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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텃밭이 무슨 천 평이나 삼천 평이 되는 것도 아닌데 고구마와 생강을 군데군데 조금씩 심어놓고도 못 보고 있었다. 가을이 되었다고 고구마 순을 뜯어 말리면서도 고구마 캘 생각은 까맣게 못하고 있었다. 어제 그제 연 이틀 서리가 내려 고구마 잎이 바싹 타버린 것을 보고서야 어어 큰일났네, 얼어버렸으면 어떡하지,  사뭇 심각해져서 어머니의 경험을 듣고자 하는데 어머니는 "몰라, 어따 고구마 심었간디?" 하신다.

아아 참, 어머니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였지. 저녁에 자다가다도 벌써 날이 밝았느냐고 물어보는, 밥 먹자고 하면 아까 먹은 밥을 또 먹느냐고 하시는 그런 아이였지. "암튼 오늘 날씨도 영판 따뜻하니까 고구마랑 생강이랑 가을일 다 끝내 버립시다." "으응, 그려, 그려."

그렇게 저렇게 어쨌든 어머니와 함께 고구마를 캔다고, 생강도 캔다고, 몇 포기 되지도 않는 그것들을 캔다고 준비하는 데만 한 시간여나 걸려서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괭이를 들고 다가서니 땅을 선뜻 파헤칠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 얼어 버렸으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소심함을 겨루는 대회가 있다면 일등이나 할 것 같은 소심증으로 내심 걱정이나 하면서 딴전을 피우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마치 물어볼 것 있으면 물어보라는 듯이 때맞춰 지나가신다.

"아니여. 지금이 딱 좋아. 고구마는 옛적부텀 서리 내리고 난 뒤에 캐는 것잉게.  쓸잘디없이 부지런한 사람이 너무 일찍 서둘러서 손해보는 것이여."

오호, 그게 또 그런가.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호박이라든가 고추 오이 같은 열매 식물들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신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모양을 볼 때마다 나는 신기해하면서도 알 것 같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구근식물도 그렇게 찬바람이 불면 바빠질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매년 쓰잘데없이 부지런을 떨어서 손해를 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마당에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에 물이 들면 그것을 신호로 알고 고구마를 캐내곤 했으니까 말이다. 쓰잘데없이 부지런하다는 것은 굳이 해석을 하자면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다른 일거리를 만들어낸다는 얘기쯤 되겠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고구마를 너무 일찍 캐 버려서 알이 좀 더 굵어질 수 있는 여지를 원천봉쇄해 왔던 셈이다.

예전에 서울생활을 할 때 나는 곧잘 이런 말을 하고는 했었다. 하다하다 안 되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뭐.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부끄러운 그 말이 그때는 어찌 그리도 쉽게 입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땅은 거짓말을 모른다. 예전에도 나는 이런 말을 했었고, 지금도 이런 말을 한다. 예전의 '그 말'과 지금의 '이 말' 사이를 흐르는 강의 깊이를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이런 말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예전의 '그 말'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에 기대고 있었다면 지금의 '이 말'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아, 그게 또 이렇구나" 하는 감탄사와 느낌표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고.

고구마는 땅에 거름기가 많으면 별로 좋지 않다. 알은 굵어지지만 당도가 떨어지고 무엇보다 매미의 유충 굼벵이가 많이 꼬인다. 작년에 퇴비를 너무 많이 넣었다가 태반이 굼벵이의 공격을 받아 덕지덕지 부스럼딱지가 내려앉은 아주 못생긴 고구마를 캐놓고 난감했었다.

금년에는 퇴비를 넣지 않아 고구마는 잘 생겼는데 새로운 천적이 나타났던 모양이다. 네다섯에 한 개 꼴로 이빨 자국이 나 있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쥐가 고구마를 갉아먹는 것이야 상식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당하기는 처음이다. 아무래도 쥐의 개체수가 엄청 증가한 모양이다. 이제 곧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녀석들은 집안으로 기어들 것이다. 

쥐가 갉아먹은 고구마를 들고 어이없어 하시는 어머니. 이렇게 쪼그려 앉은 채로 고구마를 다 캘 때까지 "시상에, 썩을놈의 쥐새끼가, 어찌 이렇게도..."등등 혼잣말만 하고 계셨다.
 쥐가 갉아먹은 고구마를 들고 어이없어 하시는 어머니. 이렇게 쪼그려 앉은 채로 고구마를 다 캘 때까지 "시상에, 썩을놈의 쥐새끼가, 어찌 이렇게도..."등등 혼잣말만 하고 계셨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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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캔 뒤에도 한 번 더 만져보고
 다 캔 뒤에도 한 번 더 만져보고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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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것이 먼 지랄일까. 욕심도 많네. 아 쳐먹을라믄 하나만 갖고 다 먹지. 먼 지랄났다고 이렇게나 죄다 물어뜯었을까."

어머니는 못내 속상하고 야속하고 심지어는 무엇인가 억울하다는 느낌조차도 있는 모양이다. 상처난 고구마를 하나하나 일일이 들었다가 놓았다가 도무지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혀를 차며 울먹거린다. 그러다가 생강 한 포기를 뽑았을 때 어머니의 그 울먹거림은 감탄사로 바뀌었다.

"오매, 이것이 생강이여? 먼놈의 생각이 이렇게나 나뭇단 같당가."
"엄마도 생강 알아요?"
"아따 오빠는 또 먼 그런 말씸을 하신다요."
"아따 참말로, 나는 신분이 뭐여, 오빠여 아들이여, 확실히 좀 해달랑게."

짐짓 짜증을 내보지만 이런 짜증에는 웃음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어머니도 아신다. 웃음이란 일단 나오면 증폭되기 마련이다. 그나저나 생강이 이상하다. 어머니의 표현대로 정말 나뭇단 같다. 한 포기만 그렇게 유별나겠거니 했는데 아니다. 그야말로 겁나게도 크게 많이도 달렸다.

이 집으로 이사온 이후 지난 사 년 동안 해마다 생강 오천 원어치씩을 사다가 심었다. 쪽수로 치자면 손가락 크기 정도로 열둘에서 열다섯 개쯤이었고, 그것을 심는 데 필요한 땅은 내 몸 하나 반듯이 눕힐 정도면 충분했다. 첫 해에는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속담에만 의지해서 거름도 없이 심은 까닭에 별 수확을 못했고, 이듬 해에는 우매하게도 화학비료를 집어넣어 단 한 뿌리도 건지지 못했다. 구근식물은 화학비료가 독약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까닭이었다. 어쨌든 작년에는 퇴비를 듬뿍 넣어 제법 성과를 보았다.

그리고 금년에는, 며칠 전에 새끼를 낳은 마루가 날마다 생산하는 개똥을 모아서 비닐봉지에 넣어 한 달쯤 발효를 시킨 뒤에 "자 간식이 왔다" 어쩌고 지껄여가며 생강 포기 주변에 마치 성을 쌓듯이 올려놓곤 했었다. 그 결과 생강은 아마 생강 자신도 놀라울 정도의 번식에 재번식을 해도 끄덕없을 생명력을 갖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이런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땅은 거짓을 모른다. 다만, 땅도 먹을 것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석유에서 뽑아낸 비료가 아니다. 땅을 살찌우고 향기롭게 하는 것은 똥이다. 땅은 그 어떤 수치도 원칙도 통계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만을 요구한다. 사랑도 '사랑해, 사랑해' 그런 사랑이 아니라 가슴을 열어보일 것을 요구한다.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멈칫거리고 잔머리 굴리고 거짓말 비슷한 것이라도 한다면 땅은 대번에 토라져서 '안녕' 해버린다.

손가락 만한 크기의 생강 열다섯 쪽이 이렇게도 대폭 새끼를 쳤다.  우리집 개 마루가 매일 생산한 개똥이 이렇게도 대단한 위력을 보였다.
 손가락 만한 크기의 생강 열다섯 쪽이 이렇게도 대폭 새끼를 쳤다. 우리집 개 마루가 매일 생산한 개똥이 이렇게도 대단한 위력을 보였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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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많은 생강을 어떻게 하지? 갑자기 난감하다. 이 많은 생강을 어머니와 둘이서 소비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생강차를 만들까 생각도 해보지만 작년에 사서 만든 생강차가 아직 제법 남았다. 하여 누군가와 나눠먹기로 하고 그 누군가를 생각해 보는데 떠오르는 얼굴이 한둘이 아니다.

이 사람과 나눌까 하고 보면 저 사람이 서운하고, 저 사람과 나누자 하고 보면 또 그 사람이 섭섭하다. 아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과 나누자, 하고 모르는 사람을 생각해 보려고 하니 이게 또 이상하다. 모르는 사람을 내가 어찌 생각해낼 수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모르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야 하는가?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이게 참 그런 모양이다. 행복이 가득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잘 없는 모양이다. 하긴 게으름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이요 일란성 쌍둥이지 싶기도 하다. 어머니가 옆에 안 계셨을 적에 나는 딱히 무슨 하는 일도 없이 늘 바빴었다. 마음이 바쁘다 보니 매사가 두루춘풍이요 주마간산이었다. 꽃씨를 뿌려놓고도 꽃이 피면 아 피었구나, 예쁘다, 향기도 좋다, 했을 뿐 그것이 어떻게 자라서 어떤 모양으로 피어나고 어떻게 마무리를 짓는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도시에 안녕을 고하고 농촌으로 내려올 때 나는 게으르게 살자, 게으름 속에 행복이 있나니, 등등 잠언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잔뜩 넣어두고 있었다. 그 뒤로 십이 년, 나는 행복했던가? 글쎄, 사람은 행복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 행복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한 채로 다른 것만 좇는다는 말이 얼핏 생각난다. 행복은 저기에 있다고, 저것을 잡아야만 한다는 초조감에 포박된 도시에서의 행동거지를 고스란히 되풀이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금년에 이르러서야 게으름에도 품질이 있고 등급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어렴풋이, 그야말로 어려풋이일 뿐이다. 그러니 이것을 온전히 알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다. 사실은 이런 생각도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 이런 계산도 아마 하나보다는 둘이 좋고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좋다는 얄팍한 욕망의 연장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어렵다. 어렵다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더욱 어렵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만 있다면, 몸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 보고 느낀 그것을 소처럼 되새김하며 음미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것도 쉬운 것도 분별할 필요가 없이 그 자체로 내게 유용한 양분이 될 테지만 나는 아직 그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언덕을 넘어서고 나면, 그때 나는 아마 생강이 너무 많다고 누구와 나누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고 나 자신에게 하소연하는 이런 우매함으로부터 벗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태그:#나눔, #행복,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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