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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회장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학급회장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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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ㅁ고등학교 1학년 정희경(가명). 성적은 중하위권이나 활달하고 붙임성이 있어 반에서 인기가 많다. 중학교 때까지 줄곧 학급 부회장을 도맡았으나 회장과는 인연이 멀었다. 중학교 때 못다 한 꿈도 이루고, 아이들도 새로 사귈 겸 학급회장 선거에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학급회장을 뽑는 날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우리 반을 이끌어갈 회장은 1등 OOO, 부회장은 2등 XXX가 맡고... ."
"에~이!!"

선생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야유 섞인 아이들 탄성이 터져 나왔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다른 학교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은평구에 있는 ㅇ여고는 550여 명의 신입생 가운데 100등 안에 든 학생들만 회장·부회장 출마 자격을 얻는다. 1학년 전체가 15개 학급이니 반에서 5, 6등 정도는 되어야 후보자로 나설 수 있는 셈이다. 임원을 뽑기 전에 담임교사가 "반에서는 5등 안에 들어야 하고 전교 등수는 100등 안에 들어야 한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고 한다. 학급회장을 교사가 지명하거나 등수로 출마에 제한을 두는 일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학급 회장·부회장 지명은 '입학사정관제' 때문?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학급 회장 ·부회장을 몰아주자? 이건 아니지 싶네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학급 회장 ·부회장을 몰아주자? 이건 아니지 싶네요.
"학교에서 1, 2등 하는 애들 스펙 관리해 주는 거예요."

학교는 학급 회장·부회장을 (명문) 대학교에 들어갈 만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에게 얹어주는 '덤'으로 여긴다. 이러니 성적이 되지도 않는 아이들이 회장 자리를 넘보면 학교 진학률만 떨어뜨리는 밉상으로 눈총 받기 십상이다. "제가 회장이 되면 학급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는 초등학교 때 공약은 더 이상 씨알이 먹히질 않는다. 봉사는커녕 남 사정 볼 것 없이 '1등만 하라!'는 메시지를 아이들은 벌써 재빠르게 접수했다.

학급회장을 이렇게 뽑아도 되는 걸까. 누구나 출마하고 당선될 가능성을 열어놓은 '기회의 평등'을 빼앗은 학급회장 선거는 대한민국 현행선거제도를 뿌리부터 뒤흔든다.

또한 학생임원 피선거권을 제약하는 일은 헌법 11조 [평등과 특권계급제도의 부인]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아무도 그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종교가 무엇이든지 또는 사회에서 신분이 무엇이든지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와"2항, 사회의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만들 수 없다"는 조항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펄쩍 뛰어넘어, '특권계급'을 향해 냅다 치달리는 모습이다.

투표권이 없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헌법은 학생들이 "1, 2등하는 친구들에게만 피선거권을 주자"고 스스로 결의해도 원천무효인 차별이며 인권침해임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지만, 학교는 모르쇠다. 이런 막가파식 학교가 "학교의 설립/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초중등교육법 18조4항 같은 법률이야, 더군다나 염두에 둘 리 없을 터.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투표권을 갖지 못했던 '수동적 시민(미성년자와 자산이 없어 일정액수의 세금도 내지못하는 하층 시민)'은 2010년 대한민국에서는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수동적 시민(시험성적이 상위권에 오르지 못하는 하위권 학생)'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학에 종속된 중등교육' '1등만 기억하는 교실'에서 학급회장에 출마할 소박한 꿈마저 빼앗겨 버린 고등학교 1학년 희경이, 앞으로 어떤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까.


태그:#1,2등만 학급임원 할 수 있다, #학급임원과 성적, #성적이 좋아야 학급회장 선거 나갈 수 있다, #성적으로 짓밟는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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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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