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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중학교
 상암중학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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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상암중학교 진영효 선생님으로부터 상암중 '2009 진로체험의 날'에 '예술'분야 강의를 요청받고 '명예교사'로 참여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에 관한 내용을 강의와 토론을 통하여 체험하게 함으로써 향후 합리적으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수업입니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초빙하여 학생들 관심사항에 답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시간이었습니다.

1, 2학년 총 16학급에 맞추어 각기 다른 분야 16분 명예교사들이 참여했습니다. 학생들은 각자 희망 분야에 따라 학급을 이동해서 강의를 듣도록 기획되었습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교장 선생님과 참여 명예교사들이 대면인사를 하고 명예교사들을 전교생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방송을 위해 멀티미디어실에 함께 모였습니다.

상암중학교의 '진로체험의 날'에 멀티미디어실에서 방송을 준비중인 학생들
 상암중학교의 '진로체험의 날'에 멀티미디어실에서 방송을 준비중인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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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원장님과 패션디자이너, 방송프로듀서와 기자, 민항기 기장 같은 익숙한 직업을 가진 분도 있었습니다. 의사가 아니면서 의대교수로 계신 분의 '의사가 아닌 사람의 의대 교수 되기'와 진로전문상담사로 계신 분의 '후회 않는 진로 선택하기' 같은 저도 몰랐던 직업군에 종사하는 분의 흥미 있는 강의주제도 있었습니다.

명예교사들은 모두 의욕적으로 강의를 준비해오셨습니다.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초콜릿을 준비한 분도, 그룹토론 상품으로 여러 장의 도서상품권을 준비한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조금 자극적인 강의 제목으로 학생들을 유혹했습니다. '밥보다 맛있는 예술, 밥 짓기보다 쉬운 예술가 되기'가 그것입니다.

다소 자극적인 저의 강의 제목
 다소 자극적인 저의 강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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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중학교는 2007년에 개교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2007 학교경영우수학교 교육감 표창, 2008년 도서관프로그램 운영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 및 TV활용 교육 우수학교 KBS사장 표창 등 많은 상을 받을 만큼 학교운영에 앞서가는 학교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구체적인 미래준비를 위한 '진로체험의 날' 외에도 '학부모와 지역주민을 위한 상암주민대학'을 개최하는 등 학생과 지역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학교 의무사항이 아닌 이런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의욕과 희생이 동반되어야 하지요. 강사들을 섭외하고 실행한 프로그램의 효과를 평가하는 일이 교사들 업무를 적지 않게 증가시키기 때문입니다.

창의적인 프로그램의 기획은 교사들의 수업외 부담을 한층 증가시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 스승의 도리일 것입니다. 의욕적인 상암중학교의 여러 교사들중 한 명인 진영효선생님
 창의적인 프로그램의 기획은 교사들의 수업외 부담을 한층 증가시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 스승의 도리일 것입니다. 의욕적인 상암중학교의 여러 교사들중 한 명인 진영효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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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춘 교장 선생님께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라'는 말씀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사는 지혜와 창조적 능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여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한 삶'을 준비토록 하는 것이 이 학교의 목표이므로 공부만이 모든 것이 아님을 이야기했습니다.

"간혹 교복을 쫄바지(레깅스)로 고쳐 입은 학생, 혹은 미니스커트로 줄여 입은 학생과 대면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학생과 교사는 충돌하게 되지요. 이 학생은 분명 친구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교복을 쫄바지와 미니스커트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학생들은 또다시 다르게 보이기 위해 품이 넉넉한 바지와 롱스커트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장선생님의 사고와 실천이 참 유연하다는 생각에 말씀을 듣는 동안 '행복을 준비하자'는 이 학교 교훈처럼 저도 행복해졌습니다.

아직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하지않으셨다는 상암중학교의 홍기춘교장선생님
 아직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하지않으셨다는 상암중학교의 홍기춘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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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를 더욱 행복하게 한 것은 제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었습니다. 1학년이라는 그 학생은 저를 보자마자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외마디 소리를 냈습니다.

"와! 산타할아버지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뿔이 네 개나 달린 모자를 쓴 저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루돌프는 어디에 있어요?"
"1층에 있단다."
"정말 산타클로스이군요. 저는 초등학교 때 산타클로스가 없는 줄 알았어요. 모두 가짜 수염이었거든요. 그럼 이 세상에는 귀신 말고는 다 있네요?"
"아니, 귀신도 있단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거든."
"북극에서 몇 시에 출발하셨어요."
"새벽에 출발했지."
"루돌프를 한 번 보여주시면 안 돼요?"
"먼 길을 왔기 때문에 지금 쉬고 있는 중이야."
"썰매에는 몇 명이 탈 수 있어요?"
"두 명은 탈 수 있지."
"저도 한 번 태워주면 안되나요."
"보통은 내 옆 좌석도 선물을 싣곤 하기 때문에 여유 공간이 없어."
"주로 밤에 근무해요?"
"맞아. 그래서 나도 루돌프도 좀 쉬어야 되지만 낮 시간에 네 학교로 왔기 때문에 특히 루돌프가 피곤하단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되기 전, 담당선생이 그 학생을 데려감으로서 우리의 대화는 중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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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의 소개시간에 이 학생과의 대화 내용을 말하고 이 학생의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의 원형질 같다는 제 느낌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예술의 창의성은 이 순수를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2시간 정도 되는 강의가 끝난 뒤 그 학생은 다시 제게로 왔습니다. 3층 창밖으로 귀가하는 학생들이 보였고 그 학생들이 지나는 1층 현관 앞에 발자국이 찍힌 무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학생이 다시 말했습니다.

"저것이 루돌프의 발자국이예요?"
"그렇다."

학교 현관에 찍힌 루돌프 발자국.
 학교 현관에 찍힌 루돌프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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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를 한 번 보고 싶다는 그 학생의 희망을 들어주지 못하고 저는 진영효 선생님과 학교를 떠났습니다. 자유로를 달리는 중에 진 선생님께서 말했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7명의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습니다. 사회성의 발달을 위해 수업의 반은 일반학생들과 함께 수업하고 반은 특수교사들이 맡아 분리 수업을 합니다."

저는 그 학생의 밝은 표정과 순수한 영혼이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그 아이들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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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상암중학교, #산타클로스, #루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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