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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검찰의 기소로 나라 전체가 시끄럽다. 5만 달러를 직접 전달했느냐, 혹은 돈든 봉투를 의자에 놓고 나왔으니 온갖 말들이 난무한다. 혹자는 '돈을 받은 의자를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것을 보면서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듯 하여 추락하는 우리 검찰의 위상을 새삼 실감케 한다. 

 

어쩌다 우리 검찰이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참담한 심정이다. 그러나 모든 현상과 사건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고 근원 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현재의 우리 검찰을 위해서, 아니 우리나라 전체를 위해서 냉철한 이성과 엄정한 역사의 눈으로 현사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나는 한명숙 전 총리사건을 보면서 자칭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처하는 법조인들마저 '지역감정'의 굴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소아병적인 저열한 행태를 본다. '전주고' 선후배를 다 불라고 했다지 않는가. 그게 어디 검사로서 할 소리인가!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굳이 법의 정의를 논하지 말자. 시정잡배들의 의식수준도 이처럼 추접하지 않다. 여기에는 냉철한 이성이나 합리적 사고와 명쾌한 논리를 금과옥조로 받들어야 할 법조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식과 양심도 없다. 그저 맹목이 지배한다. 왜 지역감정을 '망국적' 이라고까지 개탄하는지 모든 게 자명해진다. 그 한마디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그들의 의식 수준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지역차별을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도구로 삼는 이들의 기회주의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둘째, 우리의 불철저한 역사인식과 우리사회에 만연한 기회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는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과오며 자업자득이다. 그들을 감옥에 가두자는 것도 아니요, 현재 그 후손들의 재산을 몰수하자는 것도 아니요, 그저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고 후대에 교훈으로 남기자는 소박한 바람인 '친일인명사전'의 발간마저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는 것을 보고 나는 우리사회에 절망했다.

 

그리고 결국 이는 우리의 '업' 이 되었다. 이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 이 불의의 시대에서는 수많은 변절자와 기회주의자를 필연코 양산하게끔 되어있다.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우리의 검찰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혹독하고 살벌한 군사정권을 거치는 동안 참으로 수많은 학생들과 민주화 인사들을 잃었다. 그들의 희생과 숭고한 피의 대가로 이나마 우리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부당한 정치권력에 협조한 검사가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래, 감옥행은 고사하고,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과문한 탓인가. 

 

우리에게 과연 정의는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사회에 일말의 인간의 양심은 아직 남아있는 것인가! 우리는 불철저한 친일청산의 원죄로 인해, 군사정권하에서 행해졌던 숱한 범죄에 대해서도 여전히 불편부당함의 면죄부를 우리자신에게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에 안기는 너무도 허술한 사회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과연 어떤 사회를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길 원하는가! 역사에서는 공짜가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친일과 과거 군사독재 청산이란 과제는 두고두고 굴레가 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종종 검찰의 권력은 예리한 칼날에 비유되곤 한다. 검찰에게 국가의 공권력을 부여하는 이유는 진부하나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것은 그 막강한 권세 만큼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엄중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민주시민들을 우리군대를 동원하여 총칼로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반란자들에게 '성공한 쿠데타'는처벌할 수 없다는, 참으로 어이없는 논리를 들먹이며 면죄부를 주라고 준 권력이 아니란 말이다.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기업들을 협박하여 뜯어낸 그들이 수중에 단돈 몇십만 원 밖에 없다며 버티는 몰염치에 면죄부를 주라고 준 공권력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고 정권이 바뀌니, 2만 달러 하고 3만 달러를 따로 의자에 놓고 나왔느니 하며 정의의 화신인양 호들갑을 떠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이들을 기회주의자란 말 말고 어찌 달리 표현할 방도가 있겠는가! '떡검'이 그냥 우연히 된 게 아니다. 

 

이 기회주의자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처세술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삼성으로부터 받은 뇌물을 진실로 고백한 자 있었는가! 그 흔한 성명서 한 장 발표하고 책임을 통감한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모두 변명으로만 일관하지 않았던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리어 삼성 장학생 문제제기하는 국회의원마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았던가!

 

정녕 가장 먼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할 자들을 버젓이 두고, 누가 누구를 심판한단 말인가!  역사에 대한 가정은 부질없다지만 우리가 검찰개혁을 철저히 단행했더라면 노 대통령도 그처럼 허망히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소시민의 교양과 도덕률을 기대하기는 정녕 어려운 것인가! 자신보다 사법고시 기수가 낮은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하면 가차 없이 옷을 잘도 벗든데, 어찌하여 불의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는 그토록 인색한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해서는 나라 말아먹는 지역감정조차도 서슴없이 이용하는 이 기회주의자들에게 엄혹한 역사의 심판을 운운하기에는 아직 사치란 생각마저 든다. 정녕 지금 우리는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국가 공권력의 '영' 이 서지 않은 시대를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불행이다.


#지역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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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없는자들 편에 같이 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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