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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실제를 움직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말보다는 행동을 가지고 판단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표정엔 어느새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1층 기자실.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치고 난 후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이날 언론의 관심은 금통위의 금리 동결 결정이 아니었다. 이날 아침 금통위 회의에 참석한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이었다. 물론 허 차관이 이날 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금통위 회의의 발언 내용은 6주 후에 공개된다. 그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통위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정례적으로 참석하게 된 것을 두고, 한은을 비롯해 금융권에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되고 현 정부의 관치금융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이날 금통위 결과를 발표하던 이성태 총재에게 기자들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이 총재는 처음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도 "굳이 보탠다면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사결정은 결국은 금통위원 일곱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불편한' 이성태 총재 "말보다는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봐달라"

 

정부쪽 인사의 금통위 참석에 대한 소회를 묻자 이 총재는 "지금까지 드린 말씀 이외에 별로 없다"면서 "여러분들이 결과를 보고 사후적으로 판단하시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사후적인 결과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되묻자, 이 총재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는 "말로 아무리 이렇다 저렇다 하더라도 행동하고 말이 다르면 결국은 행동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면서 "제가 결과를 보고 판단하라는 것은 그런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쪽 인사의 금통위 참석에 따라 통화정책이) 어떠어떠한 영향을 받는다 안 받는다, 말로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실제 행동이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며, 결과적으로 행동을 보고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이 총재의 대답에도, "금통위 회의에서 한은이 금리를 올렸는데 정부에서 제동을 걸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거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민감해져 있기 때문에 답변을 드릴 수 없다"고 언급을 꺼렸다.

 

특히 이 총재는 "민감한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그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답변을 드릴 준비가 충분히 돼 있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민감한 상황이라 답을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쪽 인사의 정례적인 금통위 회의 참석 결정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과 관치금융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은행 총재로서 자신의 고민스러운 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금통위 결정은 금통위원의 몫"이라거나 "말보다는 결과를 보고 판단해 달라"는 등의 언급을 통해 이 총재가 자신의 임기 동안에 적어도 통화당국의 독립성은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태 총재의 임기는 올 3월까지다.

 

'긴장한' 허경욱 차관 "관치금융? 동의 않는다"

 

이와 함께 새해 첫 금통위 본회의에 정부 대표로 참석한 허경욱 차관은 이날 회의장에도 가장 먼저 입장해 금통위원들을 기다렸다. 회의장에 들어온 그는 여느 때와 달리 곳곳에서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를 받자,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오전 9시께부터 이주열 한국은행 부총재 등 금통위원들이 속속 들어왔고, 이들은 허 차관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이어 의장인 이성태 총재의 회의 개시를 알리는 의사봉 소리와 함께 침묵이 흘렀다. 이후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허 차관은 정부의 올해 경제운용방향과 현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 등을 간략하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를 마치고 나온 허 차관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며 좋은 회의였다"면서 "회의 분위기는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통위 발언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은 채 "(금통위) 발언 내용은 6주 후에 의사록이 공개되며, 그 이전까진 말하지 않는 게 규칙"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에 대해서, 허 차관은 "통화정책에 정부가 관여할 생각도 없고, 관여할 방법도 없다"면서 "금통위 참석을 놓고 독립성 훼손이나 관치금융 등을 운운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각국이 관계당국끼리 협의체를 만들어 회의를 하고 있으며, 우리도 이 같은 의사소통을 하자는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금통위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2%인 현재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태그:#이성태, #허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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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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