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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강부자 정권'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명박 정권은 감세나 반값 아파트, 친서민 등 실제 서민들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주지 않는 보수적인 정책들을 친근감 있는 언어로 포장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른바 '무늬만 친서민' 프레임이다.

'대안없는 진보'. 이것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외쳤던 보수진영이 정해놓은 프레임이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에 일정 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마이뉴스>는 몇 회에 걸쳐 우리시대 진보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 싱크탱크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12일 저녁 참여사회연구소 중회의실에서 시민 10여명이 박호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12일 저녁 참여사회연구소 중회의실에서 시민 10여명이 박호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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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공동체'에 이질감을 느꼈어요. 88만원 세대들은 공동체적인 사람이 되자, 연대하며 살아가자는 말을 많이 듣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맥도날드에서 2시간 일하면 당장 7000원이 생기는데, 시위하러 가면 연행되고 취업도 안 됩니다. 우리들이 선생님이 말하는 공동체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모임에 참석한 시민

지난 12일 저녁 서울 종로구 통의동 참여사회연구소에서는 특별한 대화가 있었다. 참여사회연구소가 마련한 '참여사회포럼: 대화' 첫 시간. 시민 10여 명은 <화해와 통합의 사회, 정치적 기초-공동체론>이라는 책을 읽고, 이 책의 저자인 박호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저자의 강연을 들었고, 또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도 자유롭게 질문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등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앞으로도 매월 사회 명사들을 초청해 대화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1996년 참여연대 부설기관으로 만들어진 '참여사회연구소'

참여사회연구소는 참여연대 부설 연구기관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진보 싱크탱크다. 한국 사회에 참여민주사회의 모델을 제시하고 참여연대의 중장기적인 활동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996년에 창립됐다. 참여연대가 창립 당시 표방한 참여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참여사회를 어떻게 건설해 나갈 것인지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일이 참여사회연구소에 부여된 주된 임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그동안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 왔다. 정기적인 토론회와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출판물을 발간해 참여사회연구소의 연구성과를 시민사회와 나누었다. 이날 열린 '참여사회포럼: 대화' 또한 좁은 범위의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관심 있는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논의의 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참여사회연구소가 마련한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연구소의 주된 연구 주제는 '시민정치'와 '사회적 경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10년에 대한 연구' 등이다. 그중에서도 '시민정치'는 시민들이 정치공동체 주권자로서의 자의식과 상호인정, 상호배려 속에서 공적 삶에 참여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08년부터 '시민정치'를 핵심어로 하는 연구센터 설립을 논의해 오다가, 올해 가을 '시민정치연구센터'를 정식으로 발족했다. 참여사회연구소 송은희 간사는 "시민정치연구센터는 눈앞의 현안들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진보,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가기 위한 실질적 비전과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운동 현장과 가장 밀접한 연구 및 활동 수행

4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참여연대와 참여사회연구소, 한겨레신문사 공동주최로 '2009 희망만들기 촛불 1년,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4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참여연대와 참여사회연구소, 한겨레신문사 공동주최로 '2009 희망만들기 촛불 1년,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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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는 시민운동 단체의 부설 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민간 싱크탱크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참여사회연구소 측은 무엇보다도 시민운동 현장과 가장 밀접한 연구 및 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가장 핵심적인 특징으로 꼽는다.

서울광장 조례개정에 대한 토론회 및 2008년 촛불 국면에서의 토론회나 책 발간, 교육강좌 등이 그 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시민사회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토론회 등을 발 빠르게 진행함으로써 담론을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02년과 2003년에는 NGO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서를 두 차례에 걸쳐 발간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참여연대가 쌓아올린 명성 덕분에 활용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이 많고, 회원을 연계해서 모집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조흥식(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은 "이런 점 때문에 연구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나가기가 비교적 유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여사회연구소도 진보진영 단체들의 오랜 고민인 열악한 재정문제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참여사회연구소에는 아직 상근 연구원이 없다. 연구소의 연구원은 모두 대학교수 등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연구원들이 연구소의 연구만 전담하는 경우에 비해 안정적인 연구를 진행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송은희 간사는 "현재 참여사회연구소는 본래적 의미의 싱크탱크의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고 싱크네트 정도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재정을 좀 더 탄탄하게 해서 상근 연구원을 두는 게 연구소의 과제"라고 밝혔다.

현장성 없는 연구는 가라... 생활밀착성 연구 지향

현 정부 출범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은 참여사회연구소뿐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이 직면한 현실이다. 조흥식 소장은 "시민사회를 활성화시키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이념들 때문에 시민사회가 재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며 "진보 싱크탱크들의 연대가 필요한 때"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 소장에 따르면 각 싱크탱크가 개별적인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같은 주제에 대한 연구나 뜻이 맞는 일은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진보 싱크탱크들은 함께 토론회를 열고, 시민운동 단체들과 공조해서 보고서를 만드는 등 협력을 현실화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런 협력과 연대를 통해 진보 싱크탱크의 정책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홍일표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싱크탱크들의 존재 근거는 이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들이 실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가가 핵심"이라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싱크탱크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 단체, 한 단체가 개별적으로 자기 역량을 키워서 뛰어난 연구정책 성과를 내서 기여를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시대의 요구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 소장은 또 "현 정부가 지난 정부에 비해 시민사회 영역을 지원하려는 의지가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생하면 똘똘 뭉치게 되어 있듯이 진보 진영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당위성은 더 확대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앞으로 연구기능을 활성화하고, 보다 현장성 있는 대안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특히 '연구후속세대'를 양성하는 일이 당면한 과제다. 조 소장은 "박사학위가 없는 사람들도 진보적 사고와 이론에 관심이 있고 아이디어가 훌륭하다면 연구소에 참여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산 이론의 수입에 의존해 현장성이 떨어지는 학계와는 다르게 생생한 생활밀착성 연구를 수행해 우리 현실에 맞는 방법론과 대안을 개발할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진보싱크탱크간 경쟁? 공동작업이 더 필요"
[인터뷰] 조흥식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 참여사회연구소장에 취임한 지 1개월이 지났다.
참여사회연구소 조흥식 소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사회연구소 조흥식 소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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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이병천 소장이 지난 4년 반 동안 연구소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놓았다. 재정적인 면 등 전체적인 연구소 포맷이 만들어졌다. 앞으로는 연구소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신진학자들을 비롯한 연구후속세대를 키우고 연구물 발간을 활성화하는 데 신경을 쓸 계획이다."

- 참여사회연구소가 우리 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참여사회연구소는 시민단체 부설 연구기관이다. 일반 정당연구소나 국책연구소와는 달리 시민사회의 현장과 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구를 수행한다. 국책연구소는 풍부한 인력과 재원을 바탕으로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목표에 끼워 맞추기식 연구를 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 한계다. (국책연구소가 제안하는 정책이) 꼭 필요한 정책인지에 대해 비판해주고 좋은 의견을 제시해 줄 제3섹터 싱크탱크는 꼭 있어야 한다."

- 참여연대와 하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을 수행한다면, 참여사회연구소는 학술 연구를 통해 시민운동에 도움을 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 참여연대 부설 기관인데, 참여연대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나?
"참여연대 부설기관이니까 참여연대 일만 가지고 책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상당히 독립적이고 나름대로 참여연대를 비판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참여연대의 활동방향을 바로잡는 것이 참여사회연구소의 설립취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참여연대 건물에 들어와 있지만 예전에는 위치하고 있는 건물도 달랐다. 재정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독립된 넓은 공간으로 옮겨갈 필요도 있다고 본다."

- 이명박 시대, 참여사회연구소의 고민과 과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민사회 전반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진보 싱크탱크들끼리의 연대가 필요하다. 각자의 개별적인 연구를 하면서도 같은 주제에 대한 연구나 뜻이 맞는 일은 함께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실제로 이런 제안을 다른 연구소에 하기도 했고 반응도 좋았다. 아직 싱크탱크의 기반이 자리 잡지 못한 국내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진보 싱크탱크들 간의 경쟁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 진보 싱크탱크들이 대중의 신뢰와 공감을 얻지 못한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진보의 담론들이 일상생활 및 현장과 괴리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개발하고, 실질적 분석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기능이 대단히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학문이나 이론이 토대가 돼야 정책도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연구소가 할 일이 많다."


태그:#진보싱크탱크, #참여연대, #싱크탱크, #참여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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