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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시내 중앙로 시민회관 옆 건물 앞에서, 한 남자가 서 있다. 여자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는, 추위에 귀와 코가 빨갛다. "금방 나온다고 했는데… 춥지만, 제가 못 들어가니까 할 수 없죠."

남자가 서 있는 곳 위에는 큼직한 글자의 건물 이름이 붙어있다. '제천 여성도서관'.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위치한 여성도서관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위치한 여성도서관
ⓒ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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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총 5명의 단출한 도서관은 총 3층으로 되어있다. 1층은 사무실과 '모유수유실'이 있으며 2층은 책을 대여할 수 있는 자료열람실, 3층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과 휴게실이 있다. 크기는 작지만 총 3만 5천여 권의 장서가 있으며, 철학 종교 사회과학 예술 어학 순수과학 등 주제별로 다양하게 비치돼 있다. 하지만 여성들만 이용하는 도서관인 만큼, 여성들의 취향에 맞는 소설, 혹은 요리나 육아 서적이 인기가 많다. 

여성 도서관이 개관한 때는 1994년. 남편을 따라 1948년부터 제천에 살았던 고 김학임씨가, 1992년 제천시에 부지 344㎡를 쾌척하면서 건립이 추진됐다. 공부할 수 없었던 자신의 어려웠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여성도 배워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삯바느질로 한 푼 두 푼씩 모아 산 땅을 기부한 것이었다. 김씨의 부탁에 따라, 도서관은 전국적으로 유일한 여성전용 공공도서관이 되었다. 현재 제천 시립도서관의 분관으로 등록돼있다.

1층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곳은 바로 '모유수유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기엄마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사실 도서관 주변 중앙시장을 이용하는 주부들이 더 많이 이용한다. 마침 2층에서 갓난아기를 업은 여성이, 5살 먹은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 "잠깐 아이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해서 들어왔어요."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시립도서관 소속 여성도서관팀장 김순자(54)씨는, 여성 도서관이 '제천 지역 여성들의 안전지대'라고 말한다. "여성들만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젊은 여성들은 편하게 오갈 수 있어 많이들 찾아오세요. 또 주부들이나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휴게실에 모여서 사는 얘기를 하는 곳이 마땅치 않아서 오히려 이곳을 찾습니다. 휴게소, 보호소 겸 도서관이라고나 할까요."  

내부에는 전자레인지와 소파, 세면대가 설치돼 있다.
▲ 모유수유실 안에 있는 아기침대 내부에는 전자레인지와 소파, 세면대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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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열람실 옆 3평 남짓한 휴게실에서는, 여중생 3명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여자들끼리 있으니까 많이 편해요. 남자들이 있으면 공부하는 것도 좀 조심스럽게 되거든요." 이노해(의림여중, 16)양은, 시험 기간만 되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옆에 있던 이예진(16)양이 거들었다. "시립 도서관 가면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훨씬 많아요."

김 팀장의 말에 따르면, 여성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남성은 직원을 빼면, 초등학교 3학년(10살)으로 제한돼 있다. 출입이 금지된 남성들의 불만은 없었을까.

"실제로 항의 전화가 온 적이 있었어요. 요즘 같은 양성평등 시대에 왜 여성들만 우대해주냐고." 홈페이지에도 몇 번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의를 제기한다는 식의 글이었다. 김씨는 남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도서관 건립 취지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주부나 나이 드신 여성분들은 도서관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시장이 가까이 있으니까 장을 보시고 종종 오세요. 그게 우리 도서관의 장점이죠." 

2층 자료실에 근무하는 사서 김남정(42)씨의 말이다. 모든 장서가 비치돼 있는 자료열람실인 2층에는,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아동자료실과 모유수유실이 있다. 도서관 이용객은 하루 평균 500~600명 가량. 최근 '신종플루'로 인해 다소 줄긴 했으나, 전반적으로는 매달 단골 이용객이 늘고 있다. 오전에는 주부들이 많고 오후에는 미혼의 직장여성들도 종종 찾는다. 김씨는 이용객들이 책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즐겁다고 했다.

"베트남 등에서 온 이주여성분들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히러 자주 오세요. 그분들을 대할 때마다, 도서관이 다문화 가정 여성들의 대안공간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여성도서관은 2007년, 5억 7천여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친환경 자재들을 사용했다. 이전의 노후된 테이블과 의자는 간데없고, 연둣빛 의자와 은은한 아이보리색 벽지와 테이블, 잘 정리된 책장이 깔끔하고 아늑하다. "인테리어가 예뻐서 저절로 공부가 잘 되는 느낌이 들어요." 2층에서 책을 보던 취업 준비생 류혜림(25)씨는, '리모델링 후' 도서관을 더 자주 찾게 됐다고 말한다.

제천 여성도서관 2층 자료실
 제천 여성도서관 2층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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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도서관에서는 성인 여성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지공예'와 '민화' 강습 교실을 열고 있다. 현재 기적의 도서관과 함께, 생후 만 6개월~12개월의 영아들을 위한 책을 각 가정에 전해주고 부모들과 육아 정보도 나누는 '북스타트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제천 지역 여성들의 휴식처이자 학습 공간으로 사랑받는 여성도서관. 단순히 여성들이 모이는 곳에 그쳤던 공간이, 이제는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바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충북 제천 , #여성도서관, #제천 여성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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