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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구워내는 불가마를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벽돌 표면에 바르는
진흙은 1500도 고열에도 견딜수 있는 진흙이라고
합니다.
▲ 도예가 홍우 황인호 선생님 도자기를 구워내는 불가마를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벽돌 표면에 바르는 진흙은 1500도 고열에도 견딜수 있는 진흙이라고 합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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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굽는 선생님이 계신 데 한 번 가 볼래요?"

평소 도예에 관심 많던 저는 두말없이 지인의 부름에 따라 나섰습니다. 울산에 옹기마을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유명한 도예가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방송 화면이나 영화 영상에서만 보던 도자기 굽는 과정에 대해서도 꼭 한번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도예가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오후 2시경 우리는 시내에서 모였습니다. 어느 분이 차량이 있어 그것을 타고 공업탑을 지나 덕하쪽으로 가다가 옹기마을을 지납니다. 부산쪽으로 가다가 동상마을이 나오고 다시 덕신쪽으로 가면 남창중학교가 있습니다. 남창중학교 건너 마을 산 쪽으로 가다보면 대밭이 나오는데 거기에 홍우도예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가자 하던 일손을 멈추고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희끗희끗한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수염도 덥수룩 했습니다. 무슨 작업을 하는지 손엔 황토흙이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모두 들어가 차를 마시고 있을 사이 저는 도예가 선생님과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두어달 후 도자기 구워 내려고 불가마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대포알처럼 생긴 흙덩이 말린 것이 많았고 그 흙덩이를 진흙과 함께 반달 원형의 불가마 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보니 도예가 선생님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 가마 공법은 옛부터 도자기 가마에 쓰여 오던 공법입니다.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대포알 모양으로 지붕을 만드는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망생이 가마 또는 망댕이 가마라고 부르지요."

도자기 굽는 불가마 터가 다 완성 되려면 몇 개월은
족히 걸린다고 합니다.
▲ 만들고 있는 불가마 터 도자기 굽는 불가마 터가 다 완성 되려면 몇 개월은 족히 걸린다고 합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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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선생님은 그동안 가스 가마와 불가마로를 번갈아 사용하며 도자기의 특성을 연구한 결과, 가스 가마는 간편하기는 하지만 불가마에서 나오는 도자기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아름다운 도자기를 구워내기 위해 불가마를 만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불가마 만드는 벽돌은 다른 곳에서 사용하던 것을 뜯어다 재활용하였고 벽돌과 벽돌 사이사이를 붙이는 진흙은 고열에도 견딜수 있는 특수 진흙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 언제부터 도자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지요?
"중학교 때 그림을 잘 그렸어요. 그냥 그림만 그리니까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공예학교 도자기학과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도자기를 공부하는데 다른 미술 분야보다 더 흥미롭고 재미가 있더군요. 도자기는 불의 흐름에 따라 달리 나오는 묘미가 있어요. 배우면 배울수록 좋아서 도자기에 푹 빠져 살았지요."

별의별 모양의 도자기가 다 있습니다.
▲ 각종 모양의 도자기 별의별 모양의 도자기가 다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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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중 덩치가 큰 도자기 중 하나였습니다.
▲ 도자기로 만든 명상하는 사람 도자기 중 덩치가 큰 도자기 중 하나였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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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군에 징집되어 3년간 복무 했다고 합니다. 군 제대 후 다시 본격 도자기 공부와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도자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도자기 공법에 대해 배웠고 머리로만 습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습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좀 손재주가 있나봐요. 불가마로 도자기 구우면 여러가지 번거로운 게 많아요. 그래서 가스 가마로 도자기 만드는 도예가 분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가스 가마의 단점은 가스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불 때다 말고 갑자기 가스가 떨어지면 불이 꺼지고 그러면 도자기를 망치기 일쑤지요. 그래서 도예가들은 열기가 식기 전에 다시 가스 가마에 불을 넣기 위해 가스 교환 후 급하게 가스를 틀어요. 나중에야 불이 안 붙은 걸 알고는 불을 붙혀요. 그동안 새어나온 가스로 인해 꽝 하고 터지는 것이지요."

작품 만드는 방 옆에 많은 도자기류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벽화 도자기와 갖가지 도자기류 작품 만드는 방 옆에 많은 도자기류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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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선생님은 가스 가마를 보여 주었습니다. 가스 가마는 큰 반달 모양의 원통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속이 완전 밀폐되어 있어 불이 꺼진 채로 가스를 틀어 두었다가 나중에 불을 붙이면 가스 가마 자체가 폭발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도예가 선생님은 가스 가마 제조와 수리를 잘 했습니다. 타고난 손재주 덕에 그렇게 고장난 가스 가마 고치러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국을 돌며 그동안 고쳐 주거나 새로 만들어준 가스 가마만도 150기 정도 된다고 합니다. 1980년대 당시 직장인 월급이 20여만원 될 때 가스 가마 하나 터지면 140만원 정도 들여야 새로 만들었다고 하니 가스 가마 하나 터지면 직장인 1년 월급이 날아가 버리는 것과 같은 손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가스 가마를 수리하고 제조하는 기술이 있으니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판이었다고 합니다.

-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흙으로 만든 종류가 많잖아요. 옹기가 있고 토기도 있고 사기, 도기, 자기 이렇게 여러 분류가 있잖아요. 그게 다 같은 가마에서 구워지는 것인가요?
"도기를 옹기와 토기라 하는데요. 그것은 1100℃ 이하로 구워내면 됩니다. 하지만 도자기는 1300℃ 이상 열 속에 구워야 제대로 된 도자기가 나오지요. 그렇게 구워내는 온도 차이도 있지만 만드는 진흙 종류도 달라요. 옹기를 자기 굽는데 구우면 그냥 뭉개져 버려요."

홍우 선생님은 밖에서 열심히 작업 하시고 홍익 선생님은
안에서 열심히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 도예가 홍익 박향자 선생님 홍우 선생님은 밖에서 열심히 작업 하시고 홍익 선생님은 안에서 열심히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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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선생님께 어떤 작품을 가장 아끼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분은 하나같이 정성 들이지 않은 작품이 없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다 아끼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언제부터 자신을 도예가로 인정했는지 물어보니 젊어 한성 산업대학교에 조교로 있던 시절 대학 교수가 실습면에선 자신보다 더 한수 위라고 인정 하더랍니다. 도예가 선생님은 온통 논리 뿐인 대학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 다시 도자기 굽는 현장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연구를 시작 했다고 했습니다.

- 지금 이 곳엔 언제부터 정착 하셨나요?
"이곳에 온 지 벌써 24년이 넘었지요. 처음에 이곳은 도자기 기와 굽는 곳이 네 곳이나 있었어요. 그 중에 금색 도자기 기와 굽는 곳에서 저를 불렀지요. 도자기는 불 때는 기술이 으뜸으로 쳐줍니다. 제가 불 때는 기술이 있었거든요. 불 좀 때 달라고 해서 들어와 살게 된 게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도자기 기와 굽는 공장이 하나 둘 사라지더군요. 기와 한옥집이 사라지고 서양식 건물이 많아 지면서 사양길에 접어든 거죠."

그래서인지 그 동네엔 아직도 기와집이 많았습니다. 남창 동상마을에서 기와 굽는 일을 맡아 하면서 일하러 온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그 여성분은 만든 도자기에 무늬를 새겨 넣는 일을 했었는데 두 분이 자주 만나다 보니 정이 들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와집이 하나 둘 문을 닫게 되자 두 분은 자신들의 도자기 작업장을 만들어 보자고 결심하고 지난 1986년부터 도자기를 직접 만들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돈이 없어 공터에다 허름한 비닐로 도자기 만드는 곳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눈 무게를 못이겨 비닐 집이 무너져 내린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도예가 선생님은 자신만의 독특한 문양과 모양을 창작해 내어 작품전 위주로 활동을 하였고 점차 이름이 알려지면서 생활도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 선생님은 어떤 작품 세계를 추구하시는지요?
"저는 전통 도자기 공법(백자, 청자, 분청) 보다는 현대에 맞게 변화를 추구합니다. 불의 흐름에 따라 무늬 만드는 기술에 묘미가 있어요. 그래서 가스 가마 보다는 불가마에 구워낸 도자기를 더 좋아 하지요."

-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한 번 선보이고 싶으신지요?
"저는 딱히 어떤 작품을 만들겠다는 계획 같은건 세워두지 않아요. 그저 내 하고 싶은 대로 하지요. 그때 그때 뇌리 속에서 뭔가가 떠오르면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토대로 실제로 만들어 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나 하나 만들어 온 것들 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만든 도자기 작품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 두었습니다. 모양도 갖가지였고 분위기도 색상도 다양했습니다. 돌모양 도자기도 있었고 반구대 암각화 내용을 본 뜬 도자기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 분의 도자기 그림을 엿보니 많은 그림이 그려저 있었습니다. 그림엔 높이나 넓이, 두께,모양새 가 마치 설계도처럼 그려져 있었습니다.

"한 가지 이런 것은 하나 꼭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제가 일본에 도자기 여행 가서 본 건데요. 도자기로 만든 시계가 있더군요. 딱딱해 보였지만 아주 특별한 의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더라구요. 그건 껍데기만 도자기였고 속 부품은 쇠붙이 였어요. 저는 그 부품 속까지 모두 도자기로 만들어 돌아가는 시계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잠시 뜸을 들인후 도예가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창조성 있는 도예가 다운 발상이었습니다. 어떤 작품으로 탄생될지 모르지만 꼭 그 도자기 시계를 완성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도예가 선생님은 '홍우'라는 호를 가지고 있었고 도예가 마님 되시는 분은 '홍익'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호라고 합니다. 그 도인은 두분의 호를 지어주면서 홍익인간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합니다.

도예가 홍우 선생님은 밖에서 불가마 터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고 도예가 홍익 선생님은 안에서 도자기를 열심히 빚고 있었습니다. 두 부부가 함께 도자기를 구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한쌍의 잉꼬부부처럼 참 보기 좋았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 도자기의 맥을 지켜 가려는 두분께 힘 찬 박수를 보냅니다.

밖에서 작업 하시다 잠시 쉬러 오셔 두분이 함께
▲ 도예가 홍우와 홍익 선생님 밖에서 작업 하시다 잠시 쉬러 오셔 두분이 함께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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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자기, #도예가, #홍우 황인호, #홍익 박향자, #불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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