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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다가 배꼽이 빠지게 웃고 싶은 부분도 있고, 실제로 웃다가 보면 눈가로 무언가가 삐져나오게 하는 슬픈 부분도 있다. 어떻든 이 소설은 한순간에 읽힐 만큼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굳이 복잡한 경제학을 들먹이지 않으련다. 우리 주변에서 고령화는 이제 보기 싫어도 봐야하고, 느끼기 싫어해도 느껴야 하는 기본적인 현상이다. 우리 주변에서 요즘 20대에 결혼하는 사람은 정말 희귀종에 가깝다. 여성들의 첫 아이 출산 시기도 30세를 넘긴 지 오래다. 그러면서 집값은 부단히 올라서 '88만원 세대'들이 자력으로 집을 산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시기다.

현대의 일탈하는 가족의 애환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 천명관 고령화 가족 표지 현대의 일탈하는 가족의 애환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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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부터 직장에서는 퇴직 압력에 시달린다. 50살을 넘기고 직장에서 자리를 지키는 일은 눈칫밥을 보는 것과 동격이다. 이런 압력이 싫어서 일찍 직장을 그만두든 50살이 되어서 그만두든 나와서 식당 체인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물론 95% 이상은 일이년 안에 말아먹기 십상이다. 결국 집까지 위협받는 처지다. 그럴 때 가장 든든한 것은  부모님이다. 이 소설도 장성한 세 자식이 어머니의 집으로 뭉치면서 시작된다. 더욱이 이혼한 여동생은 싹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카딸을 데리고 있다.

서서히 밝혀지지만 엄마아빠가 같은 형제가 아닌 누구는 누구와 아빠가 같고, 누구는 엄마가 같다. 정말 콩가루 집안이다. 더욱이 그들은 이런 복잡한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하나씩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어찌보면 그 트라우마가 그들이 고령이 되도록 사회에 적응시키지 못하게 한 요소가 됐다. 그것이 죄책감이었는지 엄마는 뒤늦게 집으로 모인 자식들을 다 걷어 먹인다.

그리고 우연히 나에게 '훼밍웨이'의 낡은 전집이 들어오고 화자나 또 뒤룩뒤룩한 형 '오함마'도 그중에 '노인과 바다'를 골라 읽는다. 그리고 문제 많은 조카딸의 가출 등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 콩가루 같은 집안의 구성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작가는 챕터의 몇곳에 영화의 제목을 붙이는 것처럼 삶의 곡절에서 영화의 스토리라인과 비교한다. 따라서 소설을 읽다보면 영화의 장면들이 머리에 스쳐간다. 특히 내 머리에서 자주 노크한 영화는 미용실 여자와 남자의 사람을 담은 '사람한다면 그들처럼'이었다.

어떻든 상처투성이인 이들 이복, 이부형제들은 고통 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어머니 역시 미연의 생부인 옛 남자를 만난다.

어떻든 해피엔딩이다. 사실 저렇게 힘들고 구질구질하게 살았으면 행복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기에 독자들은 그러려니 묵인하고 싶다.

어떻든 작가는 영화판에서 구르다 온 사람이니 시나리오를 구성하듯 영화를 구성했다. 이 소설이 영화가 된다면 엄마에는 윤여정, 큰 형에는 살을 찌운 송강호가 둘째는 차승원이 딸에는 이미연이나 방은진 정도가 어울릴 듯한 영화다. 하지만 이 소설은 영화가 되는데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초반기에 구질구질한 가족의 삶이 너무 지루한데 후반에 오함마로 시작되는 극적인 반전 드라마가 너무 강해 앞뒤의 균형이 맞지 않는 단점도 있다.

어떻든 지금까지 몇편의 영화를 혼성모방한 소설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이 작품은 작가의 지긋한 현장 경험까지 살아 있어서 재미있게 읽힌다. 아마도 사십 중반인 작가의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항변하는 것 같다. 어떻든 작가에게는 감독 보다는 소설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문학동네(2010)


태그:#천명관, #고령화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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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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