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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집 할미꽃을 들여다봅니다. 할미꽃 눈높이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할미꽃을 꽃그릇에서 가꾸는 골목집 사람들은 할미꽃을 비롯한 숱한 꽃과 나무와 푸성귀를 가꿉니다. 틀림없이 헐리고 비어 있는 터에 수많은 꽃그릇을 올망졸망 올려놓고는 꽃잔치를 이룹니다.

 

어느 분은 빈 집자리 돌을 알뜰히 고른 다음 새 흙을 짊어지고 들이부으며 조그맣게 텃밭을 일굽니다. 어느 분은 이렇게 크고 작은 꽃그릇을 하나둘 장만하면서 꽃잔치를 이룹니다.

 

바쁜 사람들이 더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심지에서는 봄을 맛볼 수 없습니다. 봄날이라 하여도 봄날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날씨입니다. 날씨가 미쳤다느니 지구온난화라느니 하는 말이 많으나, 날씨가 미치든 지구온난화이든 이렇게 봄날이 봄날이 아니되도록 내몬 사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연과 생태를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으니, 온누리 어느 곳에나 쓰레기가 넘치고 자동차가 넘실거리며 아파트가 숲을 이룹니다.

 

풀과 나무가 느긋하게 자랄 땅을 내몰면서 아스팔트를 깔거나 높은 시멘트집을 세우는 우리들입니다. 들판이 들판이도록 놓아 주거나 갯벌과 바다가 갯벌과 바다 그대로 있도록 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뭇짐승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지만 오로지 사람만 살아남아 더 높은 대학교를 바라고 더 많은 돈을 받을 일자리를 꿈꾸며 더 아늑하다는 넓은 아파트를 노리고들 있습니다.

 

그래도 이 바쁜 틈바구니에서 덜 바쁘거나 안 바쁘거나 조금만 바쁘거나 하면서 살아가는 이웃이 있어 조용히 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니, 돈만 버는 데에 바쁘지 않고 꽃그릇 손질하고 텃밭 일구는 데에 바쁜 이웃이 있기에 호젓하게 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골목집 꽃그릇 몇 가지에서 풍기는 꽃내음이란 그리 멀리 가지 않습니다. 자동차에다가 자전거까지 내려놓고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며 안골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맡을 수 없는 골목꽃 봄내음입니다.

 

스물한 달째를 보내고 있는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합니다. 아이는 와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달립니다. 조용한 골목길을 쩌렁쩌렁 울리는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가 달리며 소리 지르고 노래를 부르는 데가 도심지가 아니고 들판이나 숲길이나 갯가였다면 훨씬 좋았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길에서는 산길대로 좋고 골목길에서는 골목길대로 좋습니다. 혼자 신나게 앞서 달리는 아이를 부릅니다.

 

"벼리야, 그만 가. 여기 위에 좀 봐. 개나리 노랗게 피었지?" "벼리야, 여기에는 매화가 피었네. 넌 매화하고 벚꽃이 어떻게 다른 줄 알아?" "와, 벼리야, 다음주쯤 다시 오면 이곳에서는 매발톱이 꽃을 피우겠구나." "벼리야, 머잖아 이 집에서 수수꽃다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겠어. 넌 지난해에도 수수꽃다리 꽃망울을 못 보았지? 올해에는 꼭 보자." "벼리야, 이 꽃이 바로 할미꽃이란다. 할미꽃은 산에서 피는 꽃인데 여기 골목길에도 피었구나. 꽃이 참 이쁘지?"

 

봄골목 꽃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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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태그:#골목길, #인천골목길, #골목꽃, #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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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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