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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KBS 노동조합은 MB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을 막아낼 수 있을까.

 

김인규 KBS 새 사장은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둘째 날 집무를 무리없이 시작했다. 25일 오전 7시 10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 도착한 김 사장은 노조와 아무런 충돌 없이 6층 사장실로 들어갔다. 전날 노조는 집행간부와 중앙위원 위주로 김 사장의 출근을 막겠다고 결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 사장이 노조보다 한발 빨랐다.

 

김 사장은 이날 오전 7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도착했지만, 노동조합은 7시 30분에야 본관에 도착했다. 김 사장이 이 정보를 먼저 알고 출근을 서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날 노조의 투쟁수위에 견준다면 철야는 물론 새벽 출근이라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노조는 지속된 투쟁 속에서 피로감 때문에 밤샘은 곤란하다고 전했다.

 

노조는 전날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25일도 똑같이 강도 높은 투쟁으로 김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투쟁이 계속되니 노조 집행간부를 믿고 신뢰해달라고 당부했다. 최재훈 부위원장은 "노조 집행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조합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노조는 이미 MB특보의 퇴진에 명운을 걸었다, 한 번 더 믿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조 결의에 일부 조합원들은 김 사장의 첫 출근도 제대로 막지 못했는데 과연 둘째 날이라고 될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루 싸움을 보면 백일 싸움을 알 수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말로는 엄청난 일이 전개될 것 같지만,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별것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 조합원은 "노조의 핵심지도부가 누구냐, 노조는 내일(25일)도 많이 나와 달라고 조합원들에게 부탁하지만 과연 누가 나올지 모르겠다"며 "노조가 별로 분노에 차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최 부위원장은 "허탈하고 분하고 억울한지 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패배감으로 축 처진다면 좋아하고 즐길 사람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김인규 사장"이라며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말자"고 제안했다.

 

 

노동조합은 '총파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용암이 부글부글 끓듯 KBS 조합원들은 끓어오르는 분을 삭인 채 노동조합의 지시대로 따랐다. 24일 오후에도 김 사장의 집무실이 있는 본관 6층엔 못 올라가고 5층과 다른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사내 홍보전을 했다. 26일부터 진행되는 총파업 찬반투표를 알리는 일종의 선전전이다.

 

노조 조합원들은 MB특보 출신 사장이 공영방송의 수장이 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한다면 노동조합이 더욱 강도 높은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사장실 점거농성이나 취임식 단상점거 등 실효성 있는 활동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현재로서는 사장실 점거농성 등 강도가 높은 활동계획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24일 첫 출근을 막지 못한 점을 둘러싼 책임공방이 벌어진 노동조합 중앙위원 회의에서도 당장 사장실 점거농성을 한다는 계획은 도출되지 않았다.

 

총파업에 앞서 직군별(기자·PD·기술 등) 총회나 부분파업을 벌이자는 중앙위원들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조는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총파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형국이다.

 

찬반투표에서 총파업이 가결돼 파업에 이른다 해도 시기적으로 7일이 빈다. 7일 사이에 노조가 하겠다는 것은 오로지 출근 저지투쟁뿐이다. 노조의 출근저지투쟁은 이미 김 사장이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왔다.

 

노동조합은 김 사장이 '개구멍으로 출근했다'고 비난하지만, 김 사장은 첫날인 24일 간부들과 함께 노동조합이 본관 중앙계단에 깔아놓은 '근조 공영방송 KBS, MB특보 김인규는 물러나라' 플래카드를 밟고 올라갔다. 25일은 아예 충돌없이 사장실까지 직행했다.

 

김 사장은 첫날 출근한 뒤 곧바로 간부들과 함께 임원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업무보고는 최단시간 안에 가장 간략히 하라고 지시했으며, 최우선 과제로 시청자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사업에 적극 반영하라고 하달했다.

 

김 사장의 이 같은 주문에 KBS 간부들은 '시청자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가 골몰하는 분위기다. 이미 김 사장은 불과 마이크가 꺼진 취임식장에서 마치 1인극을 벌이는 연극배우처럼 큰 소리로 취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노조의 빗발치는 항의에는 "소수의 바람직하지 못한 목소리가 있다"며 "남의 말을 무시하는 몰지각한 행위"라고 몰아세웠다. 김 사장에 반대하는 KBS 내부 인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게 하는 발언이다.

 

 

할 일 많고 해치워야 할 난관도 수두룩한 신임 사장

 

김 사장은 취임사에서 10대 기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기본방향은 '희망 2010, 대한민국의 힘'으로 잡았다. 경술국치 100년, 한국전쟁 60년에 맞는 대형 기획물을 만들어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첫 번째 포부는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10부작'이다. 새로운 영상자료를 발굴해 평화의 관점으로 전쟁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두 번째, <전우> 타이틀의 특별기획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런 드라마는 공영방송인 KBS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드라마는 지난 1975년 6월 한국전쟁 25주년 특집으로 기획됐던 드라마다. <스타뉴스>와 인터뷰한 KBS 관계자는 이 드라마에 대해 당시에는 반공사상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이념적 접근이 아닌 전쟁의 비참함이나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휴머니즘으로 다가설 것이라고 전했다.

 

김인규표 <전우>는 어떤 드라마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전우>는 20부작으로 기획돼 내년 5~6월경 주중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김 사장은 무료 지상파 디지털 TV 플랫폼을 구축해 유료 가입자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송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업계에서조차 생소한 '무료 지상파 디지털 TV 플랫폼'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차분히 설명하겠다는 것이 KBS 측 입장이다.

 

TV수신료 인상 문제도 내년까지 매듭짓는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행 2500원에서 100% 인상해 5천원으로 올린다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이 공영방송에서 보여줄 밑그림이 정확하지 않은 가운데 국민이 선뜻 TV 수신료 인상에 동의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처럼 김 사장은 엄청난 포부를 갖고 KBS의 수장이 됐다. 과연 KBS 노조는 'MB특보' 출신 사장을 막아낼 수 있을까? 김 사장의 첫 출근 날 2번째 진입 시도에서 5분여만에 뚫린 투쟁력으로 YTN 노조처럼 끈질긴 싸움을 벌일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태그:#KBS 노동조합, #사원행동, #김인규 KBS 새 사장, #부분파업,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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