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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매혈기
 허삼관매혈기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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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읽고 큰 감흥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이른바 '필독도서'나 '교양도서', '명작도서'는 특히 멀리했다. <허삼관 매혈기>(푸른숲 펴냄)는 중국어 전공자라면 상식으로라도 읽어야 하는 책으로 통한다. 그리고 나는 중국어를 전공했다. 안 그래도 읽기 싫은 소설책을 '반드시, 꼭 읽어야만 한다'고 주변에서 외쳐대니 더 읽기 싫었다. 그래서 책꽂이 한 구석에 장식해 놓은 지 어느덧 3년 반이 지났다.

내가 소설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 신문사 강좌 '서평클리닉'을 다니면서부터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지만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 선생님은 '강추소설'을 소개해줬다. 중국어를 전공했지만 중국 소설이라고는 <삼국지>만 열심히 읽은 나에게 선생님이 특별히 추천한 책은 <허삼관 매혈기>였다. 선생님 입에서 이 책 이름이 나왔을 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이 책을 떠올리며 솔직히 뜨끔했다. 구석에 처박아두고 애써 외면해왔던 이 책과 이제는 얼굴을 마주쳐야 했다. 오랫동안 이유 없이 미워하던 친구에게 '미안하다'라고 사과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처음에 허삼관이라는 자가 괴짜인줄 알았다. 오래 전부터 <허삼관 매혈기>라는 제목만 끊임없이 들어오던 터라, 피 파는 작자가 온전치는 않으리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허삼관 매혈기>는 말 그대로 허삼관이 피(血)를 판(賣) 이야기다. 제목만 듣고 보면 상당히 어둡고 칙칙한 느낌이 든다. 예전에 <낙엽귀근(落葉歸根)>(2007)이라는 중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 속에서도 매혈행위가 나온다. 집 없고 가난하고 외모가 지저분한 사람들이, 불법 매혈 알선자를 찾아가 피를 팔고 돈을 받는 장면이다. 그 장면 때문에 매혈이란 더럽고 불결한 행위 같았다.

책 속에서 허삼관이 매혈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남자가 여자를 들이기 위한 첫째 조건이 튼실한 몸이고,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매혈을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 였던 것이다. 매혈하러 가는 시골사람 방씨와 길룡이를 우연히 만나면서, 허삼관은 매혈의 세계에 빠져든다.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까지 물을 사발로 계속 마셔야 하고, 피를 판 후에는 반드시 돼지간볶음 1접시에 황주 두 냥을, 그것도 데워서 마셔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가며 허삼관은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그렇듯,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일만 겪는 사람은 없다. 허삼관의 삶 또한 굴곡이 지기 시작했다. 허삼관은 아내 허옥란이 낳은 아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중 첫째 일락이의 얼굴이 자신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소문에 시달린다. 일락이의 얼굴이 아내가 허삼관에게 시집가기 전 만났던 남자 하소용을 점점 닮아갔던 것이다. 지난 9년 동안 일락이를 키우며 누구보다 사랑했던 허삼관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그 때부터 일락이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러니 한 점은, 여기서부터 허삼관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라 전체가 기근으로 주리고 있을 때, 허삼관은 피를 팔고 번 돈으로 가족끼리 국수를 먹으러 간다. 피를 팔아 번 돈은 친자식이 아닌 놈에게 절대로 쓸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허삼관은 일락이를 가족 외식에서 제외시킨다. 그러나 소위 친아버지라는 하소용에게 문전박대 당하고 허삼관에게도 미움을 사 길가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일락이를 다시 품으로 안은 건 역시 허삼관이었다. 허삼관이 일락이에게 마구 퍼부은 욕설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자존심을 달래려는 고육지책이다. 울음 범벅이 된 일락이를 업고, 국수가게로 걸어가는 허삼관의 뒷모습이 눈물겹고 따뜻했다.

소설 속에서 허삼관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얼핏 보면 다혈질 같기도 하고, 심술궂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 본성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허삼관을 우리가 위대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허삼관에게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슬프지만 강한 척하고 아프지만 괜찮은 척하고, 마음 속 깊이 사랑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아닌 척 하는 것은 우리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허삼관이 아버지 같고, 옆집 아저씨 같다. 원수지간인 하소용의 목숨이 위급할 때 증오심보다는 아량을 보여준 허삼관, 아내가 기생이라는 누명을 쓰고 길 한 가운데 서서 밥도 못 먹고 있을 때 사람들 몰래 밥 아래쪽에 반찬을 깔아 가져다 준 허삼관, 일락이를 잃기가 죽기보다 싫어 목숨을 걸면서까지 한 달에 피를 네 번 판 허삼관, 그에게서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났다.

이틀 동안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 때로는 웃음 짓고, 때로는 눈물지었다. 작가 위화가 쓴 소설은 <살아간다는 것> 이후로 처음이다. 위대한 명작은 시대와 장소에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국경과 문화는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책 속에 사람냄새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위화의 소설이 명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소설은 중국의 고통스러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히려 실수를 자주 저지르고 마음도 약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에서 감동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중국어 전공자이면서도 중국에 편견을 가지고 멀리해 왔던 나였다. 그런데 <허삼관 매혈기>가 그런 내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나에게 중국은 어쩌면 부담이었을지 모른다. 학점과 관계되어 있고, 취업과 관련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어렵고 딱딱한 기사와 전공서적으로만 접했던 중국이 내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내 소설 읽기의 여정은 중국 소설에서 시작될 듯하다. 이제야 나는 내 전공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허삼관이 일락이를 가장 사랑했던 것처럼.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푸른숲(2007)


태그:#허삼관매혈기, #중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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