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실 난 여태 로또를 단 한 장도 사 본 적이 없다. 당연히 매주 토요일 저녁 로또 추첨 방송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이 꿈자리가 좋다며 로또를 사오면 농담으로 "몇 억이 생긴다면 일단 세계 여행을 가고, 등록금을 대고… 아니지,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나?" 같은 공상을 할 때도 있지만 진지하게 당첨을 소망한 적은 없다.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적다는 로또 당첨에 돈을 들이는 것도 이해가 안 됐지만, 실제 로또 당첨자들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관심이 없는 정도지만, 한때는 로또라면 꼴을 보기도 싫을 정도로 '치를 떨던' 때가 있었다. 과장을 좀 하자면 길을 가다 로또 현수막만 봐도 머리가 아파질 정도였다.

스무 살, 점심값도 안 되는 시급의 첫 알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서 토요일 오후 8시는 공포의 시간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서 토요일 오후 8시는 공포의 시간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새내기로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당시였다. 나는 스스로 번 돈으로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꿈으로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지만 경력 전무에 세상물정 모르는 스무 살짜리 여자애를 써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 해보는 돈벌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좀 빡세 보이는 일에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네 편의점 앞을 지나가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광고문을 봤다. 평소 편의점에 들르면 카운터 보는 직원들은 손님이 고른 물건을 바코드로 찍고 계산하는 간단한 일만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게다가 번화가도 아니고 우리 동네 같은 조용한 시골 주택가에 있는 편의점에 손님이 얼마나 오려나 싶었다.

나는 점장에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점장은 이력서를 받더니 의외로 흔쾌히 채용했다. 시급은 얼마였냐고? 놀라지 마시라. 단돈 2300원이었다. 법정 최저시급의 절반 수준이었다. 최저시급 지키는 업소가 손에 꼽힐 정도인 편의점 아르바이트 치고도 최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자리가 다급했던지라 일단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망설임 없이 편의점 알바생이 되었다.

학교 수업 때문에 주중에는 근무가 어려워 주말에만 근무해야 했다. 시재를 맞추는 일(돈 통의 금액과 실제 매출을 맞춤)이 다소 까다롭긴 했지만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다만 근무시간에 점심시간이 끼어 있었는데 점장은 식사에 대해서 일체 언급이 없었다. 다른 편의점에서는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그냥 먹으라고 한다던데 우리 가게는 그냥 버리는 눈치였다. 너무 배가 고프면 내 돈을 주고 편의점 음식을 사 먹기도 했다.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으면 한 시간 시급이 홀랑 없어지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평소 손님 입장에서 본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신경 쓸 게 많았다. 나는 그 때 편의점에서 교통카드,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고 택배도 받을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일거리가 많았던 것은 바로 로또 판매였다. 그놈의 로또 기계는 왜 그리도 오류가 많이 나던지. 한 시간에 한 번씩 기계를 점검해야 될 정도였다. 또 로또는 뭉텅이로 구입하는 손님들이 있어 계산에도 신중을 기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로또를 싫어하게 된 건 이 정도 때문은 아니었다. 한적한 편의점에 손님들이 정신없이 몰아닥치는 유일한 시간이 있었다. 바로 매주 토요일 8시, 로또 판매가 마감되는 시간이었다. 이때는 다음 타임 알바생과 같이 카운터를 봐도 모자랄 정도로 손님이 마구 몰려왔다.

로또 때문에 일주일치 욕먹다

로또, 당신에겐 무엇입니까?
 로또, 당신에겐 무엇입니까?

오후 8시 정각이 되면 로또 판매를 아예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때는 손님이 돈을 줘도 계산을 할 수 없다. 시스템 자체가 마감되기 때문에 손님이 아무리 항의를 해도 어쩔 수 없다. 7시 반부터 슬슬 들어오는 로또 손님들을 보면 나는 초긴장 상태가 됐다.

이 시간에는 일단 다른 손님들은 잠시 기다리게 하고 로또를 먼저 계산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빨리 놀려도 줄어들지 않는 로또 줄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7시 58분, 7시 59분…8시! 정각이 되면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죄송합니다. 마감이 돼서 구입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해야 했다.

당연히 사정을 모르는 손님들의 짜증과 분노는 나에게로 향했다.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돈을 준다는데 왜 못 사?", "아가씨, 내가 아까부터 계속 서 있는 거 봤잖아?", "일을 그딴 식으로 하면 안 되지!" 손님들의 즐거운 일주일은 '손 느린' 일개 알바생 때문에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고, 성난 군중에게 일주일치 욕과 짜증을 다 먹은 나는 손님들이 나간 뒤 조용히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로또 때문에 정신없이 계산을 하다 보면 시재가 맞지 않을 때도 있어서 내 돈으로 메우기도 했다. 시급이라 봐야 얼마 되지도 않은데 시재 메우는 데 돈을 쓰고 나면 내가 그 동안 뭘 한 건가 싶어 집에 가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개인 사정으로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게 됐지만, 그 때 시달렸던 로또 스트레스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로 남아 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출근이 무서울 정도로 로또가 두려운 존재였다.

사행심 조장, 물질만능주의, 서민의 꿈… '로또'를 둘러싼 수식어와 견해는 다양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로또는 세상 물정 모르던 새내기 시절 '사회의 혹독함'을 일깨워준 존재가 됐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번 돈으로는 해외 여행은커녕 용돈으로 쓰기에도 빠듯한 수준이었지만, 그때의 고생은 몇 십 억의 당첨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로또 응모글



태그:#로또, #편의점알바, #아르바이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