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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신사들'은 진짜 신사가 아니라 거리의 노상강도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 도둑을 '밤손님' 또는 '양상군자'등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강도에게 신사라는 호칭을 붙여준 것이다. 그런 호칭을 붙이면 마치 그들이 진짜 신사가 될거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길 위의 신사들>의 두 주인공도 그런 강도들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대놓고 사람을 죽이면서 금품을 빼앗는 잔인한 강도들이 아니다.

 

도둑들이 훔쳐간 물건을 다시 자기들이 훔치거나, 아니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속여서 그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강도라기보다는 사기꾼에 좀 더 가깝다.

 

강도짓을 하건 사기를 치건, 두 명이 함께 일을 벌이려면 나름대로의 호흡이 맞아야 하는 법. <길 위의 신사들>의 두 주인공인 젤리크만과 암람은 그런 호흡에 있어서 찰떡궁합이다. 젤리크만은 전직 의사로 젊고 깡마른 백인이다. 암람은 늙고 우람한 흑인으로 한때 군대에 몸을 담고 있었다.

 

외모로만 보면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은 수년동안 함께 길을 가면서 많은 사기행각을 벌여왔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칼과 도끼를 들고 거짓 결투를 벌여서 사람들이 모여들게 한다음에, 사람들이 내는 판돈의 일부를 가로채는 것이다.

 

하자르 왕국에서 일어난 반란

 

물론 그런 식의 결투가 용인되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길 위의 신사들>의 무대는 중세 유럽의 하자르 왕국이다. 이 왕국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를 중심으로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유지된 유목민족의 나라이자 유대인의 왕국이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그래서 더욱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왕국이다.

 

이곳의 한 식당에서 젤리크만과 암람은 식당 손님들을 대상으로 또 한 번 사기를 친다. 거짓으로 결투를 벌이고 암람은 싸움끝에 가짜피를 흘리면서 죽은 척 연기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는 한 늙은 코끼리 조련사에 의해서 들통이 난다.

 

늙은 조련사는 젤리크만과 암람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소년 필라크를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소년의 할아버지에게 데려다 달라는 것이다. 필라크는 하자르 왕의 아들이지만, 반란군이 왕을 죽이고 정권을 가로채자 도망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우여곡절끝에 젤리크만과 암람은 소년을 맡게되고,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서 아제르바이잔으로 향하는 남쪽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들의 행군은 처음부터 불협화음이었다. 필라크는 어떻게든 복수를 하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서 다시 하자르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때마다 젤리크만은 '복수는 불필요한 일'이라고 그를 설득한다. 그러던 도중에 일행은 왕국의 군대와 마주치게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모험에 말려들게 된다.

 

현실을 잊게 해주는 모험소설의 재미

 

작가는 '모험소설만큼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많은 현대인들은 계속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무런 흥분이나 감동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하루하루가 모험의 연속이기도 하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서 집을 나설 때, 또는 먼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떠날 때, 업무상의 과오로 상사와 얼굴을 마주하게 될 때, 휴대폰 화면에 전혀 모르는 전화번호가 뜰 때, 우리는 모험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오래 전 신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쫓아냈을 때부터, 인간과 모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성향에 따라서 모험을 반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험을 좋아하더라도 결국에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편안히 집이나 사무실에 앉아서 책속의 모험으로 떠나는 것은 어떨까. 말을 타는 것이 두렵다면, 책 속에서 신나게 말 달리는 주인공을 보며 흥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배경도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다른 곳, 이미 잊혀져버린 실크로드의 왕국이라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그것은 자존심 강한 모험가가 살았던, 사라진 왕국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신사들> 마이클 셰이본 지음 / 이은정 옮김. 사피엔스21 펴냄.


길 위의 신사들

마이클 셰이본 지음, 이은정 옮김, 게리 지아니 그림, 올(사피엔스21)(2010)


태그:#길 위의 신사들, #마이클 셰이본, #모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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