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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빼앗긴 조선 청춘의 삶을 위해 진실된 싸움을 하는 중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99엔(약 1300원)에 대해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 직접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26일 정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김정주 근로정신대 할머니가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김정주 할머니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99엔(약 1300원)에 대해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 직접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26일 정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김정주 근로정신대 할머니가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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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피켓을 들고 있던 김정주(80) 할머니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양금덕(82)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김정주 할머니의 친언니인 김성주(82) 할머니의 한(恨) 맺힌 절규는 외교통상부를 향해 퍼져나갔다. 그러나 외교통상부의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은 26일 낮 12시 서울시 종로구 외교통상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후생연금 포기발언'을 규탄했다.

앞서 지난 22일 유 장관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99엔(약 1300원)인 후생연급 지급을 외교 문제로 제기하는 대신 정부가 1엔당 2000원씩, 즉 19만8000원을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지급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비롯해 시민모임 회원과 할머니들의 소송을 일본에서 지원해온 '나고야 미쓰비시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회장, 고이데 사무국장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유 장관의 발언은 피해자들을 적선이나 해줄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망언"이라며 "일본정부 대신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혈세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미불임금을 지급하고 이 문제를 끝내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한일협정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후생연금 만큼은 일본 정부가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이 '99엔' 연금증서 발급으로 확인됐다"며 "외교적 채널을 통해 정식으로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할 정부가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고 일본 정부의 방패막을 자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80대 피해자들이 정정당당히 자신의 피값을 찾아오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피해자들을 거지 취급하고 있다"며 "일본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갖은 노력 끝에 99엔을 찾아오는 동안 우리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이어 "이 돈은 어린나이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하고 심지어 고국에 돌아와 '몸 버린 여자' 취급을 받은 할머니들의 피값"이라며 "99엔 포기는 대한민국 자주권의 포기이자 제 2의 국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슨 자격으로 19만8000원 주겠다는 것이냐"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99엔(약 1300원)에 대해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 직접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26일 정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양금덕 근로정신대 할머니가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양금덕 할머니의 눈물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99엔(약 1300원)에 대해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 직접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26일 정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양금덕 근로정신대 할머니가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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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양금덕(82) 할머니는 외교통상부를 향해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양 할머니는 "65년간 눈물로 지냈다, 일본인에게 맞고 배 곯아가며 강제노역을 당했는데 일본정부에 말 한마디 못하느냐"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전해달라, 우리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또 "무슨 자격으로 19만8000원을 주겠다는 것이며 주면 고맙다고 받을 줄 알았는가"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김정주(80) 할머니는 후지꼬시 중공업에서 강제노역을 당했다. 13살에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끌려간 언니, 김성주 할머니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일본인의 꾐에 길을 나선 결과였다.
김 할머니는 강제노역 당시 "저녁반찬은 단무지 한 개가 전부였다, 춥고 배고픈 고통을 버텨가며 지냈는데 외교통상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한탄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 후 진행된 일본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의 마지막 '원고'이다. 선고 공판은 오는 3월 8일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99엔(약 1300원)에 대해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 직접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26일 정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참석자들이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기자회견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 할머니들의 후생연금 99엔(약 1300원)에 대해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 직접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26일 정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참석자들이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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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언 시민모임 국장은 "기자회견문을 외교통상부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히며 "앞으로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계속 투쟁할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광주 미쓰비시 자동차 전시장 앞에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80일째 1인시위를 열고 있다. 또 시민모임은 '일본정부의 사죄와 미불임금 해결'을 위해 오는 5월까지 10만 명 서명을 이어갈 계획이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할머니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길가에 걸터앉아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여기저기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할머니들의 시선은 굳게 닫힌 외교통상부의 문을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손일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근로정신대, #외교통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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