는자가 최후 승리하는 모습을 진정 다시 한번 우리 역사에서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우리의 민주개혁세력이 지는 싸움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꼼수 부리지 말고 정도를 걸으면서 지자, 정정 당당히 아름답게 패배하자. 그리하여 그 상처로 종국에는 찬란한 진주를 품자...


태그:#노무현 대통령, #친일파 청산, #역사의식 부재, #지역감정, #3당 합당의 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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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없는자들 편에 같이 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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