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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당연한 것들이 신기해 보일 때가 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그리운 분들이 있을 것이다. 멀리 떠날 여유가 없다면 '정유'나 '화학' 같은 이름이 붙은 회사의 홈페이지를 찾으면 된다. 비록 사진으로나마 아리게 푸른 하늘과 풀내음 가득한 초원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 경험으로, 기업 홈페이지의 '자연 신선도'는 해당 산업의 '자연 훼손도'에 정비례하는 것 같다. 

이 흥미로운 모순은 당사자들의 강박관념을 보여준다. 진정으로 친환경적 기업은 '친환경' 홍보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서민을 배려하는 정부라면 '친서민 행보'를 따로 기획할 필요도, '친 서민 이미지 구축'에 열을 올릴 필요도 없다.

공화당의 몰락을 표지기사로 다룬 <타임>지 표지.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은 80년 초 집권하면서 부유층 감세, 기업 탈규제, 그리고 민영화로 대표되는 '레이거노믹스'를 내세웠고, 이것이 부시정권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결국 금융위기로 파국을 맞았다.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은 기업의 규제강화와 공공서비스의 재공영화와 같이 미국경제를 '레이거노믹스' 이전으로 되돌리는 숙제를 떠맡았다.
 공화당의 몰락을 표지기사로 다룬 <타임>지 표지.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은 80년 초 집권하면서 부유층 감세, 기업 탈규제, 그리고 민영화로 대표되는 '레이거노믹스'를 내세웠고, 이것이 부시정권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결국 금융위기로 파국을 맞았다.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은 기업의 규제강화와 공공서비스의 재공영화와 같이 미국경제를 '레이거노믹스' 이전으로 되돌리는 숙제를 떠맡았다.
ⓒ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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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따뜻한 보수"를 선언했다. 어떤 홍보담당의 작품인지 모르나, 이 표어는 미국 공화당이 오래 전에 써먹던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던 대통령 조지 부시가 표방한 것이 "따뜻한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ves)"였다. 다른 표현으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와 '피 흐르는 심장을 가진 보수'가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참고하시라.)

위 표어들은 무엇을 말해줄까? 보수 스스로도 자신들이 대체로 '냉혈'이며, '얼굴'과 '심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의 반대는 뭘까? 짐승의 얼굴을 한 보수?) 비록 부시가 꽃피우기는 했으나, '따뜻한 보수'의 원조를 찾자면 역시 레이건 대통령이다. 레이건이 5년 전 죽었을 때, 보수언론은 그를 일컬어 '보수 세력에 인간적 얼굴을 가져다 준 이'로 평했으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레이건과 부시는 마이클 무어의 새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에서 가장 무참히 얻어맞는 두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 두 '따듯한 보수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기에?  

'따뜻한 보수' 발언의 계보...레이건→부시→이명박

'따뜻한 보수'란 부유층 위주의 정책을 밀고 가되, 태도만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책을 서민위주로 바꾸는 순간 더 이상 보수가 아니니 말이다. '따뜻한 보수'의 뜻을 가장 잘 풀이한 사람은 클린턴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따듯한 보수론'을 이렇게 평한 바 있다.

"'따뜻한 보수'. 듣기는 좋은 말이지요. 뜻은 이런 겁니다. '도와주고 싶어요, 진짜로. 하지만 아시잖아요. 그렇게 못한다는 거.'"

공화당의 부시와 레이건 대통령은 기득권층을 위한 급진적 보수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도 줄곧 '친서민 이미지' 전략을 구사했다. 위는 부시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를 방문한 사진이고, 아래는 레이건 대통령이 미시건 플린트의 실업자들을 만나 함께 피자를 먹는 모습이다.
 공화당의 부시와 레이건 대통령은 기득권층을 위한 급진적 보수경제개혁을 단행하면서도 줄곧 '친서민 이미지' 전략을 구사했다. 위는 부시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를 방문한 사진이고, 아래는 레이건 대통령이 미시건 플린트의 실업자들을 만나 함께 피자를 먹는 모습이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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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과 부시가 추구한 경제정책의 핵심은 부유층을 위한 세금감면과 기업의 탈규제, 그리고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하나같이 서민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는 '친 서민 행보'를 즐기곤 했다.

부시는 재임 중 공립학교에서 학생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비록 학교의 서열화와 교육민영화로 공교육을 파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말이다. 부시 대통령은 교육예산을 삭감함으로써 등록금 가계 부담을 대폭 늘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1987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실업으로 고통 받던 미시건의 플린트를 찾았다. 그리고 실업자들 열댓 명을 불러내어 피자를 사주었다. '시야를 넓게 갖고 찾아보면 일자리가 많을 것'이라는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지엠 자동차가 탄생했던 미시건의 플린트는 마이클 무어의 고향이기도 하다. 부유했던 그 도시는 미국에서 가장 끔찍한 실업과 범죄의 고장으로 전락해 갔다. 

지엠은 레이건 재임 당시 엄청난 흑자를 올리면서도 플린트의 공장을 폐쇄하고 3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해고한다. 당시 회장이었던 로저 스미스는 공장을 저임금 국가로 옮기고, 남는 돈으로 50억불짜리 군수업체를 인수하고 자신의 연봉을 인상했다.

'따뜻한 보수' 밑에서 서민이 혜택 본 사례가 있던가

대통령의 피자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결국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엠이 추가로 직원들을 해고하고 공장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한때 지엠은 높은 임금과 복지로 직원들 사이에서 '관대한 자동차회사(Generous Motors)'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레이건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보수개혁 속에서 이 회사는 이익이 된다면 서슴없이 사람들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정부의 탈규제 정책에 힘입어, 지엠은 수익을 기술개발이나 인력양성 대신 금융업과 부동산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이제 지엠은 다른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차 생산을 부업으로 하는 금융사"라는.

70년대 미국시장 점유율 60%를 자랑하던 지엠 자동차의 점유율은 90년대 후반 들어 20%대로 추락한다. 이 회사는 결국 2009년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국유화 하는 운명이 된다. '기업의 존재목적은 이윤추구지 생활보장이 아니'라며 서민들을 해고하던 회사가 서민들이 푼돈을 모아 낸 세금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세금의 존재목적은 국민들의 생활보장이지 실패한 이윤추구의 뒷감당이 아닌데 말이다.

지엠은 80년대 레이건 재임당시 기록적 이익을 올리면서도 '이윤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공장을 폐쇄했다. 그러나 기업 탈규제를 내세운 '레이거노믹스'는 서민계층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독으로 작용했다. 이윤을 기술개발 같은 장기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기보다, 금융투자와 같이 단기적이고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엠은 파산하고 국민세금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큰 사진은 80년대 플린트 공장을 허무는 사진이고, 작은 사진은 지엠의 몰락을 표지기사로 다룬 <포춘>지 표지다.
 지엠은 80년대 레이건 재임당시 기록적 이익을 올리면서도 '이윤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공장을 폐쇄했다. 그러나 기업 탈규제를 내세운 '레이거노믹스'는 서민계층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독으로 작용했다. 이윤을 기술개발 같은 장기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기보다, 금융투자와 같이 단기적이고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엠은 파산하고 국민세금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큰 사진은 80년대 플린트 공장을 허무는 사진이고, 작은 사진은 지엠의 몰락을 표지기사로 다룬 <포춘>지 표지다.
ⓒ Warner/Fo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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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건의 플린트는 지엠이 탄생한 곳이다. 부유했던 이 도시는 지엠이 공장을 이전하면서 황폐해졌고, 미국에서 가장 실업률과 범죄가 높은 도시로 전락했다. 플린트는 그동안 여러 언론에 의해 '미국 최악의 도시'로 꼽혀 왔다. 사진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폄훼'했다는 이유로 잡지를 불태우는 플린트 시민들. 한국에서도 자주 문제가 되는 '폄훼' 논란은 애국심의 발로라기보다는 불만과 좌절의 표출방식이다. 사는 곳이 불만스럽지만 떠나지 못할 때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소방식이 '민족주의적 적대감'이다. 이는 누구보다 정부가 주목해야 할 경고표시다.
 미시건의 플린트는 지엠이 탄생한 곳이다. 부유했던 이 도시는 지엠이 공장을 이전하면서 황폐해졌고, 미국에서 가장 실업률과 범죄가 높은 도시로 전락했다. 플린트는 그동안 여러 언론에 의해 '미국 최악의 도시'로 꼽혀 왔다. 사진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폄훼'했다는 이유로 잡지를 불태우는 플린트 시민들. 한국에서도 자주 문제가 되는 '폄훼' 논란은 애국심의 발로라기보다는 불만과 좌절의 표출방식이다. 사는 곳이 불만스럽지만 떠나지 못할 때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소방식이 '민족주의적 적대감'이다. 이는 누구보다 정부가 주목해야 할 경고표시다.
ⓒ W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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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는 <자본주의>에서 지난 20년간 전 미국이 '플린트화'되었다고 말한다. 20년 전 데뷔작 <로저와 나>에서 보여주었던 지엠과 플린트의 문제는 이제 모든 산업 종사자들과 미국 전역,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 '미국을 따르는 것이 살 길'이라며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추구해 온 나라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김현종 FTA통상교섭본부장, 아니 삼성전자 사장은 아직도 한국경제를 미국식으로 '체질개선'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따뜻한 보수'를 내세운 레이건과 부시 정부 밑에서 서민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레이건 정부 하에서 수백 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간신히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훨씬 많은 일을 하면서도 월급봉투는 그대로거나 심지어 더 얇아졌다. 

못된 짓에 상주기...레이건과 이명박은 닮은꼴

레이건과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둘 모두 기업 관점의 이윤논리에 밝으며, 전국적인 지지를 업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정말 쌍둥이처럼 닮은 것은 경제관과 노사정책이다. 둘 모두 당선되자마자 부유층 세금감면과 기업 활동 규제철폐로 대표되는 '보수개혁'을 밀어붙였으며,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에는 물리력으로 답했다.

삶의 황폐화는 제조업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득이 최상위 1퍼센트에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양극화는 전문직 중산층까지 파고들었다. 민항기 기장 같은 경우, 과거에는 '고소득 전문직'에 해당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1년 소득이 1만 9천불(2200만 원)인 기장을 보여준다. 그는 1천만 원이 넘는 식료품 카드빚이 있었고, 갚아야 할 대학융자금도 8만 불(1억 원)이 넘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감세정책의 잇점을 설명하고 있다. 레이건에서 시작된 부유층 세금감면은 의료와 교육 등의 공공서비스를 마비시켰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산업체질을 악화시켜 미국을 장기적 침체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감세정책의 잇점을 설명하고 있다. 레이건에서 시작된 부유층 세금감면은 의료와 교육 등의 공공서비스를 마비시켰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산업체질을 악화시켜 미국을 장기적 침체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했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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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의 새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일어난 빈곤화와 양극화를 전 미국의 '플린트화'로 해석한다. 공업도시의 생산직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빈곤화는 미국 전역의 모든 업종으로 확대되었다. 사진은 전국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차압간판이다. 금융산업 탈규제는 사는 집마저 '투자수단화'했고, 그 결과 집을 잃고 쫓겨나는 중산층들이 속출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새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일어난 빈곤화와 양극화를 전 미국의 '플린트화'로 해석한다. 공업도시의 생산직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빈곤화는 미국 전역의 모든 업종으로 확대되었다. 사진은 전국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차압간판이다. 금융산업 탈규제는 사는 집마저 '투자수단화'했고, 그 결과 집을 잃고 쫓겨나는 중산층들이 속출하고 있다.
ⓒ Ove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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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뉴욕 버펄로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기장이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퇴근 후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항공기 추락 사고는 승무원들의 과로와 열악한 근무조건, 그리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안전점검 인력부족이 결합해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는 양극화가 빈곤층만의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고통은 저소득 계층부터 찾아오지만, 부가 극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빈곤화가 중산층과 고소득층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극화 추이를 표시한 그래프를 보면, 최상위 1퍼센트를 뺀 상위 9퍼센트의 소득마저 급속히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산분리 완화 등의 탈규제 정책은 소득의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의 생산성은 80년대 이래로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서민들의 소득은 늘지 않았다. 더 일하고도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생산성 증대로 인한 기업이윤이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재투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 산업의 탈규제는 기술개발이나 인력양성 등 장기적이고 생산적인 투자에 쓸 이윤을 투기자본처럼 단기적이고 비생산적인 (더 나아가 파괴적인) 용도로 쓰도록 유도한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런 식의 "못된 짓에 상주기"가 미국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고 분석한다. 그가 <뉴욕타임스> 8월 3일자 칼럼에서 썼듯,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장본인들에게 돈을 진탕 퍼주는 행위"를 묵인하는 데 있다.

미국의 생산성과 임금을 비교한 그래프. 지난 30년간 생산성은 두 배 이상 늘었으나,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더 많이 일하고도 더 적게 받는 현상은 레이건이 취임한 80년대 초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생산성 증가로 인한 추가이익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상위 1%의 연봉인상과 보너스, 그리고 기업의 비생산적인 투기자본으로 사용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생산성과 임금을 비교한 그래프. 지난 30년간 생산성은 두 배 이상 늘었으나,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더 많이 일하고도 더 적게 받는 현상은 레이건이 취임한 80년대 초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생산성 증가로 인한 추가이익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상위 1%의 연봉인상과 보너스, 그리고 기업의 비생산적인 투기자본으로 사용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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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로 추락하는 비행기, 고객 유치 열 올리는 민영교도소

<자본주의>는 공공서비스가 민영화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생생히 보여준다. 의료나 보험처럼 정상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서비스는 이제 이윤추구의 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하여 평균소득 4만 불이 넘는 '선진국' 국민들은 자기 손으로 상처를 꿰매고, 약값을 아끼기 위해 국경을 넘게 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교화시설의 민영화다. 펜실베이니아의 한 지역에서는 공공 소년원을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엠 대변인이 잘 설명했듯, 민간시설의 존립목적은 '이윤추구'에 있다. 민영교도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끊임없이 '고객'이 필요하고, 고객이 늘수록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은 늘어난다. 펜실베이니아의 민영 소년원은 판사에게 '수고비'를 건넸고, 판사는 무려 6500명의 청소년을 부당한 이유로 기소해서 민영교도소에 수감시켰다.

그중에는 어머니 친구에게 대든 소년도 있었고, 쇼핑몰에서 친구와 다툰 소녀, 인터넷에 교장을 조롱하는 게시물을 올린 여중생도 있었다. 쇼핑몰에서 친구와 싸웠다는 이유로 기소된 소녀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를 지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수감기간은 점점 늘어 무려 1년을 민영교도소에서 보냈다.

한국에서도 내년 10월 첫 민영교도소가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 교도소는 정부에서 위탁받은 수감자를 관리하면서 경비를 국고에서 지원 받게 된다. 정부는 이미 운영경비 10억 8100만 원을 배정해 둔 상태다.    

사람은 정말 '이윤의 동물'일까?

마이클 무어는 <자본주의>를 통해 묻는다. 다수를 불행 속에 몰아넣는 경제체제를 왜 유지해야 할까? 합리화 기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돈을 보여 주어야 힘이 솟는 존재이기 때문에, 금전적 보상 없이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간 의료시설에 고소득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의료기술 선진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의료민영화의 변명이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무료로 공개한 조나스 소크 박사의 사진. 그의 '이윤추구' 거부는 전후 수많은 어린이들을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구해냈고, 수 없이 많은 부모들을 비탄의 눈물에서 건져냈다. 오른쪽 사진은 소아마비 예방과 치료를 돕기 위한 자선행사 안내서 표지. '편지봉투에 10센트 동전 담아 보내기' 행사를 시작하자마자 수백만 통의 편지가 전국에서 날아들었다. 이 단체는 소아마비 환자였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설립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무료로 공개한 조나스 소크 박사의 사진. 그의 '이윤추구' 거부는 전후 수많은 어린이들을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구해냈고, 수 없이 많은 부모들을 비탄의 눈물에서 건져냈다. 오른쪽 사진은 소아마비 예방과 치료를 돕기 위한 자선행사 안내서 표지. '편지봉투에 10센트 동전 담아 보내기' 행사를 시작하자마자 수백만 통의 편지가 전국에서 날아들었다. 이 단체는 소아마비 환자였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설립했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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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런가? <자본주의>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자본주의>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출원을 거부한 조나스 소크 박사를 보여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아마비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의 일이다.

만일 특허신청을 했다면 그는 막대한 부를 손에 넣었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절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소크 박사가 왜 이 좋은 돈벌이 기회를 마다하고 피땀 흘려 개발한 신약을 무료로 공개했는지 궁금해 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특허신청을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 같으면 햇빛에 특허신청을 하겠습니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부와 안락한 삶을 버리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소크 박사에게 감사하는 시민들이 유리창에 '소크 박사님, 고맙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오른쪽은 <타임> 표지에 실린 소크 박사의 모습. 표지 오른쪽에 벗어놓은 보조의족과 목발이 보인다. '이윤의 동물'이길 거부함으로써 인류를 소아아비에서 해방시킨 소크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를 배양했다고 발표했을 때 한국사회가 흥분한 이유는 불치병 치료 가능성이 아니라 그로 인한 '33조 경제효과'였다. 그리고 이런 탐욕을 업고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 정부와 언론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탐욕을 합리화하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에 흔들리지 않고 이타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소크 박사에게 감사하는 시민들이 유리창에 '소크 박사님, 고맙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오른쪽은 <타임> 표지에 실린 소크 박사의 모습. 표지 오른쪽에 벗어놓은 보조의족과 목발이 보인다. '이윤의 동물'이길 거부함으로써 인류를 소아아비에서 해방시킨 소크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를 배양했다고 발표했을 때 한국사회가 흥분한 이유는 불치병 치료 가능성이 아니라 그로 인한 '33조 경제효과'였다. 그리고 이런 탐욕을 업고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 정부와 언론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탐욕을 합리화하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에 흔들리지 않고 이타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 공개자료/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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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약회사들은 특허권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매일 수많은 환자가 죽어가는 저개발국에도 복제 약을 만들지 말고 '정품'을 사 쓰라고 요구한다. 물론, 자국인들도 함부로 못 사는 비싼 약을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제 값을 내고 사기란 불가능하다.

이들은 '기술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제대로 된 금전적 보상이 없으면 어느 회사도 신약개발에 나서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은 이에 대해 훌륭한 답을 준다. 2000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사용된 제약연구 개발비의 57퍼센트는 민간 기업이 아니라, 정부(세금), 자선기관, 그리고 대학에서 왔다는 것.

'사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야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거나 '사람은 이윤의 동물'이라는 주장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탐욕을 합리화하기 위해 유포한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으로도 알고 있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기가 돈만이 아니라 자비, 사랑,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양심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G20에서 브라질 대통령 룰라와 만나 양국의 협력방안을 논했다. 한국의 언론은 '두 실용주의자의 만남'이라고 썼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친 서민'에 관심이 있다면 룰라 대통령의 말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소득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이전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소득층 가족을 위한 주택 1백만 호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공공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이미 3590억 달러를 책정해 놓은 상태입니다. 1950년부터 1980년까지 브라질의 연평균 성장률은 7퍼센트가 넘었습니다. 어떤 해에는 무려 14퍼센트, 즉 오늘날 중국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소득이 전혀 분배되지 않았지요.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졌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판도를 바꾸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밀어주자는 거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해질수록 업계도 그만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 '룰라가 바라보는 신세계질서' <비즈니스위크> 10월 12일자 인터뷰에서


태그:#마이클 무어, #사기쇼, #자본주의, #자본주의, #레이건, #이명박, #따뜻한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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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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