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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잠시 인터넷 검색을 하는 중에 어느 중3 학생의 글에 눈길이 갔다. "강남 못 살면 좋은 고등학교 못 간다니"라는 제목이었다. "면학 분위기는 중요합니다", "서울시 교육청의 부자동네 편애는 없어져야합니다", "돈 없는 집 학생도 좋은 고등학교 가서 공부하게 해 주세요" 등.

이 학생은 성적이 특목고를 지원할 정도는 안돼서, 고교선택제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시행을 열흘 앞두고 시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추첨비율을 20%로(원래 계획 추첨 1, 2단계 총 60%) 축소해 크게 낙담한 것이다.

자식 위하는 '위법', 막고자 했건만

고교선택권 문제는 내가 지난 2004년부터 관심을 기울였던 특별한 사안이다.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내세운 대표적 공약도 학군광역화다. 동작구(을) 지역은 도로 하나 사이로 서초구 방배동과 동작구 사당동으로 나뉜다. 그래서 동작구 일부 학부모들은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아이들을 서초구 고등학교로 보낸다.

많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자식과 공모하는 위법이 횡횡하는 현실은 반드시 제도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원이 된 후 교육전문가들과 수없이 토론하고 정책대안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서울 전체를 단일학군으로 통합해 학생들에게 고교선택권을 주자는 취지의 단일학군제 구상을 내놓았다.

2006년 서울시장 경선에 나서면서는 이를 더 발전시켜 서울경영프로젝트를 발표했고, 결국 서울시교육청이 2010년부터 고교선택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시행 열흘 앞두고 제도 바꾸는 건 뭔가

우리 사회는 초등학생 때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다. 사교육 열풍도 결국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잘 살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이러한 경쟁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는 경쟁논리가 전 사회를 지배한다.

그러나 문제는 경쟁하는 방식이다. 고액아파트와 밀집된 학원 그리고 대입성적이 좋은 학교들이 서울 몇 군데에 집중돼 있다. 부모들은 이 지역을 놓고 진입경쟁을 벌인다. 위장전입도 불사한다. 이번에 제도가 갑자기 바뀐 것도 특정지역 학부모들의 압력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룰조차 편파적이다. 게다가 경쟁의 결과만 따지기 때문에 경쟁하는 방식이나 과정은 등한시한다. 경쟁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저 벌거벗은 이기심을 경쟁으로 혼동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의 고입제도는 정부가 학부모들에게 좋은 대학 많이 가는 학교근처로 이사하라고 권장하는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지역의 아파트 값, 전세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문제점은 방치해 놓은 채, 무수한 사회지도층들이 자녀의 위장전입으로 물의를 빚었다. 위장전입이라는 위법을 통해 일종의 특혜를 받은 셈이다. 같은 또래 학생들의 공정한 기회, 공정한 경쟁을 박탈하거나 훼손하면서.

이래저래 문제가 많아서 제한적이나마 도입한 고교선택제. 그런데 이마저도 시교육청이 앞장서서 첫걸음에 싹을 밟아버렸다. 시행을 열흘 앞두고 그간 논의결과를 무시하고 제도를 변조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학생에게 투표권 줘야 정신 차리려나

지금 중앙정부가 서울시민의 눈치를 봐가며 세종시를 뒤집으려고 하듯이, 서울시 교육청은 강남, 목동 등 특정지역 눈치만 보고 일거에 고교선택제를 뒤엎었다.

지난 2년 동안 사교육비 절감을 외쳤지만 정작 공교육 활성화 등 교육 불균형 해소대책은 보잘 것이 없었다. 오히려 고교선택제가 싹부터 짓밟히고 있는데 방치하고 있다. 이런 막무가내 교육행정을 그냥 두고 볼 것인가?

교육부와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부터는 서울시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학생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누구를 위한 교육청이며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제대로 묻고 제대로 답하자. 책임을 묻자.

덧붙이는 글 | 이계안 기자는 17대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태그:#고교선택제, #위장전입, #단일학군제, #교육부,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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