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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 회원은 아니었어도, 우리 아빠의 노무현 사랑은 어지간하다. '노무현'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구입해서 서가를 채우고(꾸준히 업데이트 된다), 노무현재단에 매월 상당액을 후원하는 통에 집에는 봉하쌀이니 감사패니 하는 것이 날아온다.

직장에서도 아빠의 노무현 사랑은 널리 알려져 얼마 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이 담긴 판화를 선물받아 오기도 했다. 무덤 앞에 까는 박석을 두 개를 사서 묘역 준공식을 하는 23일에는 꼭 봉하마을에 가봐야 한단다. 나도 있던 약속 취소하고 동행하기로 했고.

대전에 온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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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지척인 대전에서 노 대통령 추모 콘서트가 열린다는 데 우리 아빠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서거 1주기를 맞아 서울, 광주, 대전 등 전국을 돌며 열리는 추모공연 '파워투더피플(Power to the People, 시민에게 권력을)' 대전 공연이 열린 지난 16일. 5월 초, 노무현재단 에서 안내장이 왔을 때 아빠는 당장 달력에 표시부터 했더랬다.

주책이라며 눈은 흘겨도 결국 투표는 아빠랑 똑같이 하는 엄마와 블로그에 '부녀 봉하마을 방문기'를 올리고 나서 여러 지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내가 동행했다. 차로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두 시간 전부터 호들갑을 떠는 아빠 등쌀에 일찍 도착해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

작년에 서울에 있던 나는 성공회대에서 열린 <다시, 바람이 분다> 공연에 갔었다. 그때만큼 격앙되어 있진 않았지만 이번 공연도 그때와 비슷했다. 취지나 분위기, 진행 방식과 출연진 등. 연출자도 같은 분이랬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한 탁현민 연출자다.

노찾사, 안치환, YB 등 공연... 세대를 어우르는 노란 물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무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무대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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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7시, '징크스 밴드'가 문을 연 공연은(나중에 알았지만 이 밴드는 이번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의 안희정 최고위원의 두 아들을 비롯한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되었다) 피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안치환과 자유, 와이비(YB), 노무현재단의 프로젝트 밴드인 '사람사는 세상' 등으로 이어졌다.

노찾사가 부른 '그 날이 오면' '친구여' '광야에서'와 같은 노래들은, 아빠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불러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빠는 아마 삼십 년 전 대학을 다니면서 그 노래들을 배웠을 것이고 나는 대학에 갓 들어간 새내기 시절 천방지축 광화문을 쏘다니며 그 노래들을 배웠다. 아직도 우리는 삽십 년 전에 부르짖던 그 날을 외치며 광야에 서 있었다.

영화배우 명계남, 문성근씨가 나와 노 대통령을 그리워했고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반드시 KBS로 돌아가서 남은 임기 15개월을 채우겠노라 다짐했다. 마침 공연 장소는 대전 MBC 건물 근처였는데 우리는 모두 MBC를 향해 응원의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 민주주의 즐겨보세요

행사장에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관객들이 많았다. 노란 손수건을 슈퍼맨처럼 두른 사내아이에게 우리 엄마는 "너, 노무현 아저씨 좋아하니?"라고 장난말도 건넸다. '애들이 뭘 알겠냐'마는, 놀랍게도 우리 앞에 앉아 있던 그 아이들은 '뭘 아는' 것 같았다.(조기교육은 영어공부에만 쓰는 말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서트란 게 있나? 어른들을 위한 공연에 데리고 가봤자 아이들은 몸을 배배 꼴 뿐이고, 아이들을 위한 공연에서 부모는 그저 들러리다.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즐길 만한 곳에 갈 때는 애들을 떼어놓아야 하고(응? 어디길래?) 아이들 위주로 생각하면 부모는 애들 챙기느라 구경도 제대로 못 하고.

사실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하기 어려운 건 나이가 들면서 더하다. 도대체 엄마아빠랑 같이 놀려면 뭘 해야 되나 막막하다. 친구들과 어울리듯 클럽에 갈 수도 없고, 카페 탐방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어라 마셔라 술대작을 할 수도 없지 않나. 작년 여름에는 가족여행을 가려다가 서로 마땅찮아 정하지 못하고 관둔 적도 있다. 대학생 딸, 고등학생 아들과 부모란 모이기도 쉽지 않고 모여봤자 서로 시큰둥한 조합이기 일쑤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아니, 우리의 민주주의에 감사한다. 작년에 아빠와 봉하마을에 갔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아빠랑 나들이를 한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번 추모공연도 마찬가지다. 엄마아빠랑 같이 콘서트를 본 게 도대체 언제지? 난 나대로 친구들과 록페스티발을 즐기고 부모님은 나름대로 조용필 콘서트장을 찾는다. 엄마아빠와 대학생 딸이 같이 즐기고 느끼고 또 깨달을 수 있는 자리가 흔치 않다.

공연의 피날레는 현장에서 즉석 조직된 시민 합창단이 부르는 'Power to the people'로 마무리됐다. '시민에게 권력을'.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라는 노통의 목소리가 새삼 그리운 순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 콘서트 파워투더피플은 22일 창원, 23일 부산에서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 민주주의. 이거야말로 우리나라가 모든 방면에서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광자원으로서도 훌륭하다. 진심으로 '민주 투어' 관광상품을 개발해서 사회적 기업을 해보고 싶은데, 출자하실 분이 있으면 연락 바란다. 꽃피는 날이 올 즈음에는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거다. 분명 우리 엄마아빠는 이 기사를 검색해 보고 어이없어 할 거다.



태그:#파워투더피플, #노무현, #시민에게권력을,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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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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